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뮤지컬 음악감독 변희석,연극 아마데우스를 연주하다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11.30 17:17

수정 2011.11.30 17:17

▲ 사진=김범석기자
"김문정보다 제가 못하는 게 뭐가 있어요.실력으로 따지면 제가 한수위라고요."

이 말을 심각한 표정으로 물론 한 건 아니다.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뮤지컬 음악감독 변희석(40). 검정색 뿔테 안경 너머로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흘렀다.

국내 뮤지컬 시장을 움직이는 음악감독은 손에 꼽힌다.선수층이 아직은 얇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인지도나 업계 섭외 순위를 볼때 두각을 드러내는 이는 '미스 사이공' '아가씨와 건달들' 등을 감독한 김문정씨가 꼽힌다. '피맛골연가','형제는 용감했다' 등창작 뮤지컬 작곡가로도 이름을 알린 장소영씨, '올슉업''미녀는 괴로워''마이페이 레이디' 등을 감독한 변희석씨도 많이 거론되는 뮤지컬 음악 감독이다.
절친인 세사람은 1971년 돼지띠 동갑내기다. "만나면 집안대소사까지 시시콜콜 이야기 하는 사이에요." 하지만 "주로 한국에서 뮤지컬 음악 감독으로 사는 에로사항을 토로하는 시간이 더 많다"게 변 감독의 말이다."이 업무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경쟁보다 서로 돕는 편입니다.그리고 다들 색깔이 다른 걸요."

중극장·실내악에 강했던 변 감독의 장기가 이번엔 연극 무대로 옮겨간다. 그는 내달 7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될 연극 '아마데우스'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뮤지컬 음악 감독이 연극 무대의 음악을 책임지는 건 파격에 속한다. "제의를 받았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연극은 음악을 라이브로 쓴다해도 그게 중심이 아니잖아요. 어차피 드라마 위주인데 음악 전문가를 왜 찾지? 그 생각이었어요."

연극과 뮤지컬이 음악을 쓰는 문법은 다르다. 대사 위주의 연극무대에서 음악은 극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부수적인 장치다.뮤지컬은 음악이 절대적이다.대사도 음악안에서 정확히 박자를 맞춰야 한다."연극 배우들은 대사를 재량껏 소화합니다.가장 중요한 대목에 배우들이 대사가 있어요. 뮤지컬은 그 자리에 음악이 있습니다. 뮤지컬 배우는 모든 걸 짜여진 시간안에 움직여야해요.같은 템포가 유지될 수 있도록 수백번 연습합니다. 뮤지컬은 음악을 함부로 못써요. 음악엔 저마다 테마가 있고 의미가 있어요. 어떤 장면에 어떤 음악을 쓰느냐가 작품에 결정타가 됩니다."

이 깐깐한 음악감독이 고지식한 연극 무대의 음악을 맡은 건 이번 연극의 음악은 배경에 머무르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극 '아마데우스'는 영국 극작가 피터 쉐퍼 원작으로 1971년 영국서 초연된 작품이다. 이를 원작으로 1984년 제작된 영화는 천방지축 모차르트의 이미지를 전세계적으로 유포시켜 "왜곡이다,아니다" 등의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연극은 국내서 1980년 초연된 후 지금껏 네차례 무대에 올랐다.그간 작품은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았다.

이번 무대가 다른 건 천재의 비범함에 질투심을 느끼며 갈등과 고뇌로 점철된 삶을 산 살리에르의 인간미를 부각시키면서 여기에 생생한 음악을 덧입힌다는 점이다. 극 전반에 모차르트 클래식 선율이 도도히 흐른다. 그것도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 네악기의 라이브 음악이다."연극의 러닝타임이 인터미션을 빼고 2시간 25분입니다.여기서 음악이 2시간 정도 나올 겁니다.피아노 4중주를 고른 건 560석 명동예술극장 사이즈에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암전된 무대는 묵직한 첼로의 선율로 열린다. 어둠속 멜로디는 서정적인 피아노 건반으로 옮겨가고 다시 장엄한 4중주로 폭을 넓힌다. 살리에르를 맡은 관록의 배우 이호재는 요양원 휠체어에 앉아 32년전을 회상한다. 그의 분노와 증오의 독백엔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이 섞인다. 18세기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화려한 파티장이 무대를 채울 땐 모차르트 교향곡 25번이 경쾌하게 울린다."콘체르토,소나타,세레나데 등 모차르트 대표곡들을 4중주에 맞게 편곡했습니다. 1막에 28곡,2막에 25곡 총 53곡을 연주해요. 오페라 '돈조바니','피가로의 결혼','후궁의 탈출'은 대신 녹음된 음으로 나옵니다."

음악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모차르트 최후의 걸작 '레퀴엠'이다. 극 중간 부분적으로 음이 삽입되다 극 마지막엔 앙상블 배우 열명의 합창과 함께 장엄한 선율의 절정을 선사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작곡과 출신의 변 감독은 1997년 삼성영상사업단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오디션 피아노 반주를 맡으면서 뮤지컬계 발을 디뎠다. 2000년 '오페라의 유령' 보컬 코치를 맡았고 2004년 초연된 '메노포즈'가 그의 첫 음악감독 데뷔작이다. 음악감독은 배우들의 성악코치,오케스트라 지휘,악보 편곡 등 음악 관련 일체를 책임진다. "앞에는 배우,뒤에는 관객,아래엔 연주자가 있어요.이들의 에너지를 다 받는 위치에 있으니 책임감이 막중합니다." 그는 "음악을 놀이문화로 생각하는 잔재주꾼 음악가는 싫다.정확한 분석,거짓말 안하는 음악에 승부 걸고 싶다"며 비장한 표정도 지었다.


변 감독은 이번 연극의 모차르트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한 팁을 일러줬다."어른들의 마음으로 들으면 힘듭니다.
잘 안들릴거에요.모차르트 음악은 한없이 심플하고 깨끗해요.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편안히 들어보세요.그러면 천상의 소리가 귓가에 울릴 겁니다."

/jins@fnnews.com최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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