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정보통신

‘말발’ 안먹히는 방통위 ‘사면초가’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4.19 17:26

수정 2010.04.19 17:26

출범 3년차를 맞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정책권한의 분산과 규제권한 약화 등으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식경제부가 방송이나 정보기술(IT) 진흥정책 권한을 나눌 것을 요구하면서 방통위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데다 규제정책들도 관련기업들이 외면하면서 하는 것마다 무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로 인해 방통위 젊은 공무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조직에 대한 불신감마저 증폭되는 양상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방통위가 방송·통신 융합에 대한 명확한 정책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정책 로드맵을 제시하는 등 정책권한을 강화해 방송통신·정보기술 융합 정책기구로서 위상을 확립해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르고 있다.

■방통위 정책이 안 먹힌다

방통위는 지난 3월 SBS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경기를 KBS·MBC와 공동중계하도록 성실히 협상하라'고 정책권고를 했다. 하지만 방송 3사는 협상은커녕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겠다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이들 방송3사는 올 연말에 방통위로부터 재허가를 받아야 한다. 방통위 정책권고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그런데도 방송사들은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통신사들도 방통위 정책에 소극적이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직접 나서 통신업체들의 마케팅비용을 제한해 무선인터넷 관련 연구개발(R&D) 비용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지만 KT는 "마케팅비용 제한은 반시장적 정책"이라며 외면하고 있다. SK텔레콤이나 통합LG텔레콤도 마케팅비 제한 폭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3사 마케팅비 줄이기 협상은 진척이 없다.

■"정책 나누자"…부처 간 영역다툼

최근 지경부는 IT·소프트웨어 분야의 규제를 완화하겠다며 민·관 합동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IT 규제정책은 방통위 고유권한이다. 그런데도 지경부는 방통위와 협의 과정에서 독자적으로 규제개선합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방통위 산하기관들까지 동원하고 있다. 문화부는 지난해 방통위 업무로 분류된 방송 콘텐츠 진흥정책을 맡겠다고 나섰다. 청와대까지 나서 업무를 다시 조정하라고 권고하면서 법률로 정해진 방통위 정책영역까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방통위 정책영역을 놓고 정부 부처 간 다툼이 본격화되고 시장에서도 방통위 정책이 힘을 잃으면서 젊은 공무원들이 들썩이고 있다. 방통위 한 공무원은 "미래 먹을거리산업인 IT산업을 키워 국가에 기여하겠다는 꿈으로 방통위 공무원이 됐는데 최근 상황은 방통위가 무능한 정부 부처로 전락하는 것 같아 회의가 든다"고 털어놨다.

■정책목표-로드맵 내놔야

방통위는 방송·통신산업과 이 둘을 융합한 산업을 육성하고 규제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지난 2008년 설립됐다.
그러나 방통위는 방송과 통신산업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정책목표와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지 못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종합편성채널 선정이나 통신요금 인하 같은 개별 정책에 매달려 방송·통신과 IT산업 전체를 육성할 정책목표를 세우지 못해 정부 내에서 방통위 위상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며 "IT정책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부터 방통위가 방송·통신 융합산업에 대한 목표를 제시하고 컨트롤타워로 나서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방통위는 지금이라도 선진국 방송·통신 정책기구의 역할과 활동내역을 연구하고 방송·통신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책목표를 세워 정부와 업계에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afe9@fnnews.com 이구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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