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3無 대한민국,지식재산 후진국 우려] (中) 특허침해 손해배상액 韓 7800만원 vs. 美 102억원

강재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5.07 17:12

수정 2014.05.07 17:12

[3無 대한민국,지식재산 후진국 우려] (中) 특허침해 손해배상액 韓 7800만원 vs. 美 102억원

한국 기업들이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외면하는 이유로는 느슨한 법과 솜방망이 처벌, 관리 감독 부재 등이 꼽힌다.

특히 한국 법원이 인정하는 손해배상액은 턱없이 적고 이조차도 특허를 침해받은 쪽이 손해 규모를 모두 입증해야 가능토록 돼 있다. 이직과 전직에 따른 영업비밀 침해도 문제투성이다. 분쟁이 증가하고 있으나 이 경우 개인과 기업 간의 계약에 의존할 뿐 법으로 뚜렷하게 규정된 것이 없다. 직원들의 발명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도입된 직무발명보상제도는 기업이 지키지 않을 경우 이를 딱히 관리 감독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손해배상액 지나치게 적어

한국 법원이 인정하는 피해자의 손해배상액은 일실이익액, 즉 특허권자가 특허권 침해로 인한 손실을 입증할 수 있는 한도에 그친다.
실제로 피해를 보더라도 특허권자가 입증하지 못하거나 객관적으로 계산하기 힘들 경우 배상액에서 제외된다. 특허권을 침해한 기업에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부과해 경각심을 주는 미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례로 한국과 미국의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손해배상액 평균을 보면 각각 7800만원과 102억원으로 131배나 차이가 난다. 한국과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차이가 약 13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간극이 너무 크다. 한 특허 소송 전문 변호사는 "미국 기업들은 '특허 소송에 잘못 걸리면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정서가 지배적인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걸려도 그만이고 안 걸리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제도다.

특허권자에 대한 과도한 입증 책임도 논란거리다. 현재 특허권자가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고의.과실 및 손해액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물론 이와 관련해 특허법에 손해액의 추정(제128조), 과실의 추정(제130조), 손해액 계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문서제출명령제도(제132조)를 두고 있긴 하지만 입증이 쉽지 않고 유명무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침해소송이 제기되면 대부분 피고 측이 무효심판과 소송을 제기하는데, 이로 인해 소송은 한없이 지연되기 일쑤다. 또 소송무효 판정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특허소송을 제기할 때 1심 기준으로 1000만~5000만원가량 비용이 들어 비용 부담도 적다. 미국은 특허 소송 때 1심기준으로 보통 100만~2000만달러(약 10억~20억원)가 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송을 남발하는 기업이 많고 결과적으로는 특허를 보유한 업체들이 더 많은 공격을 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제도 있어도 안 지키는 곳 많아

최근 대법원은 게임회사 엔씨소프트가 블루홀스튜디오와 이 회사로 이직한 '리니지 3' 개발팀 11명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 침해 금지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3 개발 도중 핵심인력이 집단 퇴사한 뒤 블루홀스튜디오로 이직해 '테라' 게임 개발에 착수하자 2008년 '블루홀스튜디오는 엔씨소프트에서 취득해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모두 폐기하고 71억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법원은 리니지3 개발팀의 이직이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시하고, 집단 퇴직으로 리니지 3 개발이 무산됐다는 주장도 반려했다. 다만 엔씨소프트에서 가져온 문서와 파일 등은 폐기할 의무가 있다고 적시했다.

현재 부정경쟁방지법에 직원들의 이직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보니 문제가 발생한 케이스다. 우리나라는 영업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큰 업종의 경우 개별적으로 이직을 금지하는 항목을 계약서에 넣고 있을 뿐이다. 이직으로 인한 영업비밀 침해가 발생할 경우 기존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만 준수했다면 직업 선택의 자유는 보장되는 셈이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애써 개발한 기술이 유출됐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보니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제는 소송 결과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는 점이다. 법으로 명시된 내용이 없다보니 대부분의 판결이 판례에 의존하고 한편으로는 판사에 따라 판이한 결론이 날 수 있어서다. 일관성 있는 결과가 나온다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직무발명보상제도도 손질이 시급하다. 대학이나 기업에 소속된 연구원들이 직무 중 발명한 기술에 제값을 줘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현재 직무발명보상제도는 연구개발자에게 '적당한 보상'을 하도록 돼 있고 보상 내용은 각 연구소 혹은 대학이 개별적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 통상 연구자와 소속 기관이 5대 5, 많게는 7대 3의 비율로 권리를 갖게 되는데 이는 연구자가 퇴사한 후에도 일정 부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제도를 지키지 않아도 딱히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따로 관리 감독하는 곳도 없고 위반 시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결국 소송까지 가는 사례가 많다. 국내에서 출원되는 특허의 80%가 직무발명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직무발명보상제도를 철저히 지키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한 기업 연구원은 "기술 개발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법규나 제도에 어두워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회사도 이를 고의적으로 모른 체하는 경우도 흔하다"면서 "뒤늦게 알아챈들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어서 많은 연구원들이 지레 포기하곤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kjw@fnnews.com

강재웅 박하나 김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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