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애정만세’ 배우 서주희 “중년의 사랑 지지해요”

박소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6.25 09:25

수정 2011.06.24 21:17

“연기는 저에게 오랜 사랑이에요. 사랑이 깊어지면 좌절도 했다가 달콤한 꿈을 상상하면 행복해지는 것처럼 연기가 그래요. 힘들어서 연기를 그만둘까 고민했을 때도 열정이 식진 않았어요. 어느 순간 역할을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움이 되더라고요.”

▲ 영화 '애정만세'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서주희(자료제공=아담스페이스)

배우 서주희(44)는 지난 1989년 KBS 공채 13기 탤런트로 연기에 첫 발을 디뎠다. 20여년 동안 연극계로 투신, 지난해 제3회 대한민국 연극대상과 지난 3월 제47회 동아연극상의 연기상을 휩쓸며 연극계 1% 배우임을 입증했다.

누구보다 까다롭게 작품을 고르고 무대에 오르면 완벽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그이지만 영화 ‘애정만세’ 개봉에 앞서 만났던 인터뷰에선 여유가 넘쳤다.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그의 삶이 묻어나왔다. 의미있는 작품을 위해 때로는 3년, 길게는 5년까지 기다리면서 그 시간을 연기를 위한 자양분으로 쌓았고 기다림을 즐길수록 연기도 삶도 단단해졌다. 모든 것이 삶 전체를 연기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는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무엇을 주고 나눌 것인가’를 늘 생각해요. 완벽주의죠. 작품 편수가 많지 않지만 제 선택이 옳았다고 믿어요.”

완벽주의자 서주희가 고른 이번 작품은 옴니버스 영화 ‘애정만세’의 한 축인 단편 ‘산정호수의 맛’이다.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 프로젝트로 부지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10대 후반의 딸을 가진 평범한 주부 순임이 야유회에서 반한 마트 직원 준영에게 설레는 중년 여성의 감정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 산정호수로 찾아가 준영과 행복한 데이트를 상상하는 순임(자료제공=아담스페이스)

“시나리오를 읽는데 주인공 순임이 꿈꾸는 엉뚱한 사랑이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하더라고요. 70세가 돼도 사랑을 꿈꾸는 여성이요. 여자는 엄마가 되는 순간 여성성을 잃지만 때론 낯선 남자의 사소한 친절에 설레기도 하거든요. ‘순임의 모습이 곧 너의 모습이고 당신 엄마의 모습’이란 점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영화는 순임의 현실과 상상을 묘하게 넘나들며 관객이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든다. 1인극이나 다름없는 이 영화에서 여백을 만든 건 서주희의 자연스러운 연기 공이 크다.

서주희는 빛바랜 순임의 삶에 초록색 사랑의 씨앗을 싹 틔웠다. 순임은 소녀처럼 딸의 분홍색 어그를 뺏어 신고 야유회의 장소였던 산정호수를 다시 찾아가 추억을 더듬으며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가 하면, 준영의 집 앞까지 용기 내서 찾아갔지만 정작 말도 잘 못할 정도로 소극적이기도 하다. ‘순임의 마음은 소녀지만 마냥 소녀처럼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없다’는 서주희식 해석의 결과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의 핵심 장면은 엔딩 컷이다. 순임이 준영에게 초코바를 내밀며 사랑을 표현했다 돌아서며 초코바를 씹어 삼키는 장면은 ‘혼자서 좋아했다 혼자서 짓밟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며 영화를 완성시킨다.


▲ 순임이 자신의 마음을 담은 초코바를 준영에게 내미는 모습(자료제공=아담스페이스)

“‘애정만세’는 갈수록 생각나는 작품이란 평이 듣기 좋아요. 영화를 보고 며칠을 지나 문득 떠올리면서 ‘그렇구나’하는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을 원했거든요. 요즘 영화든 방송이든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는 게 많잖아요. 여기서 웃어라, 여기서 울어라. 저는 ‘애정만세’ 같은 작품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다림과 비움의 미학을 아는 서주희다운 말이다.

/gogosing@fnnews.com 박소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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