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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올 220만채 은행에 넘어가

유정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2.14 22:04

수정 2008.12.14 22:04



【로스앤젤레스=강일선특파원】추락하는 미국 부동산 시장엔 아직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집값은 연일 폭락하고 집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건설경기는 얼어붙은 지 오래다. 미 모기지은행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차압 주택 건수는 1년 전에 비해 76% 증가했다. 이로써 올 한 해 동안 은행 소유로 넘어간 주택 수는 모두 220만채로 늘어났다.

부동산열기를 부추긴 것은 바로 금융기관들이었다.
3년 전 모기지를 판매하는 금융기관들은 서로 앞 다퉈 새 상품들을 내놓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변동이자율모기지(ARM)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크레디트가 낮아 집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자율을 약간 더 높여 집을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심지어 돈 없이도 집을 장만할 수 있는 노다운 상품까지 등장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집을 사들였고 주택 업자들은 집을 짓기에 바빴다. 주택 단지를 조성할 만한 공간만 있으면 토지소유주로부터 땅을 구입해 집을 지었다.

판매수익을 높이고 구매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근 3∼4년 동안 지어진 집들은 대개 건평 2500∼4000스퀘어피트(약 230∼360㎡)의 대형 주택들이 주류를 이뤘다. 대지는 보통 7000∼1만2000 스퀘어피트였다. 가격은 지역에 따라 달랐지만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1시간 내에 있는 지역의 분양가는 평균 40만달러 중반대였고 30분씩 더 멀어질수록 10만달러 정도 가격차가 벌어졌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자료를 보면 전국의 기존주택 중간가격은 1년 전보다 9.8% 떨어져 연간 하락률로는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서 건설 착공도 거의 끊긴 상태다. 단독주택 공사허가 규모는 500억달러로 정점에 달했던 지난 2005년 3500억달러의 7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석유파동과 금융위기로 최악의 국면을 맞았던 1980∼82년 기간과 비슷한 규모다. 주택 착공 건수는 지난 10월 말 현재 791건으로 지난 1989년 이후 가장 저조했다. 신규 주택 판매 건수는 50만채로 지난 91년 수준에 머물렀으며 기존주택 판매 건수는 470만채로 지난 1999년과 비슷했다. 다만 최근 들어 기존주택을 중심으로 매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택 연관산업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고 개인소비 지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경제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집값 폭락은 금융기관들의 부실을 확대시키고 이는 신용경색으로 이어져 개인과 기업들의 소비를 급속히 위축시키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대출을 억제함으로써 주택 구입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주택 값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3·4분기 중에만 주택 소유주 10명 중 1명이 모기지 대출상환을 연체했거나 집을 빼앗겼다. 30일 이상 연체한 사람이 6.99%, 은행에 압류된 건수는 2.97%였다. 이 같은 연체율과 압류률은 미국 모기지은행연합(MBA)이 지난 1979년 조사에 착수한 이래 2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그렇다면 부동산 폭락사태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내년부터 실물경제의 본격적인 하강과 함께 실업률이 높아지면 부동산 시장의 침체기간이 연장될 공산이 크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IMF는 내년 미국 실업률이 8∼9%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UCLA 산하의 앤더슨 경제연구소는 8.9%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수개월 동안 각 기관들과 전문가들이 예측한 것보다 경제상황이 훨씬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내년도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부동산 경기침체는 지속될 것이며 회복 시간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와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는 이러한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정부가 모기지 부채를 떠안아 가계부담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디스 이코노미닷컴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자동차나 금융기관을 지원하는 것보다 주택 소유주들에 대한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와 민주당 역시 이러한 정책 제안들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내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압류 위기에 몰린 주택 소유주들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구제책들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금융과 부동산 시장을 일시에 회복시키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안정을 찾아야만 집값이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과거의 사례로 미뤄볼 때 미국 부동산 시장은 앞으로 수년간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kis@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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