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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빨리빨리가 대충대충으로

안대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1.28 22:49

수정 2009.01.28 22:49



‘성급한’ 구조조정이 자칫 또 다른 부실 구조조정을 가져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른바 ‘빨리빨리’가 ‘대충대충’ 구조조정을 낳을 상황에 부딪혔다.

장기적인 산업 발전 청사진 없이 밀어붙인 구조조정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자본확충펀드 추진으로 생존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은행권 △업계의 장기비전 제시 없이 표면적 부실 제거에만 혈안인 금융당국 △건설·조선 전문가가 없는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 등으로 부실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당초 예상과 달리 자율구조조정(워크아웃)과 유동성 지원이 병행돼야 할 채권금융기관의 신용위험평가 ‘C등급’ 건설사가 퇴출기준인 ‘D등급’ 취급을 받으면서 업계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또 한국신용평가의 신용등급 하향설이 나오면서 C·D등급 모두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에 따르면 C등급 판정을 받은 10개 건설사에 대한 보증기관의 건설공사 보증서 발급도 어려워졌다.

이러한 구조조정에 따른 부작용은 건설과 조선에 대한 장기비전 없이 주관부처가 지식경제부에서 금융당국 위주로 추진되면서 업계와의 ‘온도 차’가 심해진 탓이 크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부서가 지경부가 아닌 금융당국이어서 한계가 많다”며 “타 부처의 구조조정 정책 참여도를 더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또 책임 있는 주관기관이 없이 은행들이 ‘환부’를 도려내는 ‘집도의’ 역할만 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의사’ 역할을 하기엔 은행 자신의 생존 문제에만 혈안이 된 상태인 점도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구조조정이 금융기관에 미치는 부실을 막는 것이 목적이 되다 보니 일부 전망이 밝은 업체도 마구잡이로 C등급이 된 경우도 있다”며 “앞으로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비전 제시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상호 GS건설 경제연구소장도 “당초 C등급은 지원 등을 통한 워크아웃, D등급은 퇴출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미 시장에서는 C와 D등급이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며 “당당하게 C등급을 받은 업체도 문 닫을 판”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구조조정 막후 조율 역할을 담당하는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도 은행연합회, 자산운용협회, 보험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공인회계사회 및 대한변호사협회 출신은 있지만 건설·조선업계에 정통한 전문가는 없는 상태다.

한편 ‘과거 실패한 워크아웃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일고 있다. 실제 금융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2000년 초 워크아웃이 진행된 기업 100여개 중 현재 워크아웃을 통해 나아진 기업은 주로 중소기업들뿐이다.
특히 워크아웃 단계에서 이미 30개사 이상이 부도가 났고 10여개사가 여전히 워크아웃이 진행 중일 정도로 금융기관에 맡겨진 워크아웃은 ‘시장 자율적인 치유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이에 따라 은행의 건전성에 부담을 주는 업체들만 퇴출하는 식의 ‘영미식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여론도 일고 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단기적 성과를 노린 수축형 구조조정으로는 문제점이 계속 누적돼 시간만 연장될 뿐”이라며 지난 10년간 한국의 구조조정 행태에 대해 꼬집은 바 있다.

/powerzanic@fnnews.com 안대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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