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연극, 古典에 빠지다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1.09 17:03

수정 2013.01.09 17:03

연극, 古典에 빠지다


"난, 아내를 묻은 벽을 두드리며 허세를 부렸어. '이 벽은 정말 단단하다구요. 한 번 만져보세요.' 그냥 가려던 경찰이 돌아서 벽을 부수기 시작했어. 난 머리를 쥐어뜯었지. 피가 딱딱히 굳은 아내의 시체가 똑바로 서 있었어. 그리고, 그 위에, 그놈의 검은고양이가 앉아 있는 거야."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산울림소극장. 소파 하나가 유일한 세트인 이 무대에서 배우는 대본을 손에 잡고 입체 낭독 공연 중이다. '산울림 고전극장 시리즈 1탄'으로 올려진 미국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세 작품 중 마지막 '검은고양이'.

30분짜리 낭독공연은 후반부로 갈수록 오싹했다. 기괴한 음악과 함께 벽면에 영상으로 등장한 검은고양이는 공연 내내 출몰을 반복했다. 배우는 객석 통로를 뛰어다니며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쫓았다. 포의 '심술궂은 어린 악마' '모렐라'도 20분씩 낭독공연이 있었지만 역시 가장 끌렸던 건 '검은고양이'였다. 프란츠 카프카, 생텍쥐페리, 현진건으로 이어지는 '산울림 고전극장 시리즈'는 오는 3월 10일까지 계속된다.


올해 연극계는 '고전 바람'이 세게 불어닥칠 전망이다. '소문난' 연출가들이 올해 신작으로 줄줄이 '고전'을 내놓는다. 셰익스피어, 체호프 고전을 들고 한국을 찾는 해외 유명 극단도 제법 된다. 신진 연출가들은 한국 고전에 빠져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국판 '라오지앙후 최막심'을 기대해 볼만하다. 명동예술극장의 '고전을 희곡화하는 프로젝트' 첫 작품. 앤서니 퀸 주연의 영화로 더 친숙한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연출가 양정웅·극작가 배삼식 황금커플이 현재 마무리 작업 중이다. 자유인 조르바는 1940년대 연해주 지역 조선인 촌락의 떠돌이로 새롭게 태어난다. 라오지앙후는 중국말로 떠돌이라는 뜻이다. 5월 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명동 명동예술극장.

비슷한 시기, 연출가 고선웅은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부활'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5월 19일∼6월 2일) 무대에 올린다. 양정웅이 고전의 한국적 재해석에 능한 연출가라면, 고선웅은 고전의 파격적 재구성을 즐긴다.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파헤치는 데 솜씨가 남다른 한태숙은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를 오는 4월 27일부터 5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올린다. 고선웅의 '부활', 한태숙의 '안티고네'는 예술의전당 개관 25주년 기념작으로 각각 경기도립극단, 국립극단이 제작을 맡는다.

일본 세타가야 퍼블릭 씨어터 예술감독 노무라 만사이가 셰익스피어와 일본 전통극을 접목시켜 각색한 '맥베스'(3월 15∼17일)는 명동예술극장에서 해외초청작으로 무대에 오른다. 주연 맥베스는 일본영화 '음양사' '란' 등에 출연하기도 했던 연출자 노무라 만사이가 직접 맡는다. 러시아 연출가 레프 도진이 이끄는 말리극장의 체호프 작품 '세 자매'(4월 10∼12일·LG아트센터), 영국 연출가 데클란 도넬란과 러시아 체호프 페스티벌극단의 셰익스피어 작품 '템페스트'(10월 1∼3일·LG아트센터)도 기대작. 이번이 네번째 방한인 말리극장은 올 때마다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던 전력이 있다.
체호프 페스티벌극단은 6년 만이다.

한국 고전도 연극의 품에 안긴다.
지난해 '메디아 온 미디어'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연극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던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연출가 김현탁은 김영수의 희곡 '혈맥'(5월 21일∼6월 2일·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으로 실험적인 무대를 꾸민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