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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4000만대 시대의 明과暗] 입술 대신 손으로 말하는 ‘나, 너, 우리’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1.23 17:52

수정 2014.10.30 04:21

[스마트폰 4000만대 시대의 明과暗] 입술 대신 손으로 말하는 ‘나, 너, 우리’

#1. 최근 퇴직한 A씨(65)는 거실 소파에서 혼자 TV를 보는 게 일상이 됐다. 오후 늦게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대학생 딸은 요즘 유행하는 케이블 드라마를 스마트폰으로 보느라 툭하면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제 방으로 직행한다. 저녁을 밖에서 해결하고 퇴근한 아들도 인사만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산다. 퇴직 후 자녀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기대했던 A씨는 왠지 서러움이 몰려왔다.

#2.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B씨(36)는 최근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에게 처음으로 매를 댔다. 같은 반 아이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갖고 다닌다는 아들의 성화에 못이겨 스마트폰을 사준 게 화근이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으라며 방에 있는 아들을 수차례 불렀지만 대꾸가 없었다. 방문을 열고 재촉했더니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 채 아이가 짜증을 부렸다. 그날 B씨는 아이에게 회초리를 들면서 스마트폰을 사준 걸 후회했다.

■왜곡된 대인관계, '대면 기피'

스마트폰이 우리 사회의 '소통 풍속도'를 빠르게 변질시키고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랑 있든 상관없이 사람들의 손에서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 과몰입으로 얼굴을 맞댄 '진솔한 대화'가 낯선 풍경이 되고 있다.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은 스마트폰이 기존의 생활환경과 습관은 물론, 대인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소통의 저변을 가상공간까지 넓혀 다양한 인간관계를 가능케 했지만, 정작 지인들과의 인간적인 소통을 단절시키는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직장인 손모씨(28·여)는 "스마트폰을 통해 온라인으로 모든 이야기를 하고나니 정작 친구를 만나면 별로 할 말이 없다"며 "얼굴을 마주 본 상황에서 서로 할 얘기가 없고 궁금한 것도 없어지면서 정도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씁쓸해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시공간의 제한 없는 '수다'가 가능해지면서 '대면 대화'를 불편하게 느끼는 현상이 확산되는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인한 '소통 단절'은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지 않은 기성세대들에 세대 간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TV프로그램을 시청한다든지 식사를 함께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퇴직자 A씨는 "옛날에는 집에서 가족끼리 거실에 모여 밥을 먹거나 TV를 보는 경우가 잦았는 데 오히려 은퇴 후에 넓은 거실에 혼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아이들은 각자 자기 방에 틀어박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게 다반사"라고 하소연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문자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가 아닌, 거리낌 없이 전화를 걸고 얼굴을 마주할 상대가 점점 없어지는 걸 공감할 것"이라며 "스마트폰이 자신의 삶에 행복까지 가져왔는지를 고찰해 보고 스마트한 활용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립된 세상에 빠져 드는 사람들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온라인 소통에만 집중하면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는 것도 학부모들의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워킹맘인 이영숙씨(35)는 "스마트폰으로 TV 프로그램이나 게임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이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으려 한다"며 "저러다 '은둔형 외톨이'가 될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기 화성에 사는 주부 김명화씨(43)는 "중2 아들이 스마트폰 게임인 애니팡에 빠지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던 농구도 그만뒀다"며 "아이가 한 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못 쓰면 불안장애까지 보여 정신과 상담까지 받았다"고 털어놨다.

실제 우리 사회의 스마트폰 의존도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2012년 하반기 스마트폰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이용자의 77.4%가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스마트폰을 자주 확인한다'고 응답했다. '자기 전 또는 잠에서 깨자마자 스마트폰을 이용한다'는 경우도 절반 이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친구, 가족 등 지인과 함께 있을 때 스마트폰만 계속 이용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도 35.2%에 달했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스마트폰 과몰입으로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만 관계를 맺거나 특정 온라인 집단에 과도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귀속시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부모나 교사를 위한 교육 매뉴얼을 잘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스마트폰 4000만대 시대의 明과暗] 입술 대신 손으로 말하는 ‘나, 너, 우리’



지난 22일 오후 8시30분 서울 성수동의 한 가정집. 안방에는 퇴근하고 돌아온 가장 A씨가 씻고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통해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다. 거실에 TV가 있기는 하지만 유치원생인 아들에게 채널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작은방에서는 올해 6학년이 되는 딸이 카카오톡을 통해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물론 좋아하는 연예인 등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이다. 건넌방에는 올해 환갑을 넘긴 A씨의 부모님이 TV를 보고 있다.

사실상 1인당 1스마트폰 시대를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 가정의 단편적인 모습이다.

스마트폰이 가족 간 소통을 단절시키며 가족애를 상실케 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만 하더라도 가족이 함께하는 기회가 많았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되며 가족이 정을 나눌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정보교류를 빠르게 하고 일상생활에서 편리성을 크게 높여주고는 있지만 가족 간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멀어진 인간관계는 가정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연인관계에서도 학교 내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도 스마트폰으로 관계가 멀어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회사원 B씨는 바쁜 일정 탓에 남자친구와 1주일에 한 번 데이트를 한다. 연애 초반에는 그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져 하루 종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기에 바빴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에 남자친구를 빼앗긴 느낌이다.

가령 밥을 먹으러 가면 남자친구는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틈틈이 울려대는 카카오톡을 확인하느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여행을 가서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대고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에 올리느라 바빠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다.

B씨는 "이런 남자친구의 습관에 짜증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스마트폰이랑 사귀라며 따지다가 싸움으로 번진 것도 수차례"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학교에서도 스마트폰은 골칫거리다.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랑(?)에 학습 지도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 시내 모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인 C교사는 "여학생들은 체육시간에 몰래 옷에 숨겨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운동장에 나간다"며 "이후 체육 담당 선생님에게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곤 수업에서 빠진 뒤 카카오톡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남학생들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 게임 얘기만 하고 수업시간에도 몰래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는 것은 이제 예삿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딜레마도 털어놓았다.

C씨는 "교사를 대상으로 스마트폰을 활용한 지도법 연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며 "교실을 와이파이존으로 만들어 학생과 교사가 같이 스마트폰으로 공부하는 방식인데 솔직히 집중이 잘 안 된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4000만대 시대의 明과暗] 입술 대신 손으로 말하는 ‘나, 너, 우리’

주부 김하나씨(가명·34) 부부는 최근 모두 스마트폰을 해지하고 피처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세 살배기 아기가 자연스럽게 패턴을 그려서 스마트폰 잠금 화면을 푸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김씨는 "다소 불편한 점은 있지만 아이가 스마트폰에 가지고 있던 관심이 줄었고 스스로도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돼 만족한다"고 말했다.최근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다시 일반 휴대폰(피처폰)으로 돌아가는 탈스마트폰족이 눈에 띄고 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나 자녀교육 문제로 걱정하는 부모들이 늘어난 탓이다.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든 인터넷 문화에서 한발 떨어져 일상의 여유를 찾고자하는 사람들도 있다.

23일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국내 피처폰 사용자는 1431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1월 1771만명에서 340만명가량이 줄어들었지만 감소폭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피처폰 사용 고정층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이들의 숫자가 노년층을 중심으로 800만명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새로운 이동통신 가입자 사이에서도 다시 피처폰을 선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우체국 알뜰폰 가입자 가운데 피처폰을 선택하는 경우가 절반(48.9%)에 달했다. 일반 가입자가 대부분 스마트폰을 고른다는 점에서 상당한 수가 피처폰을 고집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피처폰으로 회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자녀교육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너무 일찍 중독성이 강한 스마트폰 사용에 빠져들게 되면 신체활동이 부족해지고 의사소통 능력이 저하돼 사회성이 결여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용이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어린아이들까지 스마트폰을 쓰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 되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5세 이하 영유아를 둔 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아이가 하루 평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30분 이상인 경우가 48.8%로 절반에 육박했다.

육아정책연구소 이정민 박사는 "영유아의 무분별한 스마트폰 사용을 막을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기반 조성사업이 강화돼야 한다"며 "우선적으로 건전한 놀이문화 확산과스마트폰 사용을 절제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문제는 사회의 전반적인 서비스가 스마트폰 사용자 위주로 바뀌고 있어 피처폰을 쓰는 사람들의 불편함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자녀의 어린이집 알림장이 스마트폰 앱 알림장으로 바뀐다거나 가전기기 설치나 택배 배송의 경우 청구서 등을 업자들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보내는 일이 잦지만 피처폰은 카메라 기능이 떨어져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알뜰폰과 같이 다양한 소비자 욕구에 맞는 정책 지원으로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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