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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오를때 만든 규제,지금은 되레 독

박일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2.04 21:19

수정 2008.12.04 21:19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의 중대형 아파트 입주예정자인 K씨는 아파트 입주가 가까워지면서 울화통이 치민다. 분당 등 인근 집값이 떨어져 시세차익을 바라기는커녕 당장 손실을 걱정해야 하는 마당에 1억원가량의 채권값을 더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K씨는 2006년9월 판교신도시 125㎡ 아파트에 청약하면서 채권입찰가액 3억원을 써내 이 아파트를 당첨받았다. 당시 정부는 당첨자에게 돌아가는 과도한 시세차익을 차단하기 위해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에 대해 ‘채권입찰제’를 적용했다. 채권입찰제는 인근 집값의 90%선까지 10년 만기 국민주택기금 채권을 사도록 한 것이다. K씨 역시 당시 살 수 있는 최대한 규모의 채권액을 써내 당첨됐고 분할납부방식으로 입주시점인 내년 1월에 채권입찰액 중 나머지 30%의 채권을 사야 한다.


K씨는 “판교신도시에서 내년 초 분양하는 아파트는 주변 집값이 줄줄이 하락하면서 모두 채권입찰제가 적용되지 않는데 미리 분양받은 우리는 여태 채권입찰제로 인해 자금을 마련하느라 부담이 크다”면서 “정책 목표에 맞지 않는 규제는 빨리 없애 서민들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하락기 채권입찰제 유명무실

4일 판교입주예정자연합회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집값이 대세하락기에 접어들면서 채권입찰제, 청약가점제 등 참여정부 당시 집값 상승기에 만들어진 규제들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나친 시세차익을 막고 실수요자들에게 보다 많은 내집마련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집값 하락기인 요즘들어 오히려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실수요자들의 청약기회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채권입찰제의 경우 분양가상한제 적용에 따라 당첨자가 지나친 시세차익을 얻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2006년 공공택지 지구내 전용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에 도입됐으나 지금까지 2006년 분양한 판교신도시와 2007년 공급한 고양시 일산2지구 휴먼시아를 제외하고는 적용된 단지가 없다. 당초 채권입찰제 적용이 예상됐던 경기 광교신도시조차도 채권입찰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분양가가 ‘인근 시세’와 비슷하거나 별 차이가 없어서다.

채권입찰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화 됐는 데도 이를 적용받아 이미 분양받은 단지의 중대형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은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아직 입주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은 사실상 시세차익을 거두지도 못했는데 채권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의 다른 아파트는 채권입찰제를 적용받지 않아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판교신도시 입주예정자연합회의 K씨는 “2006년 판교신도시 중대형에 당첨된 사람들은 채권입찰 상한액을 써내고 일시에 자금을 조달하는 데 부담이 커 입주 때 30∼50%를 내도록 분할납부를 하도록 했다”면서 “인근 분당 등 주변 집값이 이미 30% 이상 떨어진 마당에 채권을 사 손실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해약하고 싶은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청약가점제 무용론 확산

청약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청약가점제도 정책목표와는 어긋나게 쏠림현상만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미분양이 넘치는 마당에 청약가점제가 사실상 의미가 없는 상태가 되면서 청약통장 가입자는 이미 지난 9월 기준 50만명 정도가 감소하면서 청약통장 무용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대신 가점이 낮은 실수요자 중에는 애초에 유망 단지 청약을 포기하는가 하면, 가점이 낮아도 배짱으로 청약했다가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한 아파트 단지에 청약가점 차이가 60점씩 나는 경우도 흔하다. 사실상 실수요자를 거르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나비에셋 곽창석 사장은 “청약가점제가 침체된 분양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측면이 크다”면서 “요즘 처럼 침체된 시기가 누구나 사고 싶은 집에 자유롭게 청약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쳐야 하는 적기”라고 주장했다.


/jumpcut@fnnews.com 박일한기자

■사진설명=최근 집값 급락세가 지속되면서 참여정부 시절 가격급등기에 도입됐던 각종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규제들이 사문화되고 있다. 주택시장 격변기에 내집마련에 나섰던 실수요자들이 유탄을 맞고 있다.
대표적인 채권입찰제의 유탄을 맞고 있는 단지가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 중대형 청약자들이다. 판교신도시 아파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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