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곽인찬의 팬텀오브더뮤지컬] 금발이 너무해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1.13 18:23

수정 2011.01.13 18:23

금발은 멍청하다는 속설을 깨면서 동시에 자기를 걷어찬 옛 남자친구에게 한 방 먹인다.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의 줄거리는 단순명쾌하다. 할리우드 영화의 가벼움이 그대로 묻어 있다는 점에서 할리우드 뮤지컬을 보는 듯하다. 마무리는 역시 해피 엔딩. 무한 발랄·유쾌한 2시간40분짜리 공연이다.

원작은 아만다 브라운이 쓴 동명 소설이다. 미국 스탠퍼드 로스쿨을 다닌 브라운은 자기 체험을 소설로 엮었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2001년 리스 위더스푼 주연의 영화가 나왔고 2007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진화했다. 국내 라이선스 초연은 2009년이고 이번이 두번째다.

내가 본 공연(1월 11일)엔 최성희(바다)가 주인공 엘 우즈 역으로 나왔다. 최성희는 국내 초연 멤버였던 김지우와 더블 캐스팅됐다. 최성희는 옥주현과 함께 대중스타에서 뮤지컬 스타로 변신에 성공한 대표적인 배우로 꼽힌다. 이날 공연에서도 최성희는 전문 배우 뺨치는 연기력을 뽐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무대 장악력. 어떤 역을 맡든 좋은 배우에겐 ‘미친’ 존재감이 있다. 무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객석은 숨을 멈추고 긴장한다. 존재감은 배우와 관객이 소통할 때 나온다. 존재감만 따지면 조연인 성기윤(캘러한)이 좋았다.

최성희의 상대역은 정통 뮤지컬 배우인 김수용(에밋)이 맡았다. 원작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김수용의 노래 비중이 너무 작아 아쉽다. 일인다역으로 출연한 김재만은 약방의 감초 역을 잘했다.

스토리는 차라리 한 편의 동화에 가깝다. 미국 서부 UCLA ‘메이 퀸’ 출신의 엘 우즈는 남친 워너에게 버림받는다. 멍청해 보이는 금발에 진지하지 못하다는 게 그 이유다. 부잣집 공주님 엘은 남친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남친이 다니는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한다. 여기서 좌충우돌, 뜻밖의 능력을 발휘한 엘은 뒤늦게 청혼반지를 내미는 옛 남친을 걷어차고 순박한 시골 출신 선배 에밋과 사랑에 골인한다.

굳이 의미를 끌어내자면 ‘금발…’은 하버드 로스쿨과 같은 동부 명문대학의 출세만능주의를 꼬집는다. 상어처럼 상대방을 물어 뜯고 피를 봐야 살아남는 미국 법조계의 비윤리성도 도마에 오른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못 말리는 금발 아가씨의 핑크빛 사랑 이야기다.

사실 뮤지컬에서 함부로 의미를 찾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다.
재미와 감동을 겸비한 작품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냥 두 시간 남짓 웃고 즐기리라 작정하고 나서는 게 현명한 관람 태도일 수 있다.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와 같은 창작극에서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 장유정 연출이지만 외국에서 들여온 라이선스 작품에서는 한계가 있다. 3월20일까지 서울 코엑스 아티움. (02)738-8289.

/paulk@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