산업 대기업

[이병철 회장 탄생 100년 ‘호암을 기리다’] (4) 대를 잇는 호암의 성공 DNA

윤휘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1.18 16:35

수정 2010.01.18 16:35

▲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1970년대 당시 동양방송 이사로 재직중이던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아버지 호암 이병철 회장에게 반도체 사업 진출을 건의했다. 호암은 망설였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건희 이사의 생각은 달랐다. 다가올 시대는 전자의 시대이고 반도체가 전자산업의 핵심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이 이사는 사재를 털어 부천에 있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이 회사가 삼성 반도체 산업의 모체가 됐다.

호암 이병철로부터 시작된 삼성의 ‘성공 유전인자(DNA)’는 아들인 이건희 전 회장으로 넘어오면서 꽃을 피우게 된다. 오늘날 삼성이 전자산업에서 일본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최고 업체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도 이병철-이건희 부자로 이어지는 ‘성공DNA’가 결정적이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도쿄선언’과 ‘프랑크푸르트선언’

1959년 말 호암은 미국을 방문한 뒤 일본 도쿄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오다 서울에 갑자기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도쿄에 머물게 된다. 당시 1960년대 새해을 맞아 일본의 TV방송은 세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전망하는 좌담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을 유심히 본 호암은 세계 경제흐름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기술이나 차관 도입방법이 있다는 사실도 이 때 처음 알게 됐고 미국보다 유럽 쪽이 차관 도입에 유리하다는 정보도 얻었다. 당시 비료공장 건설계획에 몰두해있던 이 회장으로선 천금같은 정보였다.

이후 호암은 해마다 정초가 되면 도쿄를 찾았다. 도쿄에서 세계의 변화를 읽고 정보를 얻었으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이를 ‘도쿄 구상’이라고 불렀다. “전자·반도체·항공산업 진출 등도 ‘도쿄 구상’을 통해 나온 사업이었다”고 당시 삼성물산 도쿄지점장을 지냈던 이길현 경원 대표이사 회장은 삼성그룹 60년사에서 회고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호암이 타계하고 열흘 남짓 지난 1987년 12월 1일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전 회장은 호암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인 ‘경청’을 마음 깊이 새기며 그룹을 면밀히 뜯어봤다.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처,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프랑크푸르트선언’을 전격 발표했다. 그는 7월 30일 후쿠오카 강연까지 48차례나 직원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의식으로 ‘신경영’에 돌입했다.

신경영은 선언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졌다. 1995년 3월 경북 구미에서는 삼성휴대폰 15만대가 불태워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삼성 임직원에게 ‘신경영’이 얼마나 엄중한 과제인지를 깨우치게 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품질을 우선시 하는 경영에 본격 착수하게 됐다.

■‘창업’보다 어려운 ‘수성’

1단계 ‘신경영’이 끝나고 이건희 전 회장은 2단계로 ‘창조 경영’에 착수했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006년 9월 뉴욕에서 열린 삼성전자 사장단 회의에서 “20세기 경영과 21세기 경영은 다르다. 20세기엔 물건만 잘 만들면 1등이 됐지만 이제는 품질의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21세기에는 디자인과 마케팅, 연구개발(R&D)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창조 경영을 역설했다.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한다. 호암이 한국 재계에서 ‘위인’으로 평가받는 것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서 경공업부터 중공업까지 빠른 기간에 다양한 사업을 펼쳐 사업보국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의 수성도 쉽지 않았다. 안팎의 끊이지 않는 도전과 역경을 헤치면서 삼성이 ‘수성’을 넘어 제2 창업에 버금가는 도약을 이룬 것은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성공DNA’를 시대에 맞게 새로운 시각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호암의 두가지 선물, ‘경청’과 ‘목계(木鷄)’

▲ 1980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집무실에서 서예 연습 중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왼쪽)과 이건희 당시 부회장. 삼성의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 회장과 후계자인 이건희 전 회장은 각각 삼성을 탄생시키고 삼성을 도약시키며 ‘성공DNA’를 이어가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아버지인 호암으로부터 두 가지 선물을 받았다. ‘경청’이란 휘호와 ‘목계’다. 호암은 이 전 회장이 삼성에 처음 근무하던 날 마음의 지표로 삼으라는 뜻으로 ‘경청’이란 휘호를 선물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상대방의 의견을 귀중하게 여기라는 의미다. 호암의 휘호 ‘경청’은 대를 이어 이 전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마음속에도 깊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선물인 ‘목계’는 장자의 달생편에 나오는 우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목계는 싸움닭이 경지에 오르면 상대 닭이 아무리 덤벼도 조금도 동요되지 않아 마치 나무로 만든 닭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즉, 자신의 힘을 뽐내지 말고 아무리 약한 적이라 해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상대가 싸움을 걸어와도 목계처럼 초연한 마음으로 평상심을 유지하라는 의미에서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이 전 회장은 ‘경청’과 ‘목계’의 가르침을 통해 수성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제2의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호암은 ‘호암어록’을 통해 모든 일의 기본은 국가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것은 나라가 기본이 된다. 나라가 잘되고 강해야 모든 것이 잘된다. 참다운 기업인은 보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기업을 발전시키고 국부 형성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참다운 기업정신이다.”

이같은 ‘기업의 기본은 국가’라는 호암철학은 후대에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전 회장이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2010’에서 “10년 전 삼성은 지금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구멍가게 같았다. 까딱 잘못하면 삼성도 그렇게 된다”며 “사회 모든 분야에서 자기 위치를 쥐고 가야 변화무쌍한 21세기를 견뎌낼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중국, 인도 등 후발 국가들의 추격과 선진국들의 견제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위기의식을 갖고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선대 회장으로부터 받은 ‘나라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는 철학이 이어진 것이다.

/yhj@fnnews.com 윤휘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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