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포괄수가제 실시 후 ‘수술 풍경’ 급변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1.16 16:55

수정 2013.01.16 16:55

포괄수가제가 실시된 이후 병원들의 수술 풍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일부 수술항목이 포괄수가제 항목에 포함된 뒤 병·의원들이 이 같은 항목을 배제하면서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항목이 유착방지제다. 병·의원에 유착방지제를 납품하는 업체인 A사는 클리닉이나 산부인과병원에 납품하던 매출이 포괄수가제 이후 90% 줄어들었다고 16일 밝혔다. A사는 유착방지제 매출의 25%가 클리닉이나 산부인과병원이고 75%가 대학병원이다.

A사 관계자는 "포괄수가제 실시 이후 산부인과병원에 납품하던 유착방지제 매출이 급속도로 떨어졌다"며 "대학병원까지 포괄수가제를 실시하게 되면 판매량이 급속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착방지제 매출 90%나 줄어

제왕절개 등 수술에 사용하는 유착방지제는 수술 시 장기들이 달라붙는 것을 방지한다. 수술할 때 장기들은 미끌거리는 상태인데 세척을 하는 등의 행위로 미끌거리는 게 사라지게 된다. 이때 장기들이 서로 달라붙을 수 있다. 하지만 유착방지제를 사용하면 원래 미끌거리는 상태로 돌아가게 돼 장기들이 달라붙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가 유착이 돼도 당장 문제는 없다. 이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유착방지제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호정규 교수는 "수술할 때 모든 환자의 장기가 유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장기 유착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유착방지제를 사용한다"며 "장기가 유착되면 당장 배에 통증이 있는 사람도 있고 통증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 만약 다음에 수술할 때 장기가 유착돼 있으면 수술하기가 쉽지 않고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포괄수가제에는 유착방지제 비용이 포함돼 있다.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배경택 과장은 "한 병원에서 환자 100명 중 30명에게 유착방지제를 사용해왔다면 30명의 비용을 100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가격을 통일한 것"이라며 "포괄수가제는 가격을 정해놓고 의사 재량에 따라 진료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항목은 제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취과 의사 초빙도 안할 것

또 제왕절개 시 마취 방법에도 문제가 생긴다. 부분마취를 하게 되면 척추마취, 경막외 마취, 이 둘의 장점을 합친 척추 경막외 병용마취법이 있다. 보통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에 따라 마취 방법을 결정한다.

척추마취는 얇은 바늘로 척수강에 마취제를 투여하는 것으로 마취의 높이를 조절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치료비가 싸다. 경막외마취는 경막외강에 마취제를 투여하는 것으로 마취되는 시간이 20~30분으로 길지만 마취성공률이 90% 내외로 알려져 있다.

이 두 가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척추경막외 병용마취다. 하지만 치료재료 가격이 5만원 정도여서 비용절감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이외에도 포괄수가제 적용 질환의 경우 마취과 의사 초빙료를 산정하지 않아 마취과 의사를 부르지 않을 확률도 높아진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연준흠 보험이사(상계백병원 마취통증의학과)는 "마취과 의사 초빙료를 따로 책정하지 않으면 마취과의사를 초빙하지 않거나 외과의가 마취를 하고, 아니면 의사가 아닌 이의 무면허 마취 또는 마취하지 않고 무리하게 수술하게 된다"며 "최근 마취와 관련된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마취과의사들이 마취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술 후 결과 꾸준히 모니터링을

정부는 포괄수가제 실시 후 의료의 질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배경택 과장은 "포괄수가제 실시 이후 의료의 질이 떨어졌느냐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며 "현재 자료를 통해 검증해본 결과 이전과 의료의 질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 전문가들이 판단에 의해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배 과장은 "의학적인 부분은 전문가 집단인 의사들이 판단하는 것이므로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들의 의견에 따라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남은경 팀장은 "의사가 의학적인 판단에 따라 치료행위를 정하는 것이므로 어떤 항목을 제외했을 때 수술 후 재입원하거나 부작용이 생긴 경우에는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현재 개원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포괄수가제를 대학병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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