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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폐 기로에 선 공인인증서] (중) 시장 개방하면 공정 경쟁 가능할까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7.16 17:18

수정 2014.11.04 20:01

[존폐 기로에 선 공인인증서] (중) 시장 개방하면 공정 경쟁 가능할까

공인인증서로 인한 '생활의 불편'이 사설인증 시장체제로 바뀌면 사라질까.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전자서명법 개정안은 공인인증기관을 없애고 기술 규격을 통과한 인증기관들이 자유 경쟁을 통해 인증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경쟁 체제 하에서는 업체들의 연구개발(R&D) 활동이 보다 왕성해지고 이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업계는 공정 경쟁이 불가능한 현실을 지적하며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비판한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나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인증시장은 사실상 독과점시장이다. 인터넷뱅킹, 전자상거래 등 각종 금융거래에서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인증서는 '안정성'과 '신뢰도'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발 물러선 인증시장에서 공정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같은 우려는 사설시장인 보안서버인증서 또는 웹서버인증(SSL) 시장을 보면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최근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비씨카드 등 일부 은행과 카드사들을 찾았을 때 보이는 녹색 홈페이지 주소창은 SSL 인증을 도입했다는 의미다.

글로벌 인증기관 시장은 베리사인을 비롯해 코모도, 글로벌사인 등 10여개가 움직이고 있다. 특히 글로벌 보안업체 시만텍에 인수된 베리사인은 전 세계적으로 80여개 국가의 약 100만 기업들에 SSL 인증서를 발급하며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 SSL 인증 시장도 마찬가지로 베리사인(시만텍)과 코모도가 각각 41.3%, 51.1%를 장악했다. 나머지 약 8%도 글로벌사인 고대디, 엔트러스트 등 글로벌업체들에 밀려 국내 업체들은 이름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외국계 8개 회사가 국내 SSL시장의 99.9%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2000년 우리나라의 공인인증서 제도가 도입된 것도 이 같은 글로벌 업체의 독점을 막기 위한 의도가 컸다.

업계는 벤처 또는 중.소형 업체들이 대다수인 국내 인증시장 환경에서 대규모 자본력을 앞세운 글로벌 업체들과의 '공정경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재 국내 공인인증 시장 규모는 700억원 정도다. 기타 부가적 수익을 모두 감안해 넓게 잡아도 약 2000억원 수준이다. 반면 시만텍의 지난해 매출은 약 7조6000억원으로, 이는 국내 보안 시장의 26배에 달한다. 베리사인의 보안인증사업 연매출만 따져봐도 4억~5억달러(약 4500억~5600억원) 규모다.

한국정보인증 박성기 부장은 "벤처나 작은 업체들이 만든 인증서를 쓰다가 그 회사가 망하면 고객사의 업무는 마비된다. 때문에 인증시장은 '신뢰도'가 핵심이고 이 때문에 일부 공신력 있는 업체들의 독과점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이런 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국내 인증업체들과 글로벌 '공룡' 업체들과의 공정한 경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준비 없이 시장만 열린다고 여러 문제점들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인증서 시장경쟁 땐 혼란 '명약관화'

시장 혼란도 문제다. 공인인증기관이 없어지고 일반 인증기관들이 여러 개 생겨나게 되면 각 금융기관의 선택에 따라 소비자들은 다양한 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다양한 인증을 위해 별도 시스템을 구비해야 한다. 이는 결국 개인과 기업 모두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한 개인이 4개의 은행과 거래를 할 경우 4개 은행의 인증서를 제각기 받아서 관리해야 하며 만약 2중 인증체계를 갖췄다면 8개의 인증서가 필요하다. 온라인 신용카드 결제나 일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제각기 다른 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국민 한 명당 몇 장의 인증서를 보유하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인인증서로 인해 국내 인증 시장이 균형을 잡아가며 발전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며 "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안고 있는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국내 인증시장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꼬집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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