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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13’ 프로젝트] (5·①) “노벨상이 산업과 상관 없다고? 기업 로열티부터 달라질 것”

윤정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3.19 17:07

수정 2014.10.29 02:40

파이낸셜뉴스는 과학계와 학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노벨과학상 13 프로젝트' 자문위원회를 구성, 최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델에서 첫 회의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호남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 유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교수, 전승준 고려대 교수, 이장규 파이낸셜뉴스 편집국장, (세 사람 건너)곽인찬 파이낸셜뉴스 논설실장, 전재호 파이낸셜뉴스 회장, 오세정 서울대 교수,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 등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파이낸셜뉴스는 과학계와 학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노벨과학상 13 프로젝트' 자문위원회를 구성, 최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델에서 첫 회의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호남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 유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교수, 전승준 고려대 교수, 이장규 파이낸셜뉴스 편집국장, (세 사람 건너)곽인찬 파이낸셜뉴스 논설실장, 전재호 파이낸셜뉴스 회장, 오세정 서울대 교수,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 등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한국 기초과학의 양적인 수준은 세계 11위지만 질적인 수준은 중하위권이다. 기초과학 투자 역사도 짧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하지만 미국, 독일, 일본 같은 과학 선진국처럼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먼 일만은 아니다.' 이는 파이낸셜뉴스가 오는 2026년 한국인 첫 노벨과학상 배출을 위해 구성한 '노벨과학상 13 프로젝트' 자문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노벨과학상 13 프로젝트' 자문위원에는 국내 과학계 거목인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와 유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교수, 전승준 고려대(화학과) 교수, 장호남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이 참여했다. '노벨과학상 13 프로젝트' 자문위원들은 최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첫 좌담회를 갖고 국내 기초과학계가 처한 현실을 냉정히 평가하고 미래로 나갈 방향을 제시했다. 자문위원들은 국내 기초과학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해외보다 부족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이를 위해 정부.대학.연구소.기업들이 미래지향적인 정책과 연구비 지원 등으로 기초과학에 인재가 몰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논문의 질적인 수준보다 양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국내 연구풍토에서는 세계를 선도할 독창적인 연구가 나올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벨상 13’ 프로젝트] (5·①) “노벨상이 산업과 상관 없다고? 기업 로열티부터 달라질 것”


[‘노벨상 13’ 프로젝트] (5·①) “노벨상이 산업과 상관 없다고? 기업 로열티부터 달라질 것”


―한국 기초과학 발전 정도는.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한국 기초과학의 양적인 수준은 우리 경제 규모와 비슷한 세계 11위다. 서울대 논문은 양적으로 세계 대학 중 30위권이다. 하지만 질적인 수준으로 평가되는 피인용 상위 1% 논문은 서울대도 100위권 밖이다. 국내 대학이나 연구기관들은 성과와 논문을 요구한다. 이런 환경에서 논문 수는 많지만 질이 떨어져 노벨상이 나오기 어렵다.

▲유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교수=우리가 과학에 연구비를 본격 투자한 G7프로젝트(과학기술이 2000년대 선진 7개국 수준에 진입한다는 정책)는 1990년대 중반에 시작했다. 그것도 실용화를 위한 연구지만 어찌 됐든 제대로 된 연구비가 투입된 것은 20여년밖에 안된다. 독일도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노벨상이 나오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전승준 고려대 교수=기초과학인은 1등을 못하면 주목받지 못한다. 우리가 논문의 양적 수준이 세계 10위권이라지만 질적인 수준이 더 중요하다. 아시아에서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나라는 7~8곳밖에 안된다. 자국에서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은 나라는 일본과 인도뿐이다. 인도도 찬드라세카라 벵카타 라만이 1930년 노벨상을 받고 80여년간 수상자가 없다. 인도, 파키스탄의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은 미국, 유럽에서 공부해서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기초과학에 투자한 것은 아직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은 노벨상을 언제 탈수 있을까.

▲정길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과학기술진흥정책을 처음 만들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부터 과학 서구화가 시작됐다. 우리나라보다 95년 앞선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노벨상을 받기까지 75년이 걸렸다. 전쟁을 벌이면서도 기초과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기초과학 분야에 투자한 연구비.인력.노력을 보면 벌써 노벨상을 희망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국내에서 과학자의 연구비 지원에는 국가 발전에 직접 기여하는 과제라는 단서가 붙는다. 기초과학자는 특출나게 앞을 내다보거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노벨재단이 주최하는 노벨 심포지엄은 노벨위원회가 주목하는 연구 주제를 정해 해마다 과학자 20~40명을 초청해 진행한다. 이들 중 수상자가 자주 나오는데 우리는 한 명도 초대받지 못했다.

▲유 교수=기초과학자의 경향은 한 가지에 미쳐서 연구하는 것이다. 방학, 주말을 반납하고 한 가지 문제에 매달리게 하려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연구비 따러 돌아다니지 않게 해야 한다. 사회가 이런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노벨상은 산업과 상관없다는 것, 왜 우리가 노벨상을 받아야 하나라는 질문도 있다. 하지만 바이오 등 분야의 주요 연구는 의학, 농업, 환경에 잘 응용된다. 정책 입안자들도 이것을 이해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삼성미래재단은 과학자가 원하는 연구를 5년 이상 할 수 있게 지원하는데 이런 풍토를 조성하는 데서 좋은 업적이 나올 수 있다.

▲오 교수=미국에서는 기업연구소에서도 노벨상이 나온다. 벨연구소는 1925년 설립된 이래 3만3000개가 넘는 특허와 13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925년 설립된 벨연구소는 기업이긴 하지만 국가적인 개념도 있다. 전화회사가 독점적으로 돈을 벌어서 연구비로 투자해 이런 성과가 난 것이다.

―국내 기초과학계의 문제점은.

▲장호남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독창적인 분야를 연구하고 싶지만 연구비 심사자들은 남이 안 하는 것은 무모해 보인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연구자도 저게 될까 고민하다 포기하고, 남들과 비슷한 연구로 업적관리를 하게 된다. 국내에서 기초과학의 중요한 화두를 잡은 적이 있는지가 의문이다. 기초과학 연구과제를 잘 잡게 유도해주고, 싹이 보이면 집중 지원을 해줘야한다.

▲전 교수=황우석 교수에게 다양한 상이 주어질 때 심사위원을 맡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난 주니어였는데 황 교수가 업적이라고 낸 것은 신문기사를 모은 것과 사이언스 논문 하나였다. 황 교수가 어떤 전문가인지 알 길이 없었다. 원로들은 기사를 보면서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상을 줬다. 기자.관료들이 과학자가 우수하다고 할 때는 사이언스에 논문을 몇 편 냈다고 하지, 무엇을 연구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기초과학연구원(IBS).창의사업 등에서 과학자를 선발할 때도 문제가 생긴다. 심사자는 생물, 화학, 물리 각 한 명씩 뽑아야 했다. 화학을 전공한 내가 심사위원으로 가서 물리, 생물을 어떻게 심사할까 고민했다. 중요한 팩트는 과학자 논문이 사이언스에 실렸다고 하면 대부분 통과된다. 기초과학에서 학자의 아이디어가 뭔지 알아야 하는데, 이런 얘기를 하면 이상하게 여기는 게 문제다.

▲장 이사장=노벨상을 탈 만큼 독창적인 연구에 대한 심사자가 필요한데 국내 연구 수준이 낮아서 이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유 교수=15~20년 전 유전공학이 뜰 때 언론을 활용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과거의 얘기다. 하지만 국내에서 전문문야 평가 풀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발표자가 최고의 전문가이고 평가자의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노벨상에 다가서는 전략적인 접근법은.

▲정 이사장=일본은 노벨상을 타기 위해 조직적인 지원을 한다. 스웨덴 국립과학기술관에서 일본인 5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지난해 겨우 1명 나갔다. 일본 직원들은 자국 학자들을 소개하고 초청하는 등 온갖 지원을 한다. 특히 세계에서 열리는 학회를 후원해주고 일본 학자를 초청해 알리기도 한다. 또 외국에서 활동하는 포스닥을 일본에 초청하고, 일본 포스닥은 스웨덴 등 해외로 보내 교류를 넓힌다. 우리도 국가가 나서 국내외 탁월한 젊은이들에게 투자해야 한다. 최근 한림원에서 국내외 선도과학자 140여명을 선발해 외국 연구소 등과 연결시켜줬다. 이런 다양한 시도로 선두그룹을 형성해 키워줘야 한다.

▲전 교수=일본은 노벨상 연구를 많이 했다. 노벨상 심사 기록은 50년이 지나 과학사 연구 목적으로 열람을 원하면 공개된다. 1951년 노벨상 1회 심사 기록이 공개됐는데 일본은 그때부터 연구했다. 일본은 매년 공개되는 심사기록을 연구한다. 우리는 심사기록을 본 학자가 아직 없다.

▲오 교수=잘 알고 지내는 노벨 물리학상 심사위원장이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좋은 후보자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과학자가 연구만 잘 한다고 노벨상을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이 알리고, 연결고리가 되는 사람도 필요하다. 연구자와 정치적인 사람 둘 다 필요한 것이다. 외국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부족하다.

▲유 교수=한탄바이러스 원인균 발견으로 노벨상 후보에 오른 이호왕 박사도 굉장한 관심을 끌었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정부는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전제가 있다면 전략적인 접근도 해야 한다.

―노벨상 수상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장 이사장=노벨상을 받으면 본격적인 창조사회로 갈 수 있다. 지금까지는 외국의 것을 따라가는 것이어서 창조 동력이 부족했다. 노벨상 받는 것은 그 정도로 발전했다는 증거다. 노벨상이 나온 나라는 클래스가 달라진다. 기업이 로열티를 받는 금액도 달라질 수 있다.

▲전 교수=노벨상을 받는 것은 개인이 인류문명에 기여하는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게임을 이기는 것이지만 노벨상은 그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축구 1등이 노벨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토털 사커의 창시자'인 네덜란드 리누스 미셸 감독은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토털사커로 현대 축구를 한 단계 끌어올린 공로로 노벨상을 줘야 한다. 쇼트트랙의 김동성이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인 '결승선 스케이트날 밀어넣기'도 노벨상감이다. 최근 러시아 소치올림픽에서 보면 모든 선수들이 '스케이트날 밀어넣기'를 한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세계 사람이 따라하면 그게 노벨상감인 것이다. 그것이 인류문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정 이사장=2010년 벤쿠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니 스케이트장에 청소년들이 줄을 섰다. 노벨상 한 번 타면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라질 수 있다.
외환위기 때 박세리 선수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우승을 하면서 국민이 자부심을 갖고 '박세리 키즈'도 생겨났다.



특별취재팀 윤정남 팀장 김경수 정명진 임광복 이병철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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