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갚은 빚을 또 갚으라니”.. 채권추심 사기 기승

장용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6.28 17:30

수정 2013.06.28 17:30

“갚은 빚을 또 갚으라니”.. 채권추심 사기 기승

김모씨(55·여)는 지난해 2월 자신의 예금 등 6600만원을 압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최모씨에게 진 빚 1500만원을 갚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원금에 이자까지 합쳐지다 보니 금액은 한참 불어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이미 지난 2006년 최씨에게 진 빚을 모두 상환했다. 당시 김씨는 남편이 가지고 있는 채권 3000만원을 최씨에게 넘겼고 최씨로부터 '채권소멸확인서'까지 받았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는 동안 확인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빚을 갚았다는 증명을 할 길이 없어진 김씨는 어쩔 수 없이 이미 갚은 빚을 다시 갚아야 할 처지가 됐다.


장모씨(58·여)도 앞의 최씨로부터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호프집의 조리도구 등을 압류당할 뻔했다. 2006년 6월 빚을 갚았는데도 또다시 빚을 갚으라는 통보와 함께 재산이 압류됐던 것이다. 알고 보니 채권자인 최씨가 판결문 정본을 다시 발급받아 강제집행 신청을 낸 것이다. 장씨는 부랴부랴 당시 돈을 갚은 자료들을 찾아내 법원에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냈고 경매 직전에 강제집행 불허 결정을 받아냈다. 그런데 최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씨와 장씨의 아들을 사기혐의로 고소까지 했다. 돈을 투자하면 월 300만원을 주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삼았다. 심지어 최씨는 위조된 약정서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기까지 했다. 화가난 장씨는 법정공방과 함께 최씨를 경찰에 고소했지만 경찰은 '혐의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도 속수무책

빚을 갚은 뒤 몇 년이 흐르면 채무자들이 관련 서류를 제대로 보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최씨의 사기 행각은 경찰마저도 속아넘어갈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의 범행은 검찰청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검찰은 최씨와 관련된 사건이 몇 건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추가 수사를 벌였고 최씨가 악덕 채권추심업자라는 것을 밝혀냈다.

28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전형근)는 최씨를 사기 및 사기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으며 최씨는 현재 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들어 이처럼 사법제도와 거래관행의 허점을 악용하는 채권사기범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일반인들은 법원에서 날아오는 서류만 봐도 놀라는 점을 악용한 악덕 채권추심업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억울해도 대항할 방법과 절차를 모르는 서민의 등을 치는 악성 범죄"라며 "이미 받은 채권은 물론 심지어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까지 범죄에 악용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실제로 6월 17일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대법원의 '전자독촉 시스템'을 악용해 이미 소멸된 채권을 집행하려던 불법채권추심업체 22곳을 적발해 11명을 구속기소하고 2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법률 조력 '사각지대' 노려

이들은 이미 문을 닫은 업체나 오래돼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헐값에 인수한 뒤 채권자들에게 무더기로 지급명령을 보내는 수법을 썼다.
'전자독촉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직접 법원을 가지 않더라도 지급명령 등 채권독촉 절차를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범죄였다. 이런 악덕 추심업자들 가운데는 최고 50억원의 수익을 거둬들인 사례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 관계자는 "서민들이 변호사들의 조력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한 범죄"라면서 "서민들이 손쉽게 법률적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무료 변론이나 상담 기회 등을 제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ohngbear@fnnews.com 장용진 권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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