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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텃세에 멍드는 한국 게임] (하) 손놓은 한국 정부

백인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9.02 18:02

수정 2009.09.02 18:02



“말로만 차세대 성장동력이죠. 표절에 로열티 미지급에…. 정부가 인접국 시장에서 자국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고도 그 나라 눈치만 보는 건 직무유기 아닌가요. 지금 정부의 행태는 다른 굴뚝산업에 피해가 올까봐 중국에 굴종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정부를 향한 게임업계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중국 업체들의 게임 표절(산자이), 로열티 분쟁 등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정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가 연이어 정부의 노력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는 ‘민간 기업 간 분쟁에 끼어들기 조심스럽다’며 냉담하다.

■정부 “분쟁은 민간에서 해결할 일…개입 어렵다”

지난 1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은 기자들과 만나 “지난 2000년 중국에서 수입되는 마늘 관세를 높인 적이 있었는데 당시 중국은 휴대폰 관세를 315% 높여 맞섰다”며 “해당 국가의 조치를 바꾸기 위해 직접적으로 어필하는 건 얽히는 문제들이 많아 어렵다”고 말했다.

신 차관은 특히 “원칙적으로 게임산업은 민간의 부분”이라고 전제하고 “기업의 분쟁에 정부가 끼어드는 것은 조심스럽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게임의 경우 가장 잘되는 문화분야 중 하나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그런 만큼 주무부서가 굳이 끼어들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정부의 역할에 선을 그었다. 그는 “더구나 중국의 경우 게임 유관부서가 신문출판총서와 문화부, 체육총부 등 세 곳으로 갈라져 있어 협의 주체를 통일하기가 힘들다”고 난색을 표했다.

애초부터 주무부처가 게임산업 분야에 쟁점을 두고 중국과 테이블에 마주앉기를 꺼리는 모습이다. ‘우리 정부가 중국에 할 말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게임업계의 불만은 이 같은 정부의 책임회피에서 출발한다.

■美는 WTO 제소하며 맞서

하지만 미국은 이 같은 차별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제소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12일 WTO 분쟁조정위원회는 중국 정부가 외국산 문화콘텐츠의 수입·배포 사업을 중국 국영기업이 독점하도록 한 제한조치는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 WTO 규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일정 부분 소득을 거둔 셈이다. 눈치만 보는 한국 정부와는 대조적이다.

더구나 정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있어도 이마저 외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5년 미국 정부로부터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한 중국의 수입규제에 공동 대응하자는 요청을 받았지만 이에 대해 확답을 보내지 않고 어물어물 넘어간 것. 중국은 그동안 한국 온라인 게임업체가 중국에서 법인을 설립해 직접 게임을 서비스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불공정 규제를 해 왔다.

게다가 우리정부는 이번에 내려진 WTO의 시정조치 중 ‘문화콘텐츠’의 범위에 게임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문화부 관계자는 “미국은 중국의 영화와 출판물 시장 개방을 주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게임의 경우 확실치 않다”며 “미국과 중국 양국 간 문제인 만큼 현재로선 알 수 있는 채널이 없다”고 답했다. 양국 간의 분쟁 속에서 어부지리만 노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정부는 ‘립 서비스’가 전부

최근 문화부 공무원들은 게임업계가 중국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례를 줄일 것이라고 연이어 공언해 왔다. 유병한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산업실장은 유럽에서 열린 게임컨벤션온라인에서 “중국의 표절로 업체들이 큰 고충을 겪고 있고 정부 조치가 가장 취약하다는 점을 안다”면서 “향후 저작권 문제를 내세워 해결점을 모색하겠다는 것이 우리정부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유병채 게임산업과장은 “최근 마련된 한·중 공동위원회에서 처음에는 과몰입 문제 등 가벼운 것을 다루지만 점차 이 같은 문제를 다루는 등 수위를 높여나갈 것”이라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업계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발언들을 립 서비스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게임업체 최고경영자(CEO)는 “반짝 관심을 가졌다가도 다른 산업의 현안에 밀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업계의 고충을 풀어줄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2007년 정부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게임 부문에서의 불공정 무역을 타파하는 것을 검토한 바 있으나 지금은 그나마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산업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게임업계가 궁여지책으로 정부에 요구해 온 해외담당 공무원 증원도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문화부 게임 담당 공무원은 과장급 1명에 사무관급 3명이 전부다.


위정현 콘텐츠경영연구소장은 “국내 업무만 해도 관련 공무원 개개인에게 과중한 업무 부담이 지워지고 있어 해외에서 발생하는 불이익 등의 고충을 들어주기 힘든 상황”이라며 “수출 규모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만큼 해외 관련 게임업무를 담당할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는 것이 게임업계의 목소리”라고 충고했다.

/fxman@fnnews.com 백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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