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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등 지식산업 ‘찬밥’ 신세

윤휘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12.09 21:02

수정 2008.12.09 21:02



“새 정부 들어 정보기술(IT) 산업은 완전히 찬밥 신세입니다.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은 온통 부동산이나 건설에만 집중돼 있을 뿐 소프트웨어(SW)나 IT 등 고부가가치 지식산업은 들러리 신세입니다.”

지난 14년간 IT 분야에 종사해 온 한 중견 SW업체 사장의 푸념 섞인 말이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새 정부 들어 IT산업의 정책 방향이 대폭 수정 또는 부분 축소되면서 IT산업이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올해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IT 프로젝트 발주물량은 전년 대비 10% 이상 줄었다. 관련 시장이 그만큼 줄었다는 소리다.
내년도 공공부문의 IT프로젝트 예산은 올해보다 7%가량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새 정부 이후 IT업계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 차기 대통령 당선자인 버락 오바마가 IT를 ‘미국 부흥’의 핵심 동력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면서 이 같은 박탈감은 더 커지고 있다.

■거꾸로 가는 미국과 한국의 IT정책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선거운동 기간 “모든 국민이 온라인에 접속해 정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같은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오바마는 최근 대통령 당선자 자격으로 미국 전역에 브로드밴드(초고속인터넷)를 구축하고 무선인터넷 사용을 위한 새로운 표준을 만들기로 했다. 오바마가 노리는 것은 광활한 미국 전역에 걸친 브로드밴드 및 무선인터넷 구축사업으로 경제 부흥을 꾀하겠다는 것.

미국은 90년대 초반 앨 고어 부통령이 ‘인포메이션 슈퍼 하이웨이(정보 고속도로)’ 건설을 주장하면서 초고속인터넷 보급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더 빨리 이를 받아들여 전국적인 초고속인터넷 망을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첨단 IT서비스와 단말기를 세계에 선보였고 우리나라는 ‘IT강국 코리아’란 명성을 듣게 됐다.

이번 오바마 당선자의 IT전략은 우리나라의 IT정책을 상당 부분 벤치마킹했다는 평가다. 게다가 오바마의 IT정책은 우리나라보다 더 급진적이다. 오바마는 ‘망 중립성’과 ‘오픈 네트워크’를 주장하고 있다. 네트워크 접속 권한을 특정 통신사업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개방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기업이나 개인들이 자유롭게 인터넷 기반의 뉴미디어 산업에 진출할 수 있게 지원해준다는 정책이다. 미국 정부는 지적재산권과 특허 보호 등을 강화하는 것에 정책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즉 기업들이 자유롭게 IT사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면서 분쟁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지적재산권과 특허 분야에서는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전략이다.

■부처간 싸움에 흔들리는 ‘IT강국 코리아’

그러나 우리나라는 ‘IT강국 코리아’를 배우려는 미국 등의 국가들과 정부 정책방향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동안 구축한 초고속인터넷, 이동전화망 등을 기반으로 유선과 무선의 융합, 통신과 방송의 융합 등을 추진하면서 신시장 창출을 추진해 왔으나 새 정부 들어 부처간 IT정책을 조정해 줄 중재자의 부재로 부처간 충돌이 과거보다 잦아지고 있다. 각 부처 입장에서는 IT육성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나 범정부 차원에서 보면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혼선을 주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위피(WIPI)’다. 우리나라에서 휴대폰 등으로 무선인터넷에 접속하려면 반드시 채택해야 하는 게 위피다. 위피를 놓고 이동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업체 및 무선인터넷 콘텐츠 개발업체 등의 이해관계가 엇갈렸지만 방송통신위원회나 지식경제부는 위피가 업계 이슈로 부각될 당시만 해도 서로 상대 부처에 일을 떠넘기며 정책결정을 회피했다. SW진흥은 지식경제부가 담당하지만 무선인터넷이 서비스되는 이동통신 정책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위피 존폐 여부를 어떤 부처에서 결정해야 할지조차 애매한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위피 이슈가 다루기 곤란한 문제를 서로 떠넘기려 한 사례라면 서로 가져가겠다며 다투는 사례도 있다. 바로 정보통신진흥기금이다. 기금 문제는 올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IT진흥을 담당하는 지식경제부가 가져가는 것으로 확정됐었다. 그러나 통신업체들이 기금조성에 필요한 재원을 출연하기 때문에 통신업체들의 규제권한을 가진 방송통신위원회가 기금도 가져가야 한다는 소리가 지속됐다. 급기야 지난 6월 두 부처의 고위 공무원들이 기금 사용을 적절한 수준에서 나누자는 협의까지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계속 갈등을 일으키다가 결국 방통위가 독자적인 기금을 조성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디지털콘텐츠 등 정책 ‘공백’ 상태 많아

아직까지 부처 간 갈등이 정리되지 않은 영역도 있다. 디지털콘텐츠 분야다. 이 문제는 문화체육관광부까지 관여돼 갈등의 정도가 더 심하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IT인프라가 구축되고 IT장비와 단말기가 보급되고 나면 비로소 그 단말기에서 사용될 콘텐츠가 보급된다. 방송망이 구축되고 TV수상기가 보급된 뒤 방송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공급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디지털콘텐츠 영역은 인터넷 콘텐츠, 방송 및 인터넷TV 콘텐츠, 무선인터넷 콘텐츠 등으로 다양해 방통위와 문화부가 아직도 명확하게 규제나 진흥에 대한 역할 정의를 하지 못하고 부처별로 개별적인 정책만 집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들도 이 같은 정책 혼선을 인정하고 있다. 모 부처 관계자는 “정부 내에서도 건설이나 부동산 등에만 관심을 갖고 있지 IT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각 부처가 의욕적으로 일을 벌여 봤자 부처 간 갈등만 조장하게 될 뿐”이라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새 정부의 기본적인 IT정책 기조가 독자적인 IT산업 육성이 아니라 타 산업과의 융합”이라며 “조만간 IT 분야의 ‘뉴딜 정책’을 수립해 새 정부만의 IT정책 색깔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yhj@fnnews.com 윤휘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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