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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산업 3중규제의 덫] (1) 대중문화 억압 심각

임광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2.21 17:08

수정 2012.02.21 17:08

[게임산업 3중규제의 덫] (1) 대중문화 억압 심각

 게임산업이 여성가족부의 강제적 셧다운제, 문화체육관광부의 선택적 셧다운제, 교육과학기술부의 쿨링오프.사후심의제 등 3중 규제의 덫에 치여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 중 교과부가 추진하는 '초·중등학생의 인터넷게임중독 예방 및 해소에 관한 특별법'은 공청회조차 거치지 않은 가운데 새누리당 박보환 의원의 대표발의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 법안에 대해 같은 당 원희룡 의원이 '시대착오적이며 문제가 많은 법안'이라고 맞서 여당 내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게임 및 문화단체도 지나친 규제안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대립하고 있다. 이에따라 본지는 게임에 대한 규제와 진흥에 대한 접점을 찾는 장을 5회에 걸쳐 마련해 본다. <편집자 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1 게임백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여가활동 1위가 게임(2위 영화)으로 나타날 만큼 게임이 대중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게임산업에 대한 교육과학기술부, 여성가족부, 문화관광체육부, 일부 학부모 단체 등의 시각은 학교폭력을 일으키는 주범 중 하나로 인식, 잇달아 규제를 추진하는 등 '애물단지' 취급을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국내외에서 대중문화를 주도했던 음악, 문학, 미술, 만화, 영화 등의 장르가 여러가지 이유로 억압받아왔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경우 일찍부터 '대중문화가 청소년 폭력·범죄에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정치인들의 인식으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국내에서도 대중문화는 비슷한 고초를 겪었다.

 대중음악 분야는 인기가수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판매·공연 금지를 당했고, 지금은 700만부 이상 팔리며 청소년 권장도서로 꼽히는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한때 고발당해 사장될 뻔했다. 또 이현세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상고사를 복원한 '천국의 신화'로 음란·외설 만화작가로 낙인 찍혀 검찰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서기도 했다.

 ■유해매체 낙인 성장동력 상실

 누적 판매 700만부 이상 팔리고 지금은 청소년 권장도서로도 꼽히는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199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후 11년간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또 검찰은 1997년 만화가 이현세가 신화적 상상력에 근거해 상고사를 복원한 '천국의 신화'를 음란·폭력물로 규정해 소환 조사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 만화를 본떠 만든 청소년 폭력 서클 '일진회'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청소년 문제의 주범으로 일본 만화를 지목했고, 그 다음 희생양은 국내 만화가 됐다.

 뒤이어 정부 산하단체 청소년보호위원회도 만화가 허영만, 이두호 등의 작품마저 유해매체로 규정했다. 이 때문에 만화는 유해매체로 낙인찍히는 등 동력을 상실했고, 최근 웹툰으로 활로를 찾고 있지만 국내 만화계는 아직도 열악한 상황이다.

 최근 K-팝(POP)이 최고의 한류로 대접 받으면서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2PM 등은 세계에서 슈퍼스타가 됐다. K팝 가수들은 해외에서 한국 상품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며 산업 마케팅에도 활용돼, 수출 역군으로 한몫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중음악의 성공 뒤에도 수난의 역사가 있었다

 스타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1964년 세상에 나왔지만 1년 만에 방송금지를 당하고 그로부터 4년 뒤에는 공연 및 앨범 제작까지 규제 당했다. 또 김민기의 '아침이슬', 송창식의 '고래사냥',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 등도 규제에 포함됐다. 12년이 지난 1987년 공연윤리위원회는 방송·공연 금지를 당한 다수의 대중가요를 해금했다. 당시 해금가요는 저작권 등 문제로 음반의 재출시가 늦어져 '해적판'으로 불린 불법복제 음반과 테이프가 불티나게 팔려 엉뚱한 곳에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규제에 대한 '풍선효과'도

 성적 표현물의 경우 소설가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검열의 희생양이 됐다.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시민단체의 고발로 음란물 판정을 받아 책이 자진 폐기됐고 작가 장정일은 피신했다가 음란문서 제조 죄로 징역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영화감독 장선우는 이 소설을 각색해 '거짓말'을 만들었는데 두 번이나 등급보류 판정을 받는 동안 무삭제 원판이 인터넷과 CD로 불법 유통됐다.
불법 복제판들이 컴퓨터에 익숙한 청소년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고 정작 이 영화를 볼 권리가 있는 성인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등급판정 보류가 성인보다 청소년들이 더 많이 불법적으로 영화를 보게 만든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문화계 관계자는 "청소년 보호를 위한다면 성인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것이 아니라 미성년자가 성인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면서 "과거 대중문화에 대한 규제를 보면 비이성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시대가 흘러도 비슷한 규제를 반복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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