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고소득 전문직 ‘사’ 字들의 전쟁] 밥그릇 빼앗기 싸움 치열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4.25 21:52

수정 2014.11.06 20:29

대한민국은 지금 변호사와 공인회계사, 변리사, 의사, 한의사, 감정평가사 등 고소득 전문직들의 '영토전쟁'이 한창이다. 일감은 한정돼 있는데 정부의 전문직 확대 정책으로 이른바 '사(士·師)'자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종전 같은 업종 내 일감 확보전을 넘어 최근에는 유사한 다른 업종의 업무영역까지 넘보면서 법정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고소득 전문직종의 최근 업무영역 확보를 위한 법적 다툼 및 업종 내 갈등 양상이 확산되고 있는 배경과 주요 현안 및 대안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지난 5일 서울북부지법 402호 법정에서는 회계사업계와 감정평가업계 간 날선 공방이 벌어졌다.

한국감정평가협회가 2009년 12월 '부동산공시법 위반'으로 삼정KPMG 자회사인 삼정KPMG 어드바이저리를 고발한 후 열린 2차 공판이었다. 감정평가협회는 삼정KPMG 자회사가 재량권을 남용해 대기업의 부동산자산재평가작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올해부터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으로 기업들의 자산평가 시장이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신시장 진출을 노리는 회계업계와 고유 영역 방어를 위한 감정평가업계 간 공방이 이번 법정 다툼을 통해 가시화된 것이다.

삼정 측은 이날 "회사 내부에 평가팀을 운영해 많은 건의 업무를 처리해 왔으며 과거에는 자산평가와 관련해 공인회계사 시험과목에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감정평가협회 측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공인회계사의 시험과목에는 감정평가와 관련된 과목이 없었다"면서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갖췄다고 감정평가를 용인하는 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사회 문제를 유발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양측은 오는 5월 17일 열리는 제3차 공판에서 다시 격돌한다.

회계사와 감정평가사 간 치열한 업무 영역 쟁탈전이 고소득 전문직종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사'자 직종의 위상에도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고소득 전문직종 간 업무 영역 확보를 위한 주요 법적 분쟁은 '변호사-변리사', '의사-한의사', '회계사-감평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상대편 전문가 집단이 업무 영역을 침범했거나 혹은 자신들의 업무 영역이 법적으로 과도하게 제한돼 있다는 것을 주요 이유로 내세운다. '고시 패스'를 통해 지난 수십년간 사회적 권위 확보와 안정적인 고수익을 누리며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주도하던 '사'자 전문직업인들이 사회 변화에 따라 귄위 추락과 수익성 악화라는 수렁에 빠지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변호사와 변리사업계는 지난해 12월 변리사 8명이 헌법재판소에 '민사소송법이 (변리사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결과에 이목이 쏠려 있다. 변리사업계는 대법원이 변리사에게는 특허 관련 단독소송 대리권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불평등하다는 주장이다. 대한변리사회 고영회 부회장은 "현재 변호사들은 자신들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것까지 일단 수임하고 난 뒤 자신이 변리사를 다시 고용해 맡기는 하청구조 형식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이중 하청구조로 가게 되면 결국 그 비용을 모두 소비자가 부담할 수밖에 없어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인사들은 변호사-변리사 간 치열한 업무공방 주제였던 소송 주도권에 대한 분쟁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라면서도 이번 재판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회계업계와 감정평가업계도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상장기업의 부동산 등 유형자산 재평가 업무 확보를 둘러싸고 법정에서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감정평가업계와 회계업계 모두 각 영역 내 전문가를 과잉 배출한 데다 업무 영역도 축소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놓고 생존경쟁을 펼치는 것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의약분쟁으로 의사대 약사간 홍역을 치르다가 잠잠했던 의료계는 이번에는 의사와 한의사 간 '마지막 먹을거리' 분쟁으로 소란스럽다.
한 한의원에서 'IPL기기'를 이용해 환자를 치료하자 대한의사협회가 이를 불법행위로 고발한 사건을 계기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 간 충돌로 이어졌다. IPL기기는 피부잡티, 주근깨 등을 해결하는 광선치료기기의 일종으로 사용면허 취득 여부가 쟁점이다.
이 같은 '사'자들의 '영토 전쟁'은 한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상류층 간 생존과 권위 확보를 놓고 벌이는 대리전적인 성격도 가미돼 있다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특별취재팀 조창원 팀장 김성환 강두순 홍창기 유현희 강재웅 이병철 이유범 김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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