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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거래자도 파산신청 원금탕감 상당수

박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9.18 05:31

수정 2014.11.05 00:49

신용회복프로그램을 악용하는 도덕적해이 현상이 도마에 올랐다.

개인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는 개인 당사자의 도덕성과 신청을 부추기는 일부 변호사와 법무사들, 그리고 부채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적 미비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법원과 검찰도 재산 확인 방식을 개선하고 개인파산 및 회생 서비스 과정에 부당이득을 얻은 법조 브로커 적발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신청 수요의 급증으로 한계 상황을 맞고 있다.

■무늬만 채무불이행자 수두룩

신정아씨처럼 부자들의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 신청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05년 은행권의 공무원 저리 대출 중단 사태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2004년 9월 개인채무자 회생제도가 시행된 이후 공무원들이 법원에 신청해 은행 빚을 탕감받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발단이 된 사건이다. 당시 부채 액수만 무려 6조원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공무원의 퇴직금을 담보로 잡을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저리 신용대출을 받고 개인회생 절차를 선택해 버린 공무원들이 수백명에 달했던 것이다.

아울러 채권추심업을 전문으로 하는 신용정보사들은 연체가 없는 정상 거래자도 이를 신청해 원금 탕감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청 직전에 신용카드나 마이너스 대출을 한도까지 이용한 뒤 이를 악용하거나 빌리지도 않은 사채를 과다 계상하는 경우는 이미 고전적인 수법이다.

검찰 조사에서도 개인회생 및 파산제도를 금융기관이나 타인에 대한 채무 이행을 회피하거나 재산을 숨기기 위한 ‘빚탕감 잔치’로 악용한 사례가 여럿 포착됐다.

박모씨는 남편이 경기도 성남시에 2억원 상당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재산이 없는 것처럼 재산세비과세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파산신청을 했다.

일선 동사무소에서 특정인의 재산세 비과세증명서를 발급받을 경우 거주지 재산상태만 나타나고 다른 지역 부동산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파산된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던 김모씨는 전세보증금 3000만원에 거주하고 있는 데도 집주인과 짜고 월세 50만원에 세들어 있는 것처럼 계약서를 꾸며 채무초과 상태로 만들었다.

■너도 나도 채무불이행자 신청

서울 삼성 지하철역 입구.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을 소개하는 법무법인 책자가 쌓여 있다. 마케팅이 극성인 만큼 채무 구제 건수도 느는 것이다. 신씨처럼 변제책임을 쉽게 회피하는 부류 탓에 최악의 상황에서 구제받아야 할 사람들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상황이다.

특히 개인파산, 개인회생, 개인워크아웃 신청이 대조를 이루는 것도 채무불이행자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을 방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개인파산은 채무부담을 완전 탕감해주지만 개인회생은 원금의 20∼90%를 면제해주며 워크아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채무 프로그램에 따라 원금을 거의 다 갚아야 한다. 이에 따라 파산신청 선호도 역시 개인파산, 개인회생, 워크아웃 순이다. 이에 공교롭게도 신용회복위원회의 위상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은 법원의 소관인 반면 워크아웃은 신용회복위원회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법무법인의 과열 영업의 결과 변호사 수수료도 ‘덤핑’ 수준으로 전락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개인파산 신청을 위한 변호사 수수료가 지난 2005년 말 이후 수임경쟁 심화로 개인회생제도 시행 초기에 200만∼300만원 하던 것이 최근에는 100만원 내외(법무사의 경우 50만원)로 하락했다.

■경제약자 보호 vs 채권자 위상 강화 ‘팽팽’

현실적인 인과 문제에 앞서 우리 사회의 과다 소비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신씨가 “돈이 많았다” “BMW 차량도 사실은 내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개인회생 허가를 받을 당시 있는 재산을 숨겨 허가를 받은 것은 아닌지 조사 중이다. 타인을 의식한 과다소비와 신용거래의 원칙을 무시한 사례인 셈이다.

과다소비형 파산의 증가는 신용대출 시장을 위축시켜 생활고형 파산을 늘리는 요인이 된다. 최근 늘어나는 과다소비형 파산은 금융회사의 채권회수율을 낮춰 신용대출의 공급을 줄이거나 대출 이자율을 높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채무자 재산조사를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인원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용정보업체들은 재산조사에 대한 채권자 위상도 강화해 실질적 재산파악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법무부 관계자는 "개인 파산 신청 때 서류를 갖고 심사하기 때문에 재산 은닉 여부가 제대로 걸러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빼돌린 뒤 파산신청을 하는 사기신청도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경우에 대비해 파산 인가 전 재산 확인 등 나름대로 불법적인 행위를 막는 절차와 장치를 마련해 놓고는 있지만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제도적인 보완책 또는 개선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홍석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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