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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라, 고도성장의 추억] (1부②) 전 재산이 집뿐인 당신이 은퇴후 흘릴 눈물

최경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2.03 16:59

수정 2014.10.31 12:52

[잊어라, 고도성장의 추억] (1부②) 전 재산이 집뿐인 당신이 은퇴후 흘릴 눈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한 이후 미국 부동산 시장은 2007년 1·4분기 고점 대비 14.3% 하락했고 10대 대도시만 보면 41%까지 폭락했다. 일본은 1986년부터 1990년까지 5년 동안 땅값이 연평균 12.5%, 최고 연 30.7%의 상승세를 보이다 1990년~2005년 말까지 마이너스 76.4%의 폭락기를 거쳤다. 고도성장기를 이미 지난 이들 선진국에서는 역사적인 자산위기를 겪는 동안 부동산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고도성장과 도시화, 베이비붐은 부동산 활황을 불러왔지만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면서 자산구조를 재편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큰 가격조정이 없었고 최근에야 부동산 시장 둔화가 몇 년 동안 계속되자 3% 정도의 가격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연평균 6% 이상의 꾸준한 고도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개인들은 자산재편성을 통해 시대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탈부동산, 힘들어도 가야 할 길

미국과 일본의 가구별 자산구조를 보면 금융자산이 각 68.5%, 59.1%에 이른다.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은 각각 31.5%, 40.9%(부동산 27%)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부동산 70%, 금융자산 25%, 기타 5%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 부동산 비중이 높은 것은 유동성과 환금성이 떨어져 위기 대처에 불리하다는 것이 가장 큰 맹점이다. 저성장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기업들이 도산할 위험이 높아지고, 글로벌 자본시장의 발달과 함께 일시적이며 강력한 위기가 일상화된다는 점이다.

개인으로 보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산가치의 폭등락으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

현대증권 오온수 선임연구원은 "자산쏠림이 나타나면 이벤트가 발생할 때 타격이 크다. 아무리 유망한 자산이라 해도 특정 자산에 쏠리면 안된다"며 "현실적으로 부동산이 팔리지 않는데 억지로 팔라는 것이냐고 답답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실수요에 맞는 사이즈 조정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산편중의 위험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산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전환기적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자산구조조정은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우리나라는 그 변화가 너무 급격하게 다가오고 있다.

인구구조에 있어 고령화 문제는 자산 재배분의 가장 시급한 이유다. 우리나라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7%가 넘는 고령화 단계에 진입한 것은 2000년, 18년 후 고령인구 14%인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2026년에는 그 비율이 20%에 달하는 초고령사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사회 진입에 18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데는 고작 8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소요 연수가 일본은 각 24, 12년, 프랑스는 115년, 39년, 미국은 73년, 21년이 걸렸다.

우리나라가 왜 자산 구조조정이 더디게 진행되는지는 고령화 속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선진국에서 몇 대에 걸쳐 이룩했던 자산변화를 우리는 개인의 일생 내에 압축해서 이뤄야 하기 때문에 고성장시대 향수를 떨치지 못하는 개개인들이 쉽게 부동산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현재 은퇴세대는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줘야 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오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면적에 서울이라는 거대도시가 탄생했고 정부 주도로 주택공급을 창출해 과거 수십년 동안 주택부문에 투자하면 좋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며 "자산 재조정에는 긴 시간이 필요한데 인구구조가 빠르게 조로화되면서 개인들이 투자에 대한 생각을 쉽게 바꾸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권기동 선임연구원은 "부동산은 재조정하는 게 맞다. 부동산이 폭등하는 타이밍은 베이비붐 세대가 40대에 이르는 때이고 반대로 폭락하는 시점은 이들이 60대가 되는 때다"라며 "우리나라가 이 폭락할 시점에 와있고, 경기침체가 길어지면 더욱 자산 재조정은 절실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폭락기에 매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팔고 나서 내가 거주할 집을 다시 살 때도 역시 가격이 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채는 가계살림 재조정 1순위

이런 과도기적 상황이 가계의 자산관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 시급히 부동산 비중을 줄여서 자산 재조정을 해야 할까, 아니면 부동산 시장이 바닥에 근접했으니 좀 더 시간을 갖고 대응해야 할까.

하이자산운용 김승길 마케팅본부장은 "현재 부동산은 하락추세지만 금리 역시 낮아 부동산을 팔아도 마땅히 수익을 낼 만한 투자처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개인 입장에서 자산배분할 때 20, 30대는 공격적 투자를 할 필요도 있지만 40, 50대는 부채가 있는 부동산은 줄이고 정기예금이나 채권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개개인의 조건에 따라 고려할 점은 명확하다. 나이가 젊을수록, 대출 부담이 적을수록 여유를 갖고 자산 재조정에 나설 수 있는 반면 고령층일수록, 대출에 따른 이자 부담이 클수록 부동산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런 조언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그대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담보대출 보유가구중 연령별 부채 현황을 보면 30대는 6390만원, 40대는 8386만원에 그친 데 비해 50대가 가장 높은 1억405만원, 60대에도 8295만원으로 부채가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이는 은퇴 이후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도 이자를 계속 갚아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일본은 30~49세에 부채 규모가 비교적 크고 50세 이상에서는 뚜렷한 부동산 부채 감소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최근 저성장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비금융자산 비중은 85%에 달하지만 10여년 동안 70%대로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이자 부담은 여전하다.

주택담보대출 중 원금을 줄이지 못하고 이자만 납입하는 대출의 비중은 60.4%로 여전히 높다. 이는 집을 살 여력이 없는데도 투자목적 등의 이유로 고가의 주택이나 다수의 주택을 매입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의 연체 발생 시점을 조사한 결과도 이런 사정과 일치한다.
연체 발생은 거치기간이 종료된 지 10개월 이내인 경우가 전체 연체액의 46%를 차지했다.

권 선임연구원은 "큰 집을 부채와 함께 안고 있는 것보다 팔아서 원금을 상환하면 복리효과와 똑같은 이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자 부담을 줄이는 것은 저축으로 이자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의 재테크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탐사보도팀 최경환 팀장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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