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2부·7) 女대통령 시대에도 깨지지 않는 ‘정치 유리천장’

박소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5.27 17:12

수정 2014.05.27 17:12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2부·7) 女대통령 시대에도 깨지지 않는 ‘정치 유리천장’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나경원,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의 한명숙 후보가 서울시장에 유력 후보로 출마할 때만 해도, 불과 1년반 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당선될 때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정치의 앞날은 무척 밝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대선 이후 실시되는 첫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후보에 여성이 한 명도 오르지 못한 데 대해 여성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이번엔 진짜 너무했다"는 자조가 나왔다.

특히 지방선거는 기초의회부터 광역단체장까지 정치신인에서 중량급 인사까지 배출되는 최대의 정치무대로, 여성정치인 육성의 토양이 된다는 점에서 실망감은 더욱 컸다.

여야는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선진화를 위한 정당공천 폐지 등을 추진하면서 여성·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여성가산점제, 우선공천제도 등을 약속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여성가산점제도는 경선불복 후 무소속 출마를 막을 장치도 없는 데다 그 자체로 남성 역차별 등 위헌 논란이 불거져 제도적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낙하산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전략공천(우선공천)을 줄이고 여성정치발전의 선순환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기초선거에 참여할 여성인력 확대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정치인 역시 낙선의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2부·7) 女대통령 시대에도 깨지지 않는 ‘정치 유리천장’

■여야 광역단체장 여성 후보 '전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자치단체장으로 등록한 여성 후보는 대구광역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이정숙 무소속 후보가 유일하다. 총 61명의 후보자 중 60명이 남성이다. 특히 기성정당의 여성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탈락하거나 경선에 참여조차 못하면서 '0명'이라는 성적표를 냈다.

여성 기초단체장의 경우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은 상향식 공천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여성 공천지역을 1차로 7곳을 선정하고 2차 지역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남성 역차별, 계파 갈등 논란을 극복하지 못한 채 2차 지역 추가 선정을 전면 취소하는 대신 여성가산점제 10% 부과를 도입했다. 하지만 여성가산점제의 혜택을 본 여성후보는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새누리당이 조사한 전국 여성 기초단체후보 등록현황 자료(5월 21일 기준)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에 등록한 새누리당 여성 후보는 11명에 불과했다. 새정치연합은 여성가산점제 20%를 운영하고 있지만 공천을 받은 전국 여성 기초단체장 후보는 8명으로 새누리당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선관위에 후보로 등록한 남성 기초단체장 후보는 총 669명에 달했다.

여야 여성후보 등록현황을 광역의원으로 넓혀도 새누리당은 전국 총 46명, 새정치연합은 전국 69명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전국 광역의원에 등록한 남성후보는 1500명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새정치연합은 지역구 기초의원으로 여성 후보 224명을 공천했지만 이는 지난해 당헌에 버젓이 명시된 '지역구 30% 이상 여성의무공천'에는 미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지역구 기초의원 여성 공천 문제는 중앙당 권한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확한 숫자 집계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지형 변화 희생양·제도 악용 '빈번'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독 여성정치인이 분루를 삼켜야 했던 이유로 정가에서는 급격한 정치지형 변화를 꼽는다. 지난 1월 정치권에 몰아쳤던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의 불똥이 오히려 여성정치로 튀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광역자치단체장 경선에서는 당 지도부가 주도한 '중진차출론'이 사실상 '전략공천' 역할을 했다는 볼멘소리가 후보 캠프 측에서 일제히 터져 나왔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서울시장 후보로 정몽준 전 의원과 김황식 전 국무총리 영입전에 뛰어들면서 가장 먼저 후보 출마를 선언했던 이혜훈 전 최고위원은 당에서 약체 후보로 낙인을 찍은 셈이 됐다. 이는 경기지사 후보로 남경필 전 의원을 차출하면서 출마를 오랫동안 준비했던 원유철·정병국 의원, 김영선 전 한나라당 대표가 졸지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보로 전락한 것과도 다르지 않다. 한 후보 측근은 "이번에 특히 어려웠던 점이 중진차출론으로, 당 지도부가 분위기를 몰아가니까 바꿔 말하면 그 후보를 당이 임명하고 밀어주는 모양새가 됐다"면서 "새누리당 후보는 이 사람이 돼야 한다는 선입견이 결국은 여론조사 지지율에도 '쏠림현상'으로 나타났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현역 국회의원 신분이 아닌 채로 뛰었던 두 여성후보에게 중진차출론은 더 가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진차출론과 함께 이른바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의 의중)' 논란과 싸워야 했던 이 전 최고위원은 경선을 완주했지만 득표율 13.8%로 분전하며 눈물을 삼켰다. 김영선 전 의원도 한때 한나라당 대표까지 역임했지만 중진차출론에 의해 저평가를 받은 채 경선을 치르지도 못하고 2배수 컷오프에서 탈락했다.

새정치연합의 경우도 전략공천 파동이 결국 여성공천 무위로 이어졌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지난 2일 밤 강행한 광주·안산시장 전략공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더 이상의 전략공천은 없다"고 전격 선언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여성단체장 후보 가운데 경쟁력 있는 후보 7명 정도가 최고위원회의에서 검토되고 있었는데 안 공동대표의 선언 이후 없던 일이 됐다"면서 "결과적으로 여성공천이 피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서울 동대문 갑·을, 대구북구을 등 전국 10곳은 여성을 공천한 뒤 선관위 등록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여성의무추천을 악용한 사례도 등장했다.

그렇다면 여성후보들은 정말 약체인가? 지난 2010년과 2011년 서울시장 후보로 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한명숙 민주당 전 의원이나 나경원 한나라당 전 의원은 약체 후보가 아니라 시종일관 상대 남성후보를 위협했다. 한 전 의원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나 전 의원은 박원순 현 시장과 양보 없는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특히 큰 선거에서 부동층의 향방이 승부를 가르는 박빙승부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인지도 약한 후보를 약체 후보로 낙인 찍는 행태는 계파정치나 '보스정치'의 유산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개선·여성인재 풀 발굴해야

전문가와 여성 의원, 여야 여성위원회 당직자는 지역구 여성의무추천 의무조항에 페널티를 부과하고 여성가산점제의 허점을 보완하는 등의 제도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까지 전무한 최초의 여성 광역자치단체장 탄생을 위해서는 10% 수준의 여성할당제를 도입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여성의무공천의 경우 당헌상 의무조항이지만 그 지역 후보는 이후 모든 후보 등록이 무효가 되도록 하는 등의 페널티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가산점제의 경우도 지난 2012년 선관위에서 여성가산점제가 적용된 경선에서 불복할 경우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이후 보완책을 찾고 있다. 새정치연합 여성위 관계자는 "기초선거에서는 크게 문제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법 개정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여성정치인 풀을 늘려나갈 수 있도록 인물 발굴 및 육성시스템 등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선거에 임박해서야 인재를 구하다 보니 여성인력풀이 없다는 소리가 4년마다 반복된다는 것이다. 실제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은 취재진과 만나 "여성우선공천지역 선정 취지와 방향은 바람직한데 정작 그 지역에 인재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 여성정치인 스스로가 이기는 선거에만 출마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자성론도 나온다. 남성 중심의 현실정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여성정치인의 인식전환도 절실하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낙선을 두려워하면 안되는데 곱게 정치하려다 보니 큰 인물로 성장하지 못한 채 잊혀진다"고 꼬집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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