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그녀+무협=무림여대생?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6.26 17:00

수정 2014.11.07 00:56



곽재용 감독의 ‘무림여대생’은 즐겁고 신나는 영화다. 곽 감독의 대표작 ‘엽기적인 그녀’에 장쾌한 무협 활극이 뒤섞인 형국이다. 그의 또다른 대표작인 ‘클래식’의 신파가 끼어들고 도시를 배경으로 무협액션이 펼쳐지는 ‘아라한 장풍대작전’이나 장이모우 풍의 무협 멜로의 흔적도 역력하다.

‘무림여대생’의 첫 장면은 꽤 인상적인 편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허둥대던 소휘(신민아)가 담장을 사뿐히 뛰어넘고 지붕을 붕붕 날아다니는 장면은 ‘소녀 장사’ 소휘가 앞으로 펼쳐보일 황당무계한, 그러나 즐거운 이야기의 단초를 제공한다.

로맨틱 코미디와 무협 액션이 비빕밥처럼 뒤섞인 ‘무림여대생’의 즐거움은 어긋남에서 비롯된다.
망치에 맞아도 아프지 않고 말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무림 고수 소휘가 사랑에 눈을 뜨면서 영화는 엉뚱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아버지 갑상(최재성)에게 “나도 이제 결혼도 할 수 있고 애도 낳을 수 있는 나이”라고 외치는 소휘는 급기야 무술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사랑하는 남자가 생긴 스무살 소휘의 꿈은 조신한 여자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휘의 핑크빛 소망은 과연 이뤄질까. 로맨틱 코미디처럼 알콩달콩 이야기를 만들어가던 영화가 비장하기까지 한 무협 멜로로 방향을 트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부터다. 무림 최고의 적 흑범이 아버지 갑상을 혼수상태에 빠뜨리면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소휘는 다시 검을 빼든다.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던 로맨스와 도심을 배경으로 소소하게 진행되던 액션도 무꽃이 흐드러지게 핀 벌판이나 바닷가, 대나무 숲 등 광활한 대지로 장소를 바꾸면서 규모를 키운다. 그리고 어린 시절 소휘와 함께 무술을 연마하던 소꿉친구 일영(온주완)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무협 멜로의 애절함에 흠뻑 젖어든다.

곽재용 감독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이후 4년만에 내놓은 ‘무림여대생’은 전혀 새롭지 않다. 장이모우 감독의 ‘연인’이나 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 다른 감독의 영화는 물론,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등 곽 감독이 직접 만든 작품들의 흔적도 언뜻 보인다. 영화 후반부에선 ‘엽기적인 그녀’의 차태현이 카메오로 깜짝 출연해 관객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곽 감독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기시감(旣視感) 보다는 오히려 무분별한 장르 혼합이나 다소 혼란스러운 이야기 구성이 관객들에게는 더 큰 불만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시나리오를 바닥에 떨어뜨린 뒤 뒤섞어서 만든 것 같다’(달시 파켓), ‘액션도 유머도 신파에 무릎을 꿇었다’(박평식), ‘근사한 여전사의 신화, 사족 같은 서사가 힘을 뺏다’(유지나)는 등의 불평이 이에 해당한다.


곽재용 감독은 “이번 작품은 ‘엽기적인 그녀’와 무협을 버무린 영화로 설명할 수 있다”면서 “이제 곱게 키운 딸년(무림여대생)을 관객에게 시집 보냈으니 사랑받기만을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26일 개봉.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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