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다시 제조업을 말하다] (下) ‘창조혁신 역량’ 강화 급선무… 기업 경영부담 줄여줘야

김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30 17:34

수정 2014.10.24 19:49

[다시 제조업을 말하다] (下) ‘창조혁신 역량’ 강화 급선무… 기업 경영부담 줄여줘야

제조업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의 실적이 급속히 악화되는 등 체감경기가 수직으로 미끄러져 내리는 모양새다. 전 세계가 통화공급을 대폭 늘리면서 경기부양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만은 원화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기업들의 경쟁력이 추락 일로다. 이런 상황에서도 통상임금문제로 노사관계는 악화하고 있다. 때마침 정부가 경기부양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핵심 내용으로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재계는 "사업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있다"며 아우성이다. 미국 '리쇼어링', 일본 '아베노믹스', 독일 '인더스트리 4.0'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제조업 살리기에 나선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거시정책연구실장과 현대경제연구원 이장균 수석연구위원, 대한상공회의소 이경상 경제연구실장, 산업연구원 서동혁 성장동력산업연구실장 등 전문가들에게 제조업 회복을 위한 조건과 정책 등을 물어봤다.

―한국 제조업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 현황은.

▲이장균 수석연구위원=해외 수출 시장이 예상 외로 불경기를 지속하고 있는데다 환율 상승 등 외적 요인으로 국내 제조업체의 실적 악화가 현실화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비용절감 전략에 집중했던 선진국 업체들은 최근 사업확장 전략으로 나오고 있다. 반면 중국 업체들은 급성장세를 보이며 선전하고 있다. 국내업체의 실적 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이경상 경제연구실장=대내적으로 각종 규제와 부담으로 기업활동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선진국이 노사협력을 통해 단위노동비용을 크게 줄여나가고 있는 반면 우리만 늘어나고 있어 제조업의 장래가 불투명하다.

▲변양규 연구실장=우리 제조업체들이 성장 한계에 부딪혀 성장성,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경제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와 현대차마저 흔들리면서 위기감이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조선.철강.석유화학은 이미 중국에 밀리고 있고 IT.반도체.자동차도 곧 따라잡힐 것으로 우려된다.

▲서동혁 연구실장=원화강세가 이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정작 우려스러운 점은 단기간에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제조업 부활 기미, 중국의 전자·철강·조선·석유화학 등에서의 맹추격, 환율 하락세, 중국의 성장둔화 등은 우리 제조업에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

―세계 각국의 산업정책은 제조업 중시 경향이 뚜렷하다.

▲변 연구실장=독일은 민관 공동으로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4차 산업혁명을 이루겠다는'인더스트리4.0'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법인세 인하와 '리쇼어링(공장이 다시 미국으로 회귀하는 현상)'지원 등을 통해 제조업 르네상스를 도모하고 있고, 일본은 사실상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12.5 국가전략성 신흥산업발전계획'을 추진하며 첨단 제조 강국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 수석연구위원=범국가 차원으로 다방면에서 제조 육성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자국 업체의 체질 강화 및 해외 업체의 투자 확대를 유인하는 법인세율 인하를 포함해 세제 지원, 규제 개선 등으로 사업 여건을 정비하고 있다. 또 개별 부처가 아닌 범국가 차원에서 제품기술뿐 아니라 공정기술, 서비스기술 등 차세대 제조업 모델에 맞춰 필요한 기술 개발 및 인력 양성 등이 실행, 관리되고 있다.

―탈 제조업을 추진하던 선진국들이 다시 제조업 강화로 회귀하는 배경은.

▲이 경제연구실장=선진국에서는 인건비 상승과 3D 기피로 제조업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서비스부문이 제조업 부문에서 줄어든 일자리를 채워왔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만성적 실업난을 겪고 있다. 최근 기술발전으로 제조업의 생산성과 작업환경이 크게 개선되자 만성적 실업난 해결의 돌파구로 제조업 부흥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서 연구실장=위기를 겪으면서 선진국들도 결국 제조업이 경제의 뿌리라는 것을 인식했다. 나무가 비바람과 추위에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성장하려면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모든 산업은 제조업과 연계할 때 성장속도가 빠르고 연관분야로의 팽창력도 크다. 이러한 인식 전환은 제조업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우리로서는 새겨야 할 점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융합이라는 거대한 트렌드가 기저에 있다고 본다. 제조업을 매개체로 각자 강점이 있는 다른 분야와 융합한다면 시너지를 배가할 수 있다.

▲이 수석연구위원=선진국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독일 등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가 위기 극복이 빠른 현상을 유심히 봤다. 이후 일자리 창출과 첨단기술 확보, 국가 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제조업의 글로벌 리더십 재확보에 나서고 있다.

―선진국의 제조업 강화 정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 경제연구실장=선진국의 기술력이나 창조적 혁신역량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런 혁신역량이 제조업 강화로 연결되면 우리와의 기술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최근 미국 경쟁력강화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세계 3위이던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지난해에는 독일과 미국에 밀리며 5위를 기록했는데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한국경제로서는 제조업과 수출이 성장엔진인데 이 부문이 흔들리면 내수도 동반침체될 수밖에 없다.

▲변 연구실장=제조업 경쟁력의 상대적 저하가 우려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보통신기술(ICT) 접목 제조업 등 새로운 세대의 제조업이 활발히 퍼져나가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들의 제조업 강화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선진국에, 임금 등 비용 측면에서는 중국 및 동남아 국가 등에 밀릴 수 있다. 특히 주요 수출품목 중 기술적 우위나 노동비용 측면에서의 우위가 강하지 못한 조선.철강 등은 단시간 내에 붕괴할 수도 있다.

▲서 연구실장=미국의 경우 셰일가스를 활용하는 관련산업의 생산비용이 크게 낮아지면서 전반적인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미국의 경쟁력이 비교적 강했던 화학, 소재, 첨단 부품 등을 중심으로 자국 내 생산기반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서는 대미 수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경우 주력제품이 우리와 상당히 중복된다. 따라서 일본 제품의 경쟁력이 향상되는데 우리 제품의 경쟁력은 강화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 제조업 혁신 기반은 취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어떤 점들이 문제인가.

▲변 연구실장=법인세율을 낮추고 있는 경쟁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법인세 인상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논의가 진행되면서 제조 기반 약화가 우려된다. 시장 혁신을 하기에는 규제 수준이 높은데다 최근 경제민주화 광풍으로 정부 규제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고임금, 강성 노조도 경쟁력을 급속도로 약화시키고 있다.

▲이 수석연구위원=가치사슬 내 주도업체 지위를 확보하려는 새로운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업은 지금까지의 '물건을 만들어 파는 업'(제조)이 아니라 '좋은 물건을 만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고객의 구매를 촉진하고 이용성을 제고하는 업'(제조+서비스)으로 혁신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 제조업은 핵심 제품기술의 부족뿐만 아니라 제조 효율성을 높이는 공정 기술, 마케팅·조직 기술, 서비스 기술 등 거의 모든 면을 강화해야 한다.

▲이 경제연구실장=우리 제조업의 제조 역량은 세계 최고다. 그러나 창조경제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 역량은 크게 부족하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상명하복과 연공서열주의식 기업문화, 과거의 성공 경험이나 경영방식을 답습하는 경향, 인재와 시스템 대신 최고경영자(CEO) 중심의 기업운영 등이 문제다. 이공계 석·박사 인력의 79%가 대학이나 공공연구기관에 집중돼 있고 대학이 배출하는 인재도 주입식 교육 때문에 창의성이나 문제해결 능력이 약한 점도 문제라 할 수 있다.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은 노동비용을 증대시킬 것으로 보인다. 불안정한 노사관계도 문제다. 게다가 야당과 노동계가 주장하는 '임금주도 경제성장'에 정부가 화답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이 제조업 재도약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변 연구실장=통상임금 확대로 우리 제조업 국제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 노동비용 증가로 제조업의 르네상스는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특히 통상임금이 확대된 상황에서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에 대해 중복할증하도록 대법원이 판결할 경우 그 영향은 엄청날 전망이다. 또 근로시간 단축으로 중소기업 인력난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근로시간 단축이 강제될 경우 제조업 인력 부족률은 현재 3.9%에서 16.5%로 증가할 것이다.

▲이 경제연구실장=각론을 보면 중장기적으로 수긍이 가는 정책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퍼펙트스톰'처럼 한꺼번에 기업을 덮치고 있는 점이 문제다. 선진국에서 제조업이 퇴조한 것은 노동·환경부문의 부담이 급증한 것이 핵심 요인이다. 우리 제조업의 조로화 내지는 공동화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서 연구실장=내수를 많이 키워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이 형성돼 있다고 본다. 가계소득 증대를 강조하면서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을 완화하려는 정부의 입장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한국 산업의 성장은 양질의 노동력에 힘입은 바 크다. 기업은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고 직원들도 회사의 경쟁력이 곧 나의 경쟁력이라는 상호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성숙한 노사문화로 발전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정책적 제안이 있는지.

▲변 연구실장=선진국 제조업 부흥을 꼼꼼히 살피고 교훈을 배워 산업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서비스업 육성은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제조 기반을 손상하지 않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은 제조업 르네상스를 위한 로드맵을 짜고 이를 실천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인 성장세를 지켜냈다. 미국처럼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이나 부실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적극 활용할 필요도 있다.

▲이 경제연구실장=한국 제조업계의 창조와 혁신활동을 촉진해 세계시장과 시대흐름을 선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 각종 사전적 규제를 철폐해 신규 사업 기회를 마련하고 배출권 거래제 등과 같은 기업경영상의 과중한 부담을 최소화해 경쟁국 수준의 제조업 경영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 수석연구위원=제조업 혁신 관점에서 '제조 기술' 개발보다는 '제조업 모델'을 구축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기존 제조업 관점에서 벗어나 산업계, 정부, 학계가 결집한 정책 마련이 요청된다. 또 신생 제조업체가 등장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시장 개발 정책'도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해외 시장에서의 제조업 창업을 지원하는 정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외 담당 부처별로 개별적으로 발표되는 정책보다는 국가 차원의 단일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서 연구실장=가치 중심, 독창성, 생태계 등 혁신 주도형 성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제조업의 서비스화는 그 중요한 단초다.
우리가 강점을 가지는 분야를 중심으로 제조업이 레버리지가 되는 산업발전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제조업 전반에서 혁신 마인드가 흐르도록 적극적인 산업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마트폰 이후를 걱정하는 우리나라도 날개 없는 선풍기에 버금가는 혁신적 돌파(breakthrough) 제품을 만드는 날을 앞당겨야 한다.

정리=김기석 김병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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