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문화산업을 이끄는 사람들] 박민호 충무아트홀 사장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5.05 18:19

수정 2010.05.05 18:19

박민호 충무아트홀 사장(50)은 저음의 굵은 목소리다. 대학 시절 연극반에서 도가 틀 정도로 발성 연습을 한 덕분이다. 전공은 공학이었지만 꿈이 배우였던 그는 아침마다 연극반 문을 열고 들어가 나무 젓가락을 입에 물고 '가갸고교'를 내지르며 목을 틔웠다. 단지 무대가 좋아 배우를 꿈꿨다는 그. 하지만 마냥 배고픈 게 싫어 방향을 틀었고 졸업후 첫 직장이 예술의전당이다.

"전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받은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도 가지고 있어요. 80년대 후반 국내서 공연 기획을 제대로 경험해볼 만한 곳이 많지 않았잖아요. 예술의전당에서 안해 본 게 없어요. 건축부터 무대 미술, 무대 감독, 기획, 행정, 전산, 마케팅 등 극장 운영 전반에 필요한 일들을 다 했으니까요."

1987년 입사한 예술의전당 공채 1기. 1998년 국내선 처음이었던 공연장 인터넷 매표 시스템이나 2008년 만들어진 오페라하우스 1층 로비의 거대한 편의공간 비타민 스테이션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22년간 쌓은 예술의전당 기획 노하우로 지난 2009년 3월 이곳 충무아트홀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박 사장은 전형적인 '살림꾼 최고경영자(CEO)'.

올해가 개관 5주년인 충무아트홀은 서울시 중구청 산하 중구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곳이지만 중구 시민을 타깃으로 한 공연장은 아니다.
개관초 809석이던 객석이 지난 2008년 말 재개관과 함께 1231석으로 늘면서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젠 서울 전지역의 관객들이 즐기는 곳이 됐다.

그가 부임한 지난해 충무아트홀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만 공연장을 찾은 관객수가 24만명. 2008년 대비 33%나 늘었다. 대극장 평균가동률은 95%를 기록했다. 박 사장은 관객들의 발길을 잡기 위해 1층 로비에 커피숍과 레스토랑 등 각종 편의시설도 오픈했다. 주차난 문제도 적극적으로 풀었다. 인근 학교 운동장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차공간으로 활용했다.

무대에 오른 작품은 순항했다. '미녀는 괴로워' '삼총사' '웨딩 싱어' 등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뮤지컬 전문극장의 명성이 탄탄해졌다.

충무아트홀의 인기 비결을 묻자 박 사장은 "운명"이라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말인즉 "터가 좋아 인기를 누리는 것"이란다. "신당동 부근이 무속신앙이 강했던 곳이에요. 조선시대 규방가사를 다뤘던 가무단이 있었던 곳이었구요. 아무래도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타고 난 장소인거 같아요. 하하."

박 사장은 평소에도 충무아트홀의 성공비결이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위치한 점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뮤지컬 공연 제작자들이 공연 전 가장 먼저 문을 두드려보는 곳이 사실 충무아트홀이다. 전용극장으로 시설은 뛰어나면서도 대관료는 저렴한 데다 지리적으로 관객유치가 수월하다는 판단 등에 따른 것. 박 사장은 "뮤지컬 주관객 20∼30대 여성의 특수성도 한몫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연 관람 뒤 바로 인근 동대문 패션타운으로 이동할 수 있는 위치라는 점이 강점이라는 이야기다.

박 사장은 뮤지컬 전용 극장의 성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앞으로 공공극장의 역할을 더 높이고 싶다고 말한다. "5년 만에 서울을 대표하는 4대 공공극장으로 성장했다고 봅니다. 앞으로 공공성을 더 강화하고 싶어요. 민간 극장이 할 수 없는 걸 저희 극장이 적극 해야죠."

지난 3월 5주년 개관 기념으로 선보인 전통 연희극 '산대희'나 지난달 이탈리아 연출가 루이지 피치가 세계 초연으로 올린 바로크 오페라 '유디티의 승리' 등은 그가 공공성을 염두에 두고 고른 작품이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피치로부터 1231석 충무아트홀 극장 형태가 바로크오페라 공연에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땐 정말 흐뭇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거장의 세계 초연이라는 타이틀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유디트의 승리'는 흥행은 저조했고 공연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보기 드물게 밋밋한 무대였다는 혹평과 바로크 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줬다는 호평으로 확 갈렸다. 박 사장은 "대형 오페라에 익숙한 국내 관객에겐 당연한 일"이라며 "정적인 바로크 오페라가 생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오페라 한편 올리는 데 대략 15억∼20억원이 들어요. 최근 확 비용이 늘었죠. 바로크 오페라는 3억∼7억원 정도 듭니다. 일본에선 이 바로크 오페라가 굉장히 유행이에요.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서도 바로크 오페라를 올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바로크 오페라는 처음엔 낯설어서 잘 안들리지만 자꾸 들으면 그 세계의 매력에 빠집니다. 충무아트홀에선 일년에 한편 정도는 바로크 오페라를 올릴 계획이에요. 전통 예술 공연도 꾸준히 선보일 거구요."

그는 요즘 틈날 때마도 '과욋일'도 제법 한다.
한국예총이 추진하는 목동 예술인회관 건립과 관련해선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또 덕수궁 옆에 들어설 150석 규모의 판소리 전용홀은 그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안이다.
"판소리홀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더 인기를 끌 것"이라고 자신하는 박 사장은 의욕이 철철 넘쳐난다.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

■박민호 충무아트홀 사장 약력△서울 △성균관대 공과대(85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학과(92년) △예술의전당 공채 1기 입사(1987년) △예술의전당 홍보마케팅 팀장(2001년) △예술의전당 경영혁신팀 팀장(2006년) △예술의전당 고객지원팀 팀장(2007년) △예술의전당 수익사업팀 팀장(2009년) △충무아트홀 사장(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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