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정보통신

인터넷상 ‘잊힐 권리’.. 개인의 자유 vs. 표현의 자유 ‘격돌’

박지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5.19 17:48

수정 2014.05.19 17:48

#. 지난 2006년 봄 미국. 교사 지망생인 스나이더는 모든 학점을 이수하고 시험을 통과한 후 교사가 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교사가 되기에 부적절하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이스페이스'에 해적 모자를 쓰고 술을 마시던 모습을 '술 취한 해적'이라는 제목을 달아 올려두었던 게 화근이었다. 학교는 스나이더에게 이런 모습은 교사 행실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임용할 수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지난 13일 유럽사법재판소(ECJ)가 "구글 고객은 구글에 시효가 지나고 부적절한 검색 결과를 삭제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구글의 검색 결과에서 개인정보를 삭제할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뒤 전 세계적으로 '잊혀질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당장 유럽 내 28개국에만 유효하지만 국경 없는 인터넷의 특성상 파장이 전 세계에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ECJ의 이번 판결 여파로 인터넷상 콘텐츠 삭제요청 시 정보통신사업자가 이를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가 탄력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CJ의 판결에 따르면 이 사례처럼 인터넷에 올린 콘텐츠로 개인이 피해를 봐 삭제를 요청하면 당위성을 따져 필요시 해당 콘텐츠를 검색 결과에서 삭제해야 한다. 사실 ECJ의 이번 판결이 있기 전까지도 인터넷에 올라온 콘텐츠가 △저작권 침해요소가 있고 △개인정보를 침해하고 있으며 △명예훼손 성격을 띠고 있을 경우 콘텐츠 삭제 요청을 거쳐 해당 사업자는 이를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저작권이 침해되지 않고, 명예훼손이나 개인정보 침해 등 법률적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도 개인의 요구에 따라 과거 기록을 지울 수 있게 했다.

국내의 경우 인터넷에 올라온 콘텐츠가 이 문제를 포함하고 있을 경우 이를 삭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망법이 시행되고 있다.

국내 포털 관계자는 "현행법에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게시물 삭제 신고를 받으면 즉시 블라인드 처리 하고, 30일 이내에 해당 게시물을 작성한 당사자에게 삭제를 요청한다"며 "하지만 현행법은 30일 이내에 수정 혹은 삭제를 반영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사업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2월 이노근 의원(새누리당)이 '개인이 인터넷 콘텐츠 삭제를 요청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위반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한다'는 의무조항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노근 의원실 제방훈 비서관은 "현행법상 문제 시 콘텐츠를 삭제하는 절차는 있지만 이를 사업자가 준수해야 하는 의무조항은 없어 해당 개정안을 발의하게 됐다"며 "다만 무분별한 콘텐츠 삭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요청할 수 있는 범위를 본인이 올린 콘텐츠에 한정해 두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로 인터넷상에서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먼저 구글은 ECJ의 판결에 대해 "검색엔진 및 온라인 퍼블리셔에 대한 이번 판결은 실망스럽다"며 "유럽 대법원 자문관이 이번 사건에 대해 이 전에도 많은 우려를 표해왔기에 이번 결정은 더더욱 놀랍다"는 입장을 보였다.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공익적 요소가 있는 기사를 삭제할 수 있는지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대 이민영 교수(법학과)는 "콘텐츠 삭제를 요구하는 사람이 공인이거나 해당 사안이 공익과 관련이 있을 경우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글은 국내에 당장 해당 법안을 적용할지 여부에 대해 "유럽 외 국가에 즉각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구글 내부 법무팀에서 검토 및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pja@fnnews.com 박지애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