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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재원,지하경제 양성화로] (2) 대안과 정책 ① 실패에서 배운다..과거정권이 준 교훈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1.29 17:31

수정 2013.01.29 17:31

[복지 재원,지하경제 양성화로] (2) 대안과 정책 ① 실패에서 배운다..과거정권이 준 교훈

1982년 5월 4일. 장영자씨와 그의 남편 이철희씨가 어음사기 사건으로 구속됐다.

39세 미모의 젊은 여성이 사채시장을 끼고 어음할인으로 7111억원의 막대한 자금을 굴렸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건실한 기업이 사채꾼들에 의해 맥없이 쓰러지는 걸 보고 사람들은 지하경제의 위력과 허술한 금융감독시스템에 경악과 탄식을 자아냈다. 장영자 사건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사실 당시 사채 시장에서 어음할인은 지하경제의 대명사였다. 1970년대부터 본격 성장궤도에 올라 기업 수는 증가했지만 금융은 뒷받침이 안된 대한민국 경제의 뒷모습이었다.

장영자 사건에 놀란 당시 전두환 정권은 금융실명제법 제정에 착수했다.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1983년 전면 실시한다는 방침까지 발표했으나 경제성장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결국 차일피일 미뤄졌다. 1961년 경제개발이라는 목표 아래 명시적으로 허용됐던 예금·적금에 관한 비실명제, 즉 금융비밀주의는 예상보다 강하고 깊게 뿌리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경제계와 정치권의 반발 속에 흐지부지됐던 금융실명제법은 무려 11년간 캐비닛에서 잠자고 있다가 1993년 8월 김영삼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단행했다. 그 파장은 실로 컸다. 금융실명제를 통해 뇌물과 범죄자금 등을 끄집어낼 수 있었고, 전직 대통령들과 대통령 아들들의 비자금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계는 있었다. 고액 금융거래자 등 기득권의 반발을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반대급부로 사실상 차명계좌를 허용한 것이다. 금융실명제가 절름발이 법, 미완의 제도라고 평가되는 이유다. 차명계좌는 지하에 꽁꽁 묶인 돈을 비록 남의 이름이지만 공식경제로 올려놓긴 했으나 비자금과 뇌물자금 세탁, 탈세와 비리의 온상으로 작용했다.

이후에도 재정확충과 조세형평성을 위한 과세당국의 노력은 득과 실이 공존했다.

2000년대 신용카드 활성화는 지하경제의 주요 수단인 현금거래 비중을 낮추고 투명한 소비구조를 형성했지만 무분별한 카드 남발로 인한 개인 파산은 물론이고 막대한 카드빚으로 인한 자살까지 이어져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경제활성화를 위한 저금리 정책과 막대한 정부 지출이 수반되는 경기부양책도 지하경제를 확대하는 한 축이었다. 낮은 금리로 빌린 돈은 부동산 버블을 키웠고, 막대한 시세차익들은 다시 시중은행으로 흡수되지 않고 상당부분 지하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과 2000년대 중후반의 부동산 버블이 지하경제를 확대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태영 경상대 교수와 변용환 한림대 교수는 '지하경제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세무 및 비세무요인' 공동연구를 통해 "정부지출이 늘어날수록 면세혜택도 많아지고 민간 부문의 시장 잠식도 커져 지하경제를 확대한다"고 분석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증세 없이 복지재원을 조달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지하경제 양성화의 목표와 취지엔 공감하지만 불법 사금융이나 도박·마약 등 불법적인 경로로 형성된 검은 돈보다 지상에 비교적 가까운 저소득 자영업자들이 주된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약 70% 정도만 세무당국에 신고되고 나머지 30%가량은 미신고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조세연구원은 간이과세제도를 정비할 경우 연매출액 4800만원 미만의 자영업자 부담이 일시에 상승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지하경제는 자생력을 갖고 시대에 맞춰 다양한 수법으로 변모를 거듭해왔다. 최근 국세청이 예의주시하는 게 바로 역외탈세다.

100여척의 선박을 해외에서 운용하다가 역외탈세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시도상선 권혁 회장이 대표적인 예다. 국세청은 역외탈세에 집중하고 있지만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한 수법도 치열해지고 있어 해외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세무당국과의 정보 협조가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금융정보분석원(FIU)
2001년에 설립된 금융위 산하 기구로 금융회사로부터 마약 밀수 사기 등 범죄와 연계된 자금세탁, 불법적인 해외도피 등의 혐의가 있는 금융거래정보를 수집.분석해 수사기관에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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