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32번가’ 미국 속 한국,경계선 위의 인간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1.15 16:14

수정 2014.11.04 19:47



자유의여신상, 센트럴파크,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메트로폴리탄의 심장’으로 불리는 미국 뉴욕에 도착한 관광객이라면 으례 이런 곳을 찾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인 방문객은 관광책자에 등장하는 유명 관광지 외에 또 들르는 곳이 있다. 한국인 상점이 밀집해 있는 웨스트 32번가다. 관광과 쇼핑에 지친 사람들은 이곳에 들러 김치찌개나 설렁탕으로 요기를 하고 24시간 영업하는 한국 식당에서 밤새워 소주를 마시기도 한다.

마이클 강 감독의 ‘웨스트 32번가’는 이곳 뉴욕 한인타운을 배경으로 한 한·미 합작 영화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한국 자본으로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들이 만든, 한국 영화다.
3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는 국내 최대의 영화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댔고 시나리오와 연출은 재미교포 2세로 할리우드에서 맹활약 중인 마이클 강(연출·각본)과 에드먼드 리(각본)가 맡았다.

출연진도 대개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미국 주류사회로의 편입을 꿈꾸는 한국계 변호사 존 킴 역의 존 조는 ‘웩 더 독’ ‘아메리칸 파이 2’ ‘해롤드와 쿠마’ 같은 영화로 유명해진 재미교포 1.5세고 자신의 핏줄을 감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라일라 역의 그레이스 박이나 룸살롱 접대부로 일하는 불법체류자 숙희 역의 제인 김 역시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교포 2세 배우다. 영화에서 또다른 축을 이루고 있는 한인 조직폭력배 마이크 전 역의 김준성도 홍콩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영화는 웨스트 32번가에서 울려퍼지는 세 발의 총성으로 시작된다. 뉴욕을 본거지로 활동하는 한국 갱단의 중간 보스이자 한국인이 운영하는 룸살롱의 지배인인 전진호(정준호 분)가 느닷없는 총격에 숨을 거둔다. 사건 직후 14세의 한국계 소년이 살해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과연 그 소년이 총을 쏜 장본인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진실과 거짓이 실타래처럼 뒤엉킨 ‘웨스트 32번가’의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느와르’(범죄와 폭력의 세계를 다룬 영화)의 외피를 뒤집어 쓰고 있지만 ‘웨스트 32번가’는 사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재미교포들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담고 있는 꽤 ‘진지한’ 영화다.
어차피 마이너리티일 수밖에 없는 한인사회 내부의 균열이나 주류 문화와 비주류 문화의 충돌, 그 경계마저도 모호해진 진실(선)과 거짓(악)의 문제 등 이번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이야기의 폭과 깊이는 넓고 깊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소개된 뒤 일반인을 상대로 열리는 첫 시사회를 위해 지난 7일 한국을 찾은 마이클 강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은 미국사회와 한국사회 가운데 그 어디에서도 소속될 곳을 찾지 못한 경계 위의 인간들”이라면서 “범죄 드라마라는 대중적인 형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22일 개봉.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사진설명=마이클 강 감독의 '웨스트 32번가'의 주무대는 뉴욕에 있는 한국식 룸살롱 '마마스'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