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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필수설비 분리’ 어떻게] <1> 영국

임정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2.15 18:50

수정 2014.11.07 11:13

【런던(영국)=이구순기자】 통신시장에 KT의 필수설비 분리 논쟁이 뜨겁다. KT가 KTF 합병을 공식화하자 SK브로드밴드, 케이블TV업계가 합병조건으로 유선통신 필수설비를 합병회사에서 완전히 분리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반면 KT는 필수설비 분리 논란이 KT발목잡기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본지는 영국의 최대 통신업체인 BT의 필수설비를 분리해 오픈리치라는 별도 사업조직을 만들도록 한 통신 규제당국 오프콤(OFCOM)과, 구조분리를 반대하고 있는 프랑스의 규제당국 ARCEP 관계자를 만나 필수설비 규제에 대한 철학과 성과를 2회에 걸쳐 들어봤다. 다음은 첫 번째로 영국 오프콤의 마리나 깁스 경쟁정책국장 및 톰 키드로프스키 국제협력관과의 일문일답. <편집자 주>
- BT로부터 오픈리치를 분리하게 된 정책배경은 무엇인가?

(키드로프스키) 과거 영국의 이동통신은 5개 사업자 경쟁체제였고,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도 있어 충분한 경쟁관계였다. 그러나 유선 쪽에서는 BT만 이익을 보는 상황이었다.
다른 사업자들은 BT에 경쟁할 수 없는 구조였고, BT의 통신망 임대 사업은 품질이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지속됐다면 다른 사업자들은 가입자망 투자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시장을 떠났을 것이다. 그러면 영국의 유선통신 시장은 훨씬 나빠졌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오픈리치를 분리했다.

(깁스) 우리의 규제정책은 통신시장의 경제적 병목을 줄이는 것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 오픈리치의 분리는 음성통신과 초고속인터넷 시장을 발전시켰다. 오픈리치를 분리하기 전인 지난 2005년 가입자망 공동활용(LLU)은 25만회선에 불과했지만 현재 550만회선에 달한다. 오픈리치 분리 직후인 2005년에는 25만회선에 불과했다.

(키드로프스키) LLU가 늘어나면서 지금은 영국 전체 가구의 80%가 3개 통신사업자의 경쟁구역 안에 들어와 있다. 경쟁이 그만큼 활성화 됐다는 의미다.

- 한국에서는 오픈리치 분리 이후 오히려 통신망 투자가 줄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런가?

(깁스) 오픈리치 분리로 투자가 줄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오히려 투자가 늘었다. BT는 차세대 네트워크(NGA, NGN) 구축에 15억파운드를 쓰겠다고 발표했다. 필수설비를 분리하지 않은 프랑스나 독일과 비교해도 BT의 투자가 많다. BT가 내부사정 때문에 투자를 결정한 뒤 집행하는데까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오픈리치 분리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BT가 투자를 늦춘다면 오히려 경쟁사업자들보다 시장에서 뒤쳐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BT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 오픈리치 분리 이후 소비자들의 혜택은 늘어났는가?

(키드로프스키) 오픈리치 분리로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은 것이 바로 소비자다.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가격경쟁이 일어나면서 스카이는 TV패키지에 초고속인터넷을 공짜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등 많은 사업자들이 요금을 내렸다. 요즘에는 18∼24개월 사용을 약속하고 노트북을 공짜로 받아 초고속인터넷을 쓰는 상품도 많다. 과거에 없던 인터넷+전화+TV 상품이 많아 정확히 요금이 얼마나 낮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선택해 쓸 수 있는 폭이 늘어난 것이다.

- 집안이나 동네어귀에 광케이블이 연결되는 차세대 네트워크(NGA)도 동등접속 대상인가?

(깁스) 당연히 NGA도 동등접속 대상이다.

- 오픈리치 분리 정책이 다른 나라에도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보는가?

(키드로프스키) 각 나라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오픈리치 같은 구조분리는 상당히 유용한 규제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특정회사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매우 유용한 규제가 될 것으로 본다.

유선통신 필수설비란?


통신분야에서 필수설비란 물리적으로 복제가 불가능한 설비를 말한다. KT가 전국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통신용 전주와 땅속에 통신선을 깔기 위해 묻어둔 관로 및 관로를 통과하고 있는 통신선, 땅 속으로 묻을 수 없는 지역에 세워둔 전주, 전화국의 각종 장비를 들여놓을 수 있는 바닥공간, 집안의 통신장비와 연결되는 가입자망이 모두 필수설비에 해당된다.

이 설비들은 돈만 있으면 구축할 수 있는 일반 설비와 다르다. 관로나 전주는 도시가 생길 때 함께 설계되기 때문에 도시가 들어선 뒤에 해당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통신업체들은 설비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필수설비 논란은 KT·KTF 합병 공식화로 불거졌다. 합병 반대파들은 유선통신 필수설비를 가진 KT가 필수설비를 이용해 유선통신의 지배력을 이동통신 및 유료방송 시장까지 넓힐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KT·KTF를 합병하려면 필수설비를 KT에서 분리해 독립적으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KT는 한국전력공사의 전주가 대체재로 존재하기 때문에 필수설비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고 맞선다. 게다가 일반 전화선은 이미 빌려준다고 해도 빌려 쓸 사람이 없다며 필수설비 분리론에 맞불을 놓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필수설비가 의무제공 대상으로 규정돼 있다. 어떤 사업자든 필요하면 KT 설비를 빌려 쓸 수 있고, KT는 필수설비를 의무적으로 빌려주게 돼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제대로 안 지켜진다는 게 통신업체들의 주장이다. KT에 필수설비를 빌려달라고 요청하면 빌려줄 통신망이나 관로가 부족하다거나, 인력이 없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임대를 꺼린다는 것. 특히 집안까지 광케이블로 연결되는 광가입자(FTTH)망은 의무제공설비에서 제외돼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광가입자망까지 의무적으로 빌려주는 설비로 지정하면 KT가 투자를 소홀히 할 것이라고 걱정하며 광가입자망은 빼놓은 것.

이에 대해서도 KT를 제외한 통신업체들은 KT의 FTTH망도 필수설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유럽 주요국가들은 FTTH망을 적극적으로 필수설비에 포함시켜 망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자나 빌려쓰는 사업자가 동등하게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통신시장의 경쟁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오프콤·오픈리치란

지난 2003년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으로 출범한 오프콤(OFCOM)은 낮은 인터넷 망 보급률이 영국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2004년 당시 영국의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10%에 불과했고, 인터넷 망과 경쟁할 수 있는 케이블TV 망도 전국 45%밖에 커버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오프콤은 인터넷 보급을 높여 디지털 경제 시대 영국 경제발전의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그리고 인터넷 망 보급이 낮은 원인을 최대 유선통신사업자인 BT의 독점때문이라고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국영 통신업체로 출발해 민영화된 BT는 영국 전역에 전화와 인터넷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경쟁할만한 유선통신 업체가 없어 굳이 투자에 공을 들일 이유가 없다는게 오프콤의 진단이다.

결국 BT의 유선 가입자망과 관로를 경쟁업체들이 BT와 동등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기로 하고, BT에 망 임대 전담조직을 분리하도록 명령했다. BT는 2006년 ‘오픈리치’라는 망 임대조직을 별도로 신설한다.
오픈리치는 BT의 내부조직이지만 완전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수익 배분과 투자같은 모든 의사결정이 BT와 독립된 형태로 이뤄진다.


현재 오프콤은 오픈리치 분리 이후 BT와 NTL, 카폰웨어하우스 등 굵직한 유선통신 업체들의 경쟁 체제가 형성돼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유럽 지역 최고수준에 올랐다고 자평하고 있다.

/cafe9@fnnews.com이구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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