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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 사고 팔면 손해’ 매수-매도자 동상이몽

박일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3.19 22:09

수정 2009.03.19 22:09



#1. 중소기업 사장인 C씨는 경기 이천시 구갈지구의 토지 1980㎡를 지난 1월 3.3㎡당 60만원에 매입했다. 경기 상황이 나쁘지만 땅값이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해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곳에 전원주택용 토지를 사둔 것이다. 그는 이달 초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하지만 며칠 전 정부가 비사업용토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등기를 서두른 것을 후회하고 있다. C씨가 땅을 살 때 인근에서 똑같이 3.3㎡당 60만원 하던 것이 규제완화책이 발표된 이후 50만원으로 내렸기 때문이다. 양도세 부담을 매수자에게 전가하던 땅주인이 세금이 줄어들자 땅값도 덩달아 낮춘 것이다.
C씨는 “경기도 안 좋고 규제완화로 좋은 매물이 더 늘어나는 마당에 괜히 급하게 부동산을 산 사람만 손해”라고 말했다.

#2. 서울 강남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K씨는 5년째 보유하고 있던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 58㎡를 지난해 12월 9억원에 팔았다. 당시 부동산 대폭락론이 확산되면서 얼마나 더 빠질지 누구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서둘러 파는 게 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급매물로 처분했다. 하지만 요즘 다시 일부 상승한 집값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정부와 여당이 재건축 규제를 완화한다고 몇 차례 발표한 이후 단 두달 만에 2억원이나 오른 11억원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K씨는 “시장이 계속 좋지 않을 것으로 보고 아내를 설득해 억지로 급매물로 처분한 것을 너무너무 후회하고 있다”면서 “운영 중인 식당도 적자에 허덕이는 마당에 그나마 재테크 수단으로 사놓은 집도 잘못 팔아 한순간에 몇 억원을 손해 봤다는 생각을 하니 잠아 안 온다”고 말했다.

■매도 vs. 매수자 규제완화 놓고 ‘동상이몽’

1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부동산시장에 ‘지금 부동산 매매를 하면 손해’라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매수자는 매수자대로, 매도자는 매도자대로 잇따른 정부 규제완화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서두르면 손해본다’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매수자들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전망임에 따라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근엔 정부의 규제완화도 오히려 집값을 더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면서 반기는 분위기다. 정부가 양도세 완화 등 각종 세금 규제를 풀고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등 거래 활성화 대책을 잇따라 발표함에 따라 매수자들은 매물이 늘어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여기고 있다.

각종 부동산 정보업체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정부가 규제를 푸는 것은 집값이 더 떨어진다는 신호”라면서 “매입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글들이 수십개 올라와 있다.

이에 비해 매도자 입장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규제완화 대책을 집값 상승의 전조로 보고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강남3구의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해제나 재건축 규제 등 메가톤급의 핵심 규제완화 일정이 아직 남아 있는 마당에 집을 미리 파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서두르면 손해본다” 분위기 확산

서울 강남구 대치동 토마토공인 김성일 사장은 “지난해 말 급매물로 팔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올해 1∼2월 집값이 반등하는 것을 보고 서둘러 판 것을 후회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지난해 보유세 부담도 크게 줄여줬고 강남3구 등에 대한 규제완화도 예정돼 있기 때문에 반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금 팔면 손해라는 심리가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매수자와 매도자들의 이런 ‘매매 지연’ 심리가 계속되면 시장 왜곡을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나비에셋 곽창석 사장은 “정부 정책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아서 시장 참여자들이 동상이몽을 하고 있는 셈”이라면서 “매수자와 매도자들이 시장을 시장 논리대로 파악하지 않으면서 왜곡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규제완화 계획대로 추진해야

시장에서 곧 시행될 것으로 생각했던 강남3구에 대한 투지지역·투기과열지구 해제나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은 계속 미뤄지는 데 비해 상당기간 규제완화 폐지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비사업용 토지 양도세 중과 폐지는 갑자기 추진되는 등으로 시장이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투모컨설팅 강공석 사장은 “규제완화 속도와 방법, 타이밍이 오락가락하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규제완화 계획을 발표했으면 계획대로 진행해 시장에 믿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jumpcut@fnnews.com 박일한기자

■사진설명=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가 계속되면서 최근 주택시장에서 매도자와 매수자간 집값 전망을 놓고 ‘온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격변하는 시장 상황에서 ‘서두르면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매수·매도자간 힘겨루기가 심화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개포동 일대 아파트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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