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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 ‘알짜오피스’ 호시탐탐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2.14 22:10

수정 2008.12.14 22:10



국내 부동산경기 침체에도 꿋꿋하게 버티던 서울지역 오피스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최근 급락세를 보이면서 10년 전 외환위기 직후의 충격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당시 기업들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본사 건물까지 팔아치우고 경매물건이 폭주하면서 시장에는 반토막난 알짜 매물이 속출했었다. 이런 가운데 외국계 자금들이 대거 이들 물건을 매집한 뒤 경기가 회복된 2002∼2004년 사이에 되팔아 막대한 환차익과 시세차익을 챙겼다.

이런 상황은 최근에도 감지되고 있다. 시세보다 20%가량 가격을 낮춘 오피스 급매물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계와 유럽계 자금들이 최근 급매물을 노리고 있다.

■오피스빌딩도 급매물 속출

1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서 매물로 나온 오피스 빌딩 가격이 불과 석달 새 평균 15∼20%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 붙으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개인들이 연면적 5000㎡ 안팎의 중소형 빌딩을 잇따라 매물로 쏟아내고 있지만 매수세가 달라붙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호가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는 서울지역 오피스 시장이 만성적인 공급부족으로 해마다 임대료와 매매가격이 급등하던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오피스정보 전문업체인 신영에셋의 홍순만 이사는 “금융위기 이후 매물이 두 배 이상 늘었지만 매수세가 전혀 없어 호가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중구 충무로의 K빌딩은 지난 9월 4000억원에 매물로 나왔으나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현재 매도호가가 3250억원으로 빠졌다.

강남구 강남역 인근 D빌딩도 지난 9월 매물로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팔리지 않은 상태다. 연면적 3만3000㎡ 규모의 이 빌딩은 9월 2000억원에 나왔지만 계속 팔리지 않자 현재는 당초 호가보다 20%나 빠진 1600억원대로 몸값이 낮춰졌다.

중구 을지로1가 N빌딩도 당초 3.3㎡당 1400만원대에서 매각을 추진하다 현재 1200만원대 초반까지 내려간 상황에서 매수자가 계약을 포기해 매각이 무산됐다.

■내년 상반기엔 30%까지 빠질수도

시장 전문가들은 서울 오피스 빌딩 가격이 지금보다 더 내려 내년 상반기엔 평균 30%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4·4분기에 중소기업이 매물을 쏟아내고 있는 데다 내년에는 대기업들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건물을 대거 쏟아낼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교보리얼코 임홍성 팀장은 “대기업들도 실적부진과 유동성위기에 시달리고 있어 내년 상반기에는 우량매물이 대거 나올 것”이라며 “기업들이 많이 가입하고 있는 사모펀드 등도 만기 도래물량이 많아 이들 매물이 가세하면 오피스 빌딩 가격은 30%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계 등 외국자금 눈독

서울지역 오피스가격이 급락세를 보이자 일본과 유럽 등 외국계 자금들이 국내 오피스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올해 들어 원화가치가 엔화에 비해 50%이상 하락했고 오피스 매물도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영에셋 홍 이사는 “자금 특성상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감안해도 최근 들어 1000억대 투자자금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있고 해외에서도 매수를 저울질하고 있다”면서 “해외에서 매물현황이나 매매가격을 파악하기 위해 문의해 오는 경우도 부쩍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해외자금 중에는 특히 일본계 자금이 서울 오피스 투자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계 자금은 엔화가치가 불과 몇개월 만에 크게 올라 환율이 정상화되고 경기가 회복되면 막대한 환차익에 시세차익을 동시에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홍 이사는 “일본 자금들은 국내 오피스 시장이 외환위기 당시 반값으로 추락했다가 불과 2년 만에 가격을 회복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서울 오피스 시장을 아주 매력적으로 보고 있다”며 “더구나 공실률도 아시아지역 도시 중 최저 수준이어서 안정적인 임대수입도 기대할 수 있어 매입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피스 시장, 외환위기 전철 밟나

서울 오피스 시장이 10년 전 외환위기의 전철을 밟을지 여부는 한국경제가 금융위기를 얼마나 빨리 딛고 일어서는가에 달렸다.

교보리얼코 임 팀장은 “일본 자금뿐만 아니라 유럽자금도 서울 오피스 시장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더 이상 하락하지 않아도 환차익만 보고 투자에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내년 오피스 시장은 가격의 추가하락 여부에 관계없이 외국자본이 주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샘스 이한승 투자자문실장은 “현재로서는 매매가격이 급락하고 매물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외환위기와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며 “좋은 매물이 나와도 국내 자금은 유동성 때문에 매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결국 해외자금들이 또 한번 휩쓸고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kwkim@fnnews.com 김관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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