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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방송 융합시대..‘엇박자’ 통신규제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3.04 22:29

수정 2009.03.04 22:29



KT·KTF 합병으로 유·무선통신·방송 융합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통신정책과 제도는 융합시대의 경쟁감시와 융합상품 원가에 기초한 적정한 요금제시 같은 전문규제를 하기에는 턱없이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통신산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방통위가 유선과 무선통신으로 엄격히 구분돼 있는 이전의 제도를 융합시대에 맞춰 정비하지 않아 융합산업 규제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상품 간 회계구분 문제다. 이를테면 KT가 KTF와의 합병 후 집전화와 이동전화를 묶어 KT가입자끼리 할인된 요금으로 통화할 수 있는 망내할인 상품을 내놨을 때 이 상품의 회계를 어떻게 구분할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분당 20원을 할인할 경우 집전화와 이동전화에 각각 10원씩 부담시킬건지 어느 한쪽에 20원을 다 부담시킬 건지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회계가 정확히 구분되지 않으면 서비스의 원가를 제대로 산정하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통신업체들의 1년 사업 중 가장 큰 논란거리인 접속료를 제대로 계산해 낼 수 없어 업체 간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방통위는 각 서비스마다 회계분리를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어 걱정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방통위 스스로 “회계전문가가 부족해 통신업체들의 복잡한 원가를 감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신업계 한 전문가는 “회계분리 감시가 안되면 KT가 통합 후 복잡하고 다양한 결합상품을 내놓고 합병 시너지를 높일 때마다 방통위는 더 풀기 어려운 방정식을 숙제로 안게 될 것”이라며 “회계전문가 확충과 함께 통신요금 원가계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KT·KTF 합병 이전에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지배적사업자 제도도 융합시대에 맞춰 서둘러 정비해야 할 제도다. 지금은 시내전화, 초고속인터넷, 이동전화의 경우 시장점유율 1위 업체를 시장지배적사업자로 정해 이용약관을 방통위에 인가받도록 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선 일반 사업자보다 처벌을 강하게 한다.

그러나 융합형 결합상품이 본격적으로 쏟아지면 서비스 구분이 모호해지는데 이 경우 시장지배적사업자 제도를 어떻게 운영할지 기준이 아직 없다.


특히 방통위가 모든 기간통신서비스를 앞으로는 이동전화, 시내전화 같은 종류로 구분하지 않고 전송업무로 통합하기로 했는데 정작 시장지배적사업자 제도는 어떻게 운영할지 세부계획이 마련되지 않아 시장경쟁의 혼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렇게 제도정비가 이뤄지지 않자 최근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유선통신 필수설비를 모든 통신업체들이 동등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업계로부터는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옛 정보통신부 고위관료 출신 한 전문가는 “방통위가 통신 규제기관으로서 통신산업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KT의 합병일정에 끌려다니는 인상이 짙다”면서 “지금은 규제정책과 제도를 정비해 KT·KTF 합병 이후 시장과 소비자의 혼란을 줄일 방법을 찾는 게 더 시급한 일”이라고 조언했다.

/cafe9@fnnews.com 이구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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