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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모자와 황금날개] <152> 6인의 세렌디피티 ⑫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5.20 16:57

수정 2009.05.20 16:57



■글: 박병로 ■그림: 문재일
화룡점정. 오시리스는 이 한마디의 사자성어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DS지오텍 매각을 추진하는 세력이라면 그런 정도의 작전명을 만들었을 터였다. 사기 거래의 마지막 단계에 매수자를 속이기 위해 당겼던 줄을 놓은 격이었다. 걸려들어 안달하면 좀 더 가격을 올리고,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항의하면 적당히 양보하는 척하면서 신속히 거래를 매듭짓고자 할 터였다.

그런 노이만과 배민서의 생각과는 달리 필립은 단순하게 보았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사기 칠 리 없습니다.
뭔가 사정이 있거나 정말로 팔기 아까워서 그러는 것일 겁니다.”

배민서가 DS지오텍보다 더 좋은 회사가 널렸다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필립은 더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만 하시겠습니까? 바이어마켓(인수하는 쪽이 거래를 주도하는)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기왕 이렇게 된 것 두 분 말씀대로 할 생각이니까. 적당히 해 두십시오.”

세 사람은 대꾸하지 못했다.

일과 후에 진행되는 M&A컨설팅 강의 시간이 임박했다. 서둘러 사무실로 내려가 수강할 준비를 했다. 노이만과 배민서는 거래가 무산된 것이 즐거운지 강의를 준비하면서 오래된 음담패설을 지껄이며 낄낄거렸다. 모두가 기업인수 게임을 중단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는 듯했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필립은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신입 여직원과 함께 강사가 도착했다. 키가 1미터 80센티미터쯤 되는 건장한 남자였는데, 착 달라붙는 검은 정장 차림에 약간 각이 진 구릿빛 얼굴과 외꺼풀인 작은 눈이 퍽 인상적이었다.

“제 이름은 이렇게 씁니다.”

강사가 LCD텔레비전 곁에 서더니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며 화이트보드의 마커를 집어 들어 ‘신 ㅁ ㅂ-SMB’라고 커다랗게 썼다. 그러고는 스스로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이름이라는 듯이 화이트보드의 글자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자동차 브랜드 같다고요? 아니죠오, 슈퍼 메가바이트. 맞습니다아. 흐흐! 이렇게 얘길 해야 제 이름을 안 잊더군요.”

무겁게 굳어 있던 필립의 표정이 신 강사의 말에 서서히 풀렸다. 오늘 강의는 M&A컨설팅 실전 사례였다. 프로필을 보니 그는 연간 20여 건의 M&A를 진행하는 ‘e러브홀딩스’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우리 회사 이름을 보면 열에 대여섯은 인터넷 섹스 숍을 연상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감성경영을 나타내고자 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신 강사가 다시 한 번 자신이 생각해도 상호명이 흡족한 듯 웃었다. 얼굴 어느 곳에 웃음 샘이 있는 것일까. 그치지 않고 웃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뭐든 서두르는 필립에게 좋은 스승이 될 것 같았다.

“실제 있었던 사례를 살펴보겠지만, 우선 저는 지금 시장에 나온 매물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실전사례로 썩 괜찮을 겁니다.”

화이트보드에 ‘S사’라고 써놓고 강사가 모두를 둘러보았다.

“S사는 포철에서 철을 가져다 반도체와 통신선에 쓰이는 연관제품을 생산하는 기술력이 있는 우량 중소기업입니다.
시장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정말 따끈따끈한 매물입니다.”

이 느낌! 얼마 만인가. 오시리스는 눈을 감고 흐드러지게 진저리를 쳤다.
DS지오텍과 어그러졌기에 망정이지! 좋은 패가 들어올 때의 유쾌하고 상쾌한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게다가 철을 취급하는 회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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