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박문서 교수와 함께 하는 ‘귀건강 365일’] 귀지 무조건 파면 안돼요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3.23 18:16

수정 2009.03.23 18:16



한 친구가 전화를 했다. “내 아들이 갑자기 귀가 아프다고 울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좋은가? 다친 적도 없고 감기가 걸린 것도 아닌데 말이지.”

“혹시 집에서 자주 귀 청소해주는 습관이 있니?”

“아내가 워낙 깔끔한 걸 좋아해서 귀지가 귀에 있는 걸 참지 못해. 내 귀건 아들 귀건 일주일에 한번은 후벼줘야 직성이 풀리니까. 또 아내 무릎을 베고 귀를 맡기는 기분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고 해서 자주 그러는 편이지.”

환자들의 귀를 치료하다 보면 귀에 귀지가 있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쩐지 지저분한 것 같고 마치 몸에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귀지는 사실 함부로 제거하면 안된다. 우리 몸에 있는 모든 것이 그렇지만 귀 속의 귀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귀지는 귀 안의 피지선이라는 기름샘에서 분비되는 피지가 먼지나 땀 등과 만나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얇은 막을 형성하도록 되어있다.
즉 귀지는 두께가 종잇장처럼 얇은 귓구멍 속의 피부를 보호하는 첨병인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밖으로 밀려 나와 가만 놓아 두어도 자연히 제거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을 금속이나 나무로 만든 귀후비개와 심지어는 성냥개비로 마구 후벼 제거하는 것은 얇은 아기 피부를 때밀이 타월로 박박 밀어내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결국 피부에 미세한 상처가 생겨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보호하는 갑옷을 잃은 귀는 세균에 쉽게 감염되어 염증을 일으키게 된다.

귀를 진찰할 때 마치 방금 세차장에서 나온 듯한 차처럼 반질반질하고 깨끗한 귓구멍을 보게 되는 수가 있는데 이럴 땐 환자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우선 그 청결성에 경의를 표하고 싶고, 또 하나는 꼭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얘기해주어야 하나이다.


물론 귀지가 체질에 따라 점토처럼 뭉쳐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분은 정기적으로 이비인후과를 방문하여 제거하는 것이 좋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은 마른 귀지가 많은 반면 서양인들은 물귀지가 많다.

“귀를 다시는 깊이 후비지 말라고 하게. 꼭 하려거든 눈으로 밖에서 쉽게 보이는 부분만 살짝 하든지” “그럼 아내의 취미 생활이 한가지 줄어드는 셈일 텐데.” “자네의 취미도 한가지 없어지는 것 아닌가?”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이비인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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