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25) 지상 160m·345kV 특고압.. 극한 직업 ‘송전 전기원’

신아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23 17:12

수정 2014.10.24 23:23

한전KPS 인천사업소의 한 송전전기원이 영흥 송전선로에 연결된 애자의 불량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한전KPS 인천사업소의 한 송전전기원이 영흥 송전선로에 연결된 애자의 불량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전기를 자연상태의 물이나 공기를 마시듯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사용한다. 그만큼 전기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익숙해 있다. 그런데 전기는 생산과정에서부터 송·배전 및 분전 등을 거쳐 가정이나 사무실, 공장 등으로 전달되기까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정전으로 이어진다. 발전소에서 가정이나 사무실, 공장 등으로 24시간 끊이지 않게 전력을 전달하는 '송전선로 지킴이' 한전KPS 송전전기원들은 최일선 숨은 일꾼들이다.
송전선로를 떠받치는 송전탑이 전국적으로 4만1000여개에 달하지만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가끔 송전탑에 곡예를 부리듯 아슬아슬 매달려있는 '누군가'를 발견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송전전기원은 선로의 이상유무를 점검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보수까지 도맡는다. 발전기가 생산하는 전기를 가정과 공장 등에서 안정되게 쓸 수 있게 유지하는 것도 송전전기원이 하는 일이다.

【 안산(경기)=신아람 기자】 "일반인들은 드라이브할 때 좋은 경치를 감상하죠. 저희는 드라이브할 때도,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철탑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인류의 최대 이기(利器)인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국민에게 생활편의를 제공하고 나아가 산업활동을 정상적으로 유지시킨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난 17일 기자가 인천 시화호 주변 영흥 송전선로 앞에서 만난 한전KPS 인천사업소 소속 김장홍씨(42)의 말이다.

■20㎝ 발판볼트 딛고 160m를 암벽 타듯

기자는 이어 뱃고동이 울리는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 한전KPS 인천사업소의 송전전기원 11명을 만났다.

한전KPS는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로 송전관리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인천 서구 중봉대로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인천사업소 전기원들은 3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선임과장, 조장, 조원 등 보직을 맡고 있다.

송전전기원들은 준비운동을 마치고 "좋아! 좋아! 좋아!"를 외치며 서로의 장비를 점검했다. 안전모, 허리띠, 어깨끈, 추락방지용 로프, 안전화, 빨간 장갑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전공구를 착용했다. 무더운 여름에도 예외는 없다. 일반 가정에서 쓰이는 220V 전압의 1600배에 달하는 345㎸의 특고압이 흐르는 만큼 도전복으로 중무장해야 한다. 작업을 하면서 하늘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눈시림 방지용 선글라스도 필수다.

'하늘호'를 타고 시화호에서 6분 정도 이동하자 영흥 해상송전철탑 30호 앞에 다다랐다. 철탑 아랫부분의 사다리를 두어 개 올라가니 바다 특유의 칼바람이 느껴졌다.

송전전기원들은 2인1조로 나뉘어 각자 맡은 철탑으로 흩어졌다. 이날 점검은 3개월마다 진행하는 '보통순시'였다. 철탑 주변에 하자가 있는지, 설비나 전선에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이상이 있으면 보수하는 일정이다.

바다 위에 설치된 이곳은 내륙에 있는 여타 철탑보다 더 엄격한 점검을 거친다. 강설·강우·온습도·풍향·풍속 등 기상을 관측할 시스템도 철탑 아래 부분에 갖춰져 있고 별도의 전원이 없어 태양전지판이 설치돼 있다. 한전KPS 인천사업소 관계자는 "육상철탑은 1년에 한 번 철탑을 점검하지만 해상 철탑은 6개월에 한 번으로 관리를 강화했다"며 "염분에 노출돼 철탑이 부식되지는 않았는지 등의 '방염' 여부도 1년에 한 번 별도로 점검한다"고 말했다.

전기원들은 밤송이처럼 박힌 가로 20㎝ 길이의 발판볼트를 딛고 암벽 타듯 거침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80~160m 높이의 철탑에 레일을 타고 올라갈 법도 하지만 속도가 느려서 로프에 의지한 채 스스로 올라가야 한다. 승강용 엘리베이터는 무거운 자재를 운반할 때만 사용한다.

전기가 땅에 직접 흐르지 않도록 선로와 철탑 사이에 설치한 '애자'를 청소하고 필요시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하는 것도 이들의 주요 업무다. 언뜻 보기에는 동글동글한 플라스틱을 여러 개 연결해 놓은 것 같지만 애자 한 개당 무게는 10㎏에 달한다. 이와 함께 항공장애표시구로 쓰이는 60㎝의 주황색 볼도 관리해야 한다. 철탑 아래에선 한전에서 나온 현장감독관이 무전기로 소통을 했다.

한전KPS 인천사업소 송전전기원들이 지난 17일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한국전력공사 영흥송전선로를 점검하기에 앞서 준비 운동을 하고 있다.
한전KPS 인천사업소 송전전기원들이 지난 17일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한국전력공사 영흥송전선로를 점검하기에 앞서 준비 운동을 하고 있다.

■기상악화로 인한 선로보수 땐 '아찔'

점검을 마치고 철탑에서 송전전기원들이 하나둘 내려왔다. 철탑 1기당 점검시간은 최소 1시간인데 송전전기원들이 이날 점검한 철탑은 12기였다.

선임과장인 이모씨(52)는 서울과 군포에 이어 인천사업소까지 돌며 24년째 송전전기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걱정할까봐 가족한테는 무슨 일을 하는지 말을 안 한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그는 "무릎관절이 안 좋지만 등산, 헬스, 테니스 등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건강관리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제일 걱정되는 건 날씨다. 태풍이 몰아치는데 낙뢰가 쳐 선로가 고장나면 날씨에 관계없이 긴급히 복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력 14년차인 김장홍 조장(42)은 "언젠가 철탑 사이를 지나가다 미끄러졌을 때 정말 아찔했다"면서 "안전로프가 있어 무사했다"고 말했다. 김 조장은 "비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 때, 눈이 올 때 업무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작업 장면을 '최고의 스턴트맨'이라며 장난 삼아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서 올리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날 점심을 컵라면과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여유를 부릴 틈 없이 모든 점검을 마치고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선박 임차료가 하루에 75만원에 달해 일정에 맞춰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엔 고장예방 홍보…설득자 역할도

"행정기관도 아니고 사법부도 아니어서 단속권한이 없죠. 감전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위험하다고 설득해도 듣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설득할 때는 마치 텔레마케터라는 기분이 듭니다." 한전KPS 송전전기원을 관리·감독하는 한전 인천지역본부 한동수 송전운영차장(43)의 말이다.

송전전기원들은 철탑에 직접 올라가는 점검 일정이 없는 평소에는 송전선로의 고장을 예방하는 일을 한다. 방해물을 확인하고 당사자를 설득하는 일이다.

이 과장은 "사무실에서 보통 오전 7시30분에 출발해 차를 타고 송전선로 근처를 쭉 돌면서 방해물을 살핀다"며 "주로 크레인이나 펌프카 같은 중장비가 대다수인데 물체를 발견하고 당사자에게 비켜달라고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 오후 5시30분쯤 돌아와 매일 예방일지를 작성하고 오후 8시쯤 퇴근한다"며 "교대로 쉬지만 365일 연중무휴 활동한다"고 덧붙였다.


전기와 인체의 영향에 대해 한 차장은 "고압선 근처에 서면 머리카락 끝이 쭈뼛 서는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전자계와 전자파는 다르다. 송전선로의 전자계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밝혔다.
그는 "고압이 흐르는 곳에서는 모두 철저히 안전을 지키고 있으며 추락 위험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hiara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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