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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사채시장 사라진다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10.25 17:58

수정 2014.11.20 13:14

대한민국 사금융 1번지로 통하던 서울 명동 사채시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기업의 어음할인을 주업으로 삼던 명동 사채시장은 해방 이후 시중은행에서 외면받은 중소기업들의 마지막 자금확보 창구 역할을 담당하며 호시절을 누렸다. 그러나 2000년 들어 기업 간 현금결제가 늘고 2009년도에는 전자어음제도가 확대 강화되면서 명동 사채시장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럼에도 명동 사채시장은 일반인들 사이에 여전히 수백조원의 지하자금이 거래되는 '황금 시장'처럼 회자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명동에서 일부 활동 중인 어음할인 중개업자와 거래 현장을 밀착 취재해 국내 금융사에 한 획을 그었던 명동 사채시장의 '명암', 어음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4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 4일 서울 명동에서 20여년 기업 어음할인업에 종사해온 이진석(가명·65) 사장이 운영하는 사무실을 어렵사리 방문했다.
명동2가 한복판에 위치한 신축 오피스텔에 자리잡은 그의 사무실은 어수선할 것 같은 예상과 달리 책상 3개를 갖춘 채 단출한 분위기였다. 그는 최근 사무실 출근이 뜸해지고 있다.

이 사장은 "하루에 5000만원짜리 어음할인 한 건 하기도 어렵다. 수입이 한창 때의 10분의 1일도 안 된다"면서 "조만간 명동에서 한가락하던 어음할인 중개업자들은 모두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 사장은 "명동 사채시장의 뼈대를 구성하는 어음할인 중개업소가 급감하고 있다는 데서 명동의 종말을 읽을 수 있다"면서 "A급 기업 어음거래만 다루는 어음거래 중개업체수가 2000년 중반까지 300여개에 달했는데 지금은 70개 정도로 줄었고 그나마 이들 대부분이 하루 한 건의 어음할인도 못 채우는 실정"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은행 뒤편에 위치한 한국대부금융협회의 내부자료인 '대부업 등의 등록 교육현황' 자료를 건네받고 명동 어음할인 시장의 추락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 2009년 5월부터 집계한 이 자료는 대부업 종류를 담보, 신용, 어음할인 등 8개 항목으로 나눠 대부영업 업종 의향을 집계한 수치를 담고 있다.

지난 2009년 8개월간 대부업 신규 등록 의사를 밝힌 총 5694명 가운데 어음할인업을 하겠다는 업자는 단 2명에 불과했다. 2010년에는 총 7131건 가운데 69건이 어음할인업을 선택했다. 올해에는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총 4266건 가운데 단 28명만 어음할인업을 택해 전년보다 어음할인업종 선호 수는 절반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2년여간 신규 어음할인 진출 예상자는 전국적으로 90건이다. 의사를 밝혀도 정식 등록 후 영업하는 건 아니어서 실제 숫자는 더 적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 어음할인업자의 경우 3년마다 지자체에 등록 갱신을 해야 하는데 이 수치도 미미하다. 어음할인업 갱신을 하겠다는 업자는 지난 2009년 총 6340건의 대부업자 중 한 건도 없었다.
2010년도에는 총 7912건 가운데 10건에 그쳤다. 올해는 7월 말까지 총 5953건 중에 52건을 기록했다.
등록 제도에 대한 인지도가 넓어져 늘어났을 뿐 명동 사채시장의 위상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김성환 강두순 강재웅 이유범 이병철 최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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