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푸른하늘] 중력가속도 내성훈련

이재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2.29 18:12

수정 2014.11.07 11:59



“5G!”

귓가를 울린 음성과 함께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다리가 후들거리더니 시야가 바깥부터 흐려지기 시작했다. 다리와 배에 힘이 빠지면 그대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 “윽!”소리와 함께 배에 힘을 주자 커튼이 걷히듯 다시 시야가 선명해졌다.

2006년 대한민국 우주인에 지원해 중력가속도 내성훈련을 받던 기억이다. 이 훈련은 5G에서 30초를 견뎌야 한다.

5G는 중력의 5배를 뜻한다.
온몸의 근육은 몸무게의 5배나 되는 힘을 견뎌야 하고 피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도 막아야 한다. 이를 견디지 못해 피가 뇌에 공급되지 못하면 ‘G-LOC’(중력에 의한 의식상실) 상태에 빠지게 된다.

우주인이나 전투기 조종사는 실제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 우주인은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처음 로켓이 발사될 때 최대 8G에 이르는 중력을 견뎌야 한다. 전투기 조종사는 초음속으로 날다 선회할 때 최대 9G를 버텨야 한다.

훈련 도중 발생할 수 있는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훈련 장비에는 지원자의 얼굴과 행동을 볼 수 있는 카메라를 설치한다. 중력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는 지원자는 기절하는 순간 잠에 빠진 듯 고개가 한쪽으로 꺾이기 때문에 상태를 쉽게 알 수 있다. 지원자가 기절하면 즉시 중력을 낮춰 다시 피가 뇌로 공급되도록 한다.

5G에서는 숨쉬기조차 힘들기 때문에 L-1호흡법이라는 특별한 숨쉬기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흡! 스읍, 흡!’ 이런 소리를 내며 3∼4초 간격으로 짧게 끊어 숨을 쉬는 방법이다.

훈련이 시작되면 방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안에 있으면 돈다는 사실 조차 느끼지 못한다. 뭔가 위에서 아래로 쏠리는 듯한 느낌만 들 뿐이다. 3G는 견딜만 하지만 4G가 되면 강한 힘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해 숨을 쉬기가 어려워진다.

4∼5G에서는 몸속의 피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심해지는데 만약 쏠리는 방향이 발쪽이면 피가 얼굴과 뇌로 가기 힘들다. 그래서 피가 눈까지 가지 못하면 앞을 보는데 이상이 생기게 된다.

L-1호흡을 돕기 위해 우주인은 다리에 짝 달라붙는 ‘쫄바지’ 같은 옷을 입기도 하지만 5∼7G를 버티고 나면 다리의 실핏줄이 터져 붉은 반점이 생기기도 한다.

때로는 반대 방향의 중력이 작용해 피가 머리로 몰릴 때가 있다. 이때는 ‘레드 아웃’ 현상이 발생한다. 눈에 피가 몰려 주위가 붉게 보인다. 이를 경험해 본 한 공군 출신 지원자는 “피가 발로 쏠릴 때보다 머리로 몰릴 때 더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보통 6∼9G를, 러시아 가가린훈련센터에서 훈련받는 우주인들은 4∼8G를 견디는 훈련을 받는다.

대한민국 우주인은 사람들의 기대와 부러움을 한몸에 받지만 그와 동시에 자기 몸무게의 5배가 넘는 중력도 한몸에 받아야 한다.
정신을 잃고 짓눌리는 고통을 견디는 중력가속도 내성훈련으로 심신을 단련해 무사히 우주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길 응원한다. 오죽하면 최초의 우주여행객 데니스 티토는 우주를 다녀온 뒤 “우주에 가기 위해 내가 준비해야 했던 것 중 가장 얻기 쉬웠던 것은 돈이었다”고 말했을까.

/(글:안형준 과학칼럼니스트,자료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