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서울 시티투어 버스로 서울 한 바퀴

이다해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9.20 09:45

수정 2014.11.03 11:56

서울 시티투어 버스로 서울 한 바퀴

처서(處暑)가 지난 지 열흘. 불황 속 지갑은 말라도 가을 창밖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예년과 다를 리 없다. 가을 문턱에서, 도심 속 알뜰 나들이를 찾아 나섰다.

지난 3일 서울 태평로 서울광장. 영화에나 나올 법한 2층 버스가 거리를 누볐다. 서울시에서 기획하고 2개의 민간 여행사가 운영하는 서울투어버스. 이 중 서울시 공식 입찰을 통해 허니문여행사에서 운행하는 '서울시티투어버스'는 올해로 13주년을 맞았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연간 5만∼6만 명이었던 이용객은 작년에 10만명 이상으로 늘었다. 외국인 관광객 숫자도 증가해서 2000년 첫 운행 당시 전체 20∼30% 수준이었던 외국인 비율이 이제 약 60%에 달한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핀란드, 브라질, 포르투갈 등 국적도 다양하다.

운행 노선은 5가지다. 허니문 여행사는 광화문에서 시작해 이태원, 동대문시장을 지나는 도심순환노선(35㎞)과 덕수궁, 청계천, 창경궁을 잇는 고궁·청계노선(18㎞), 버스 종류에 따라 나뉘는 2개의 야경노선을 운행한다. 올 2월부터 시티투어버스 운행에 뛰어든 서울투어버스여행은 방산시장, 인사동, 서울 약령시를 지나는 전통시장노선(19.5㎞)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투어버스는 이처럼 다양한 노선에 저렴한 요금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노선마다 다르지만 1만원 안팎의 탑승권 한 장이면 하루 종일 탈 수 있다. 5개 노선 중 4개를 운영하는 허니문여행사 관계자는 "13년 전통을 지닌 서울시티투어버스는 다른 나라 도시 투어 버스에 비하면 4분의 1 이상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서울투어버스여행의 홍준표 대리는 "평일 하루 200여명, 주말에는 400여명의 고객들이 몰린다"며 "특히 천정이 열린 2층버스의 경우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부쩍 높고 푸르러진 하늘, 울긋불긋 물드는 나뭇잎의 가을색만큼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서울 시티투어 버스로 서울 한 바퀴

■2층버스에서 보면 서울이 낯설다

오후 1시 30분 광화문 정거장. 1층짜리 도심순환 버스는 1만2000원이지만 3000원의 욕심을 더 내서 고궁·청계노선 2층 버스에 올랐다. 버스 2층에서 내려다 본 바깥 풍경은 생각보다 낯설었다.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 했다. 객실 앞쪽은 전면유리로 돼 있어 탁 트인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손님 10여명을 실은 버스는 청계천을 따라 느긋하게 전진했다. 왼쪽 창밖에 보이는 새파란 청계천과 오른편 창 너머로 스치는 분주한 평화시장 모두 가을 햇살로 가득 찼다. 맨 앞좌석에 앉은 두 자매가 유난히 신나 보였다. 박연하양(11)과 박선하양(9)은 할머니와 이날 처음으로 시티투어버스에 올랐단다. 다음 주면 미국행 유학길에 오르는 두 자매에게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려는 할머니의 애정이 느껴졌다. 두 자매는 창밖에 시선을 집중하며 서울 풍경을 두 눈에 꼭꼭 담았다.

뒷좌석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던 조희숙씨(57)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나온 고궁 나들이에 소녀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평소에 지나치던 고궁들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돌아볼 생각이었다. 부산 시티투어 버스를 타 본적이 있는 그는 부산은 부산대로, 서울은 서울만의 조용한 매력이 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투어 버스라고해서 차창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가 인사동에 멈추자 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서울의 명소를 데려다 주는 노선을 따라 언제든지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 "노선도 가격도 좋아요"

도심순환노선엔 고궁·청계노선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비해 활기찬 매력이 있었다. 광화문과 명동, 남대문 시장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버스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부산했다. 8개월 된 아들와 함께 창밖을 내다보던 에이미씨(29)는 현재 주한미군인 남편을 따라 세계 곳곳을 다녀봤다고 했다. 그는 "런던이나 코펜하겐에서도 도시 관광버스를 타 봤지만 서울도 그에 못지 않게 즐겁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외국인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여러 명소들을 버스표 1장으로 돌아볼 수 있고 배차시간도 정확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나중에 서울에 돌아오거든 다시 버스를 이용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이나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시티투어버스를 관광을 위한 이동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지역 주요관광지와 명소를 적게는 12 곳, 많게는 27곳을 정거장으로 삼은 노선 덕분에 서울 시내가 낯선 관광객들에게는 탁월한 교통 수단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서울 관광에 나선 김재선씨(34)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관광지를 찾아가는 갈 생각에 걱정이 많았다"면서 "서울시티투어버스 노선이 다양한 관광지를 거치기 때문에 편하게 관광할 수 있어 한시름 놓았다"고 했다.

서울투어버스에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승객들에게 통역과 안내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다. 전통시장노선에서 만난 시드니(22)씨는 "다른 나라 투어버스는 지나는 명소마다 안내를 들을 수 있도록 좌석에 통역기가 설치돼 있고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는데 여기(전통시장노선)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나는 풍경을 바라보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정작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 말해주는 이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통역기가 있는 노선엔 관광 안내원이 없어 아쉬웠다. 정거장에 멈출 때마다 좌석에 걸린 헤드셋에서 녹음된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소음에 취약한 객실에서 안내 음성을 놓쳤을 때 관광객이 도움을 요청할 안내원이 필요했다.

■야경으로 만나는 색다른 도시체험

야경 코스는 서울시티투어버스의 백미였다. 강변북로를 따라 달리는 버스 차창 너머로 은하수처럼 빛나는 한강 다리가 보였다. 수변 위로 비치는 도시 불빛은 수천 개의 연등이 떠내려가는 듯 했다. 이름을 밝히기 부끄럽다는 한 연인이 창가에 꼭 붙어 있었다. 야경버스로 데이트한 소감이 어떠냐고 물으니 남자친구가 운전하는 수고 없이 드라이브하는 기분을 낼 수 있어 즐거움이 배가됐다며 미소지었다.

하루 1번 오후 8시에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야경버스는 남산과 반포로 향하는 2개 노선이 운행한다. 노선에 따라 버스 종류도 다르고 요금도 다르다. 광화문에서 출발해 한강을 지나 청계광장으로 돌아오는 반포노선을 골랐더니 낮에 봤던 2층 버스였다. 남산 노선은 일반 1층 버스만 운행한다고 하니 미리 확인해야 한다. 요금도 성인기준으로 남산노선은 6000원, 반포노선은 1만2000원이다.


깊은 밤을 향해 달리는 버스 곁으로 서울의 야화(夜火)와 연인의 추억, 가을밤이 흐르고 있었다. 낮 시간 버스와 달리 야간버스는 중간에 멈추지 않는다.
찬란한 도시의 불빛을 따라 38㎞노선을 90분간 쉴 새 없이 달렸다.

서울 시티투어 버스로 서울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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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ee@fnnews.com 이다해 고민서 박종원 윤지영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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