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노동복지

“스타킹 벗어 달라”는 말에도 웃어야하는 감정노동자

성초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5.18 11:02

수정 2014.11.06 18:33

항상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말해야 하는 승무원과 은행원처럼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행동해야 하는 사람들을 ‘감정노동자’라고 한다. 이같은 직업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적 제도나 회사의 처우가 부족해 많은 수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기내 스크린 사용법을 웃으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파이낸셜뉴스 DB

항공사 승무원으로 2년간 근무했던 김 모씨(26)는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호텔이나 커피숍에서도 받을 수 있는 고급 서비스에 익숙해진 손님들이 비행기 내에서 물적 서비스 외에 인적 서비스 제공을 받길 원한다”며 “특히 인적 서비스에 외모 요건이 들어가는 냥 외모를 지적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옷이 흐트러진 것은 물론 색 있는 렌즈를 착용하거나 속옷의 색깔이나 라인, 심지어 얼굴에 멍이 든 것도 지적하는 승객이 있다”며 “가끔 남자 승객들이 지적할 땐 성희롱 당하는 기분도 들지만 회사 방침 상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또 “서비스를 할 때마다 보조개가 이쁘다는 식으로 치근덕거리는 승객이 있어도 서비스 구역으로 배정 받으면 10시간 동안 웃으면서 서비스를 해야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또 “동료의 경우 승객으로부터 지금 신고있는 스타킹을 벗어달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웃으면서 응대할 수 밖에 없었다”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성희롱의 경우 회사 방침상 보고를 통해 재재를 할 수는 있지만 회사에서 “좋게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회사에 보고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씨의 경우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불량과 구토증세를 보였고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했다. 그는 “감정을 표현 못하고 항상 참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현재 한 은행에서 근무하는 임 모씨(27)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은행을 찾는 고객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그는 “절차상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소리를 지르며 거부하는 손님들을 대할 때도 웃으면서 응대해야 한다“며 “나도 사람이다 보니 가끔은 울컥한다”며 심정을 털어놨다. 또 “가끔 남자 고객들이 사적으로 연락을 해오면 원치 않아도 냉정하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들이 은행에서 중요한 고객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 자료=통계청

통계청에 따르면 이 같은 서비스 산업 종사자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1년에는 648만2000명이었으나 2009년에는 881만3000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적 제도나 회사에서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의 ‘민간 서비스 노동자 삶의 질 연구’를 위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비스직 종사자 3096명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후유증을 조사한 결과 26.6%의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중등도 혹은 고도 우울증 증세를 띄고 있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감정노동자들의 경우 스트레스로 인해 삶의 질이 저하될 뿐 아니라 우울증이 심하면 심장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며 “회사에서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감정노동자들의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며 회사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성종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국장은 “감정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비 문화의 선진화가 필요하다”며 “서비스업종 종사자들에 대해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우미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에서도 휴일날 더 일하고 평소에도 연장 영업을 하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을 위해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감정노동자는 미국의 사회학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가 1983년 ‘감정노동(The Managed Heart)’이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했다.
앨리는 이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육체·정신 노동 외에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야하는 감정노동을 하며 인간이 본성인 감정을 상품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ongss@fnnews.com성초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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