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원교수의 뮤지컬,영화에 빠지다] 메리 포핀스,마법의 세계가 눈앞에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1.05 15:54

수정 2009.11.05 15:54



자그마치 34개의 알파벳으로 이뤄진 말이 있다. 영어사전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야 만날 수 없는 희귀한 표현이다. 우리말로 옮겨도 한 번에 다 읽기 힘든 길이인 ‘수퍼칼리프래질리스틱액스피알리도우셔스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인데, 다름아닌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에 나오는 마법의 말이다. 습관적으로 되뇌면 인생이 행복해진다는데 뮤지컬을 보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입으로 반복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는 이색체험을 하게 된다. 물론 음악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떠올라서다. 좋은 문화 콘텐츠는 정말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원작은 소설이었다. 호주 태생의 여류작가 파멜라 L 트레버스 여사가 1934년부터 1988년까지 8차례에 걸쳐 발표한 아동용 소설 시리즈가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런던의 체리나무거리 17번가의 완고한 은행가 뱅크스씨 일가족 앞에 나타난 비범한 유모의 이야기인데 온갖 상상을 초월하는 마법들과 아이들의 신기한 체험이 재밋거리다. 아동용 소설 속의 흥미로운 마법 세계라는 소재로 보자면 조앤 롤링작 ‘해리 포터’ 시리즈의 원조격이라 부를 만하다. 그 스스로도 다양한 장르로 변용되는 원 소스 멀티 유스의 전형적 사례이기도 했지만 훗날 등장하는 수많은 마법사 유모 이야기들의 모태라 불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원형 콘텐츠라는 데 의미가 있다.

‘메리 포핀스’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1964년의 일이다. 하늘을 날거나 지붕 위에서 춤을 추고 심지어 만화 속으로 들어가 애니매이션 캐릭터들과 경주를 벌이는 등 스크린용 영상은 온갖 특수효과가 집약된 디즈니의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백설공주’ ‘피노키오’ 등 애니매이션 영화들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영화인들로부터 ‘만화영화나 만드는 회사’ 쯤으로 치부됐던 탓에 본격적인 실사영화를 통해 그들의 역량을 보여주기 위한 적극적인 의사의 발로였다. 600만달러의 예산이 소요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작비의 대작이었는데 흥행에 대한 예상이 적중하면서 이듬해까지 2850만달러의 순익을 달성하는 대박을 기록했다. 오늘날까지도 영화는 많은 지지자들과 뮤지컬 마니아들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인기 콘텐츠로 남아 있다.

특히 영화 ‘메리 포핀스’는 주인공 줄리 앤드루스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정확한 발음과 시원스런 가창력, 야무진 표정과 연기로 그녀는 소설 속의 추상적이고 신비로웠던 이미지를 영상 속에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사실 트레버스 여사는 디즈니의 영화 버전이 사회나 시대풍자의 미학을 담은 자신의 원작 소설보다 너무 희화됐다며 불만이 많았는데 그러나 주인공인 줄리 앤드루스만큼은 완벽했다고 칭찬했다는 말도 있다. 원래 줄리 앤드루스는 같은 해 제작된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무대 버전에서 오리지널 캐스트였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드리 햅번에게 자리를 뺏겼던 설움을 겪어야 했다. 영화사 입장에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줄리 앤드루스보다 오드리 햅번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줄리 앤드루스는 다른 뮤지컬 영화 ‘매리 포핀스’에서의 명연기로 멋지게 복수를 시도하게 됐는데, 결국 그해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오드리 햅번을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는 파란을 연출했다. 엇갈린 운명 탓인지 오드리 햅번과 줄리 앤드루스는 그 후에도 사적으로도 별로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는 후문이다.

무비컬도 등장했다. 1950∼1960년대 뮤지컬 영화들이 주로 무대를 영상화했던 데 반해 이 작품은 뮤지컬 영화가 먼저 제작되고 훗날 무대용 뮤지컬이 선보인 별난 경우이다. 무대용 뮤지컬은 영화가 만들어진 지 자그마치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2004년 12월 초연됐다. 곰곰이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영화의 특수효과가 무대에서 라이브로 선보이기에 결코 만만찮은 수준이었던 데다가 영화에 불만이 많았던 트레버스 여사가 공연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의 대표적인 뮤지컬 프로듀서인 카메론 매킨토시가 수년간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 결국 판권을 얻어냈고 영화를 만들었던 디즈니와 함께 무대 버전을 제작하게 됐다. 물론 뮤지컬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가족 뮤지컬의 신화를 기록하며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대박 흥행을 기록하는 신화를 이뤄냈다.

영화가 갖가지 특수효과로 시선을 모은 경우였다면 무비컬에서는 볼거리 많은 무대장치들이 큰 몫을 했다. 마치 여자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집처럼 단면이 드러난 거대한 2층집 모양의 세트가 등장하는가 하면, 와이어를 몸에 달고 하늘로 솟은 메리 포핀스는 관객의 머리 위로 날아와 극장 천장에서 사라지는 입체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극장의 벽면을 걸어 올라간 길거리 예술가 버트가 거꾸로 매달려 탭댄스를 추는 장면에서는 감탄과 환호가 절로 터져나온다. 대형 흥행 뮤지컬에는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묘기나 마술에 가까운 볼거리도 있어야 한다는 요즘 무대의 흥행 공식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아쉽게도 ‘메리 포핀스’의 한국 공연 소식은 아직 없다. 외형적인 규모도 그렇거니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몇 년씩 장기공연을 할 수 있는 대형 공연장이 있어야 하건만 단 몇 달 대관도 어려운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연간 200여편의 뮤지컬들이 막을 올리고 있다지만 정작 제대로 만들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에 우리 뮤지컬 산업은 아직 영세한 ‘구멍가게’ 수준이다. 글로벌 마켓에 들이밀 공연 콘텐츠의 시작은 인프라의 구축에서부터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한국판 ‘메리 포핀스’의 등장이 마냥 꿈처럼만 느껴지는 이유다.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사진설명=영화에서 메리 포핀스 역을 맡은 줄리 앤드루스(왼쪽),뮤지컬에서 메리 포핀스 역을 맡은 애슐리 브라운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