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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라, 고도성장의 추억] (1부③) 남보다 덜 잃는 자, 그대가 저금리시대 ‘승자’

최경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2.05 17:15

수정 2014.10.31 12:03

[잊어라, 고도성장의 추억] (1부③) 남보다 덜 잃는 자, 그대가 저금리시대 ‘승자’

월급만 잘 모아 부자된 사람도 있었다. 작은 집 한 칸, 시골 땅 한 마지기 사뒀다가 대박난 얘기도 많았다. 그러나 모두가 1980~1990년대 고성장 시대의 이야기들이다. 재테크로 돈을 버는 시대는 끝났다. 정확히 말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오래된 추억이었다. 돈을 잃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모으는 것이 이 시대 유일한 자산관리 방법일까? 대안은 있다. 위험관리 차원에서 자산을 배분하고 새로운 투자처를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구조적 저성장시대에 진입했다고 해도 아직 고성장을 기대할 나라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단, 과거보다 욕심을 줄이고 주의깊게 자산관리에 임해야 한다.

■재테크의 종말

우리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국면에 접어 들면서 투자자들은 큰 위험을 감수해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가 됐다.

주부 양모씨(38)는 1년6개월 전에 들었던 국내주식형 펀드 수익률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가입 당시인 지난해 상반기 코스피는 1900대였는데 이후 지수가 계속 하락하면서 펀드 수익률은 -5% 아래로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수가 2000대를 돌파했을 때도 여전히 마이너스 수익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엔 지수가 1900 이하로 떨어지면 수익률이 -3%대까지 떨어지지만 지수가 2000을 넘어도 수익률이 플러스로 회복되진 않았다. 떨어질 때 무섭게, 오를 땐 찔끔 오르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양씨가 들었던 다른 원금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들도 거의 제로 수익률 상태고 수익이 난 경우도 3%를 넘지 못했다. 양씨가 요즘 자산현황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펀드 수익률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환매를 언제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다. 그는 요즘 같은 시기엔 속 끓일 것 없이 저축은행 적금에 가입해 3%대의 수익을 내는 게 최선이 아닌지 고민 중이다.

반면 양씨의 어머니(65)는 공무원인 남편의 박봉으로 4남매를 키우면서도 국가적으로 저축을 장려했던 때 꼬박꼬박 돈을 모았다. 1970~1980년대 예금 이자는 연 10%가 넘었다. 적금은 15%를 주는 곳도 있었다. 물론 물가인상률도 높았지만 덜 먹고 덜 입고 살았기 때문에 고물가 피해는 덜 보고 고금리 혜택만 누릴 수 있었다.

앞서 양씨의 어머니가 저축한 시대 우리나라 성장률은 연 10%가 넘는 고도성장기였다. 그의 딸 양씨가 재테크 수단을 고민하는 현재는 3% 내외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예적금의 실질이자율은 0%에 가깝다. 성실함만 가지고는 더 이상 부자가 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잊어라, 고도성장의 추억] (1부③) 남보다 덜 잃는 자, 그대가 저금리시대 ‘승자’


■자산 배치부터 다시 해라

시대가 바뀌어 고수익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는데도 개인 투자자들의 욕구는 변하지 않았다. 국내 시장의 저성장시대 진입과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데도 고수익을 기대하며 증시에 뛰어드는 '개미'들의 숫자는 증가 추세다. 개인 투자자의 주식시장 참여 정도를 알 수 있는 증시 투자자 예탁금 규모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03년 말 투자자 예탁금은 9조5436억원이던 것이 2009년 11조7865억원, 2010년 13조7024억원, 2011년 17조4270억원, 올해 2·4분기 18조2626억원으로 10년간 배로 증가했다. 최근 들어 오름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올 하반기에도 월간 기준 14조~18조원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상황에서는 직접투자나 고위험 투자보다는 중위험, 중수익을 올리는 방향으로 투자패턴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대증권 오온수 연구원은 저성장기 자산관리 노하우로 △자산배분 △해외투자 강화 △중위험, 중수익 추구 △연금상품 가입 등 4가지를 제시했다.

어떤 금융 시장에 얼마의 돈을 투자할 것인지 정하는 자산배분은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 일본이 저성장기에 접어든 과정에서 닛케이지수 추이를 보면 1989년 12월 지수는 3만8876으로 역사적 고점을 찍었다. 그로부터 20년 뒤 2009년 3월 닛케이지수는 7054로 추락, 고점대비 -81.8%를 기록했다. 만약 이 시대에 자산배분을 하지 않고 여전히 고수익을 기대하면서 주식 비중을 줄이지 않았던 투자자라면 손실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일시적인 경기침체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이에 대응하는 수단은 자산 포트폴리오의 과감한 재조정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오 연구원은 "저성장은 저금리 상황을 말한다.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져 수익 기회를 찾는 유동자금이 많아졌고 과거와 같은 고수익 상품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며 "이런 때는 기대수익을 낮춰야 한다. 단기 모멘텀 플레이보다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익 기회를 찾으려는 투자자 사이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경쟁 속에서 개인투자자가 살아 남을 길이 더욱 좁아졌다는 얘기다. 이런 때는 장기 투자를 통한 복리효과를 누리는 것이 개인 투자자가 안전한 수익을 올리는 주효한 방법이다.

■해외로 눈을 돌리자

과거 우리나라의 고성장 시기에 국내에서 성실하게 경제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국가 성장과 함께 덩달아 부자가 됐다면 이제는 정체기에 접어 들었다. 그러나 해외로 눈을 돌리면 상대적으로 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이나, 현재 고성장기를 지나고 있는 신흥국들은 투자처로서 매력을 갖고 있다. 이들 나라의 성장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최근 북미와 유럽의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머징 시장 경기가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선진국 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권기둥 선임연구원은 "하나의 예로 모간스탠리가 2011년 '달러 스마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 말은 미국에 투자할 때라는 이야기"라며 "미국 경기가 하락하면 세계 경기는 더욱 크게 하락해 달러 가치가 올라갈 테고,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 미국 경기는 더욱 빨리 회복되기 때문에 이때도 미국 투자는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경기만 보고 있지 말고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읽어야 투자의 답이 나오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아직 개인 투자자들은 국내 투자에 대한 편중이 심한 편이다. 지난해 국내 간접투자자들의 투자지역 비중을 보면 해외는 33%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 국내에 투자했다. 오히려 2008년에는 해외투자가 41%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당시 중국펀드 열풍을 반영한 것이지만 이후 중국 시장이 폭락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는 아직까지 해외투자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해외투자는 추세적으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몇 해 동안 해외투자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중국 펀드 열풍 이전 상태까지 추락하지는 않았다.

판매 잔액 기준 국내 펀드 규모는 2003년 말 92조원에서 지난 9월 141조원으로 1.5배 성장하는 데 그쳤지만 해외펀드는 같은 기간 1조3000억원에서 36조9000억원으로 28배나 커졌다. 중국펀드의 폭발적 성장이 있었던 2008년에는 판매잔액이 69조원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전체 펀드에서 해외펀드가 차지하는 비중도 10년 전 1.4%에 불과했지만 지난 9월 기준 20.7%로 증가했다. 2007년 중국펀드 폭락의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한 모습은 아니지만 국내 저성장 국면에 대응하는 트렌드로서 해외펀드에 대한 관심이 차분히 높아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올 들어 해외투자펀드 설정 개수도 1월 638개에서 지난 2일 기준 790개로 늘었다.

오 연구원은 "코스피가 1년 넘게 횡보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글로벌 유가증권 시장에서 2%밖에 되지 않는 국내 시장만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온다"며 "저성장, 저금리로 접어들었을 때는 해외에서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투자와 함께 연금상품에 가입하는 것은 저성장시대 필수항목에 속한다.
우리나라도 국민연금 기금고갈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으며, '더 내고 덜 받는' 연금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짧은 기간에 고성장에서 저성장시대로 전환되는 현상이나, 빠른 노령화 속도 역시 다른 선진국들과 다른 우리나라만의 특성이다.
이 때문에 젊은 시절엔 신흥국형 고성장을 경험했던 세대들이 이제는 선진국형 은퇴 후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탐사보도팀 최경환 팀장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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