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판

명필름 심재명 대표, 소설가 조정래를 인터뷰하다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0.14 19:09

수정 2014.11.01 13:22

서울 정동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고 있는 조정래 작가(왼쪽)와 심재명 명필름 대표.
서울 정동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고 있는 조정래 작가(왼쪽)와 심재명 명필름 대표.

"직접 뵈니, 정말 건강해보이십니다."(심재명 명필름 대표)
"책(심 대표 에세이 '엄마 에필로그') 잘 봤습니다. 글 참 잘 쓰시던데요."(조정래 소설가)

두 사람의 만남은 이런 덕담으로 시작됐다.

시대와 역사를 서사로 삼아 독자들을 매료시켜온 소설가 조정래는 이번에도 자신의 신작 소설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놨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으로 한국 근현대사 비극을 예리하게 그려냈던 작가의 이번 신작은 중국을 무대로 비즈니스맨들의 애환과 각축전을 담은 '정글만리'(해냄출판사). 이미 서점가 베스트셀러 1·2·3위를 점령, 출간 3개월만에 70만부 판매 기록을 세우며 계속 전진 중이다.

"이같은 흥행을 예견하셨냐"는 심 대표의 질문에 작가는 잠시 뜸을 들인 뒤 "거의 예상했다"며 살며시 웃었다.
"베스트셀러에 비결같은 게 뭐 있겠냐마는, 한국 독자들이 모두 목말라했던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작가는 두 눈 부릅뜨고 반발 먼저 가야하는데, 그것과 상관있는 게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곁들였다.

20년 전 이 소설을 구상한 뒤로 집필 전까지 중국을 다녀간 횟수가 16회, 그간 작성한 취재수첩만 120여권. 중국 전문서적 80여권을 섭렵했고, 그중 20권엔 포스트잇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달렸다. 이 방대한 취재, 노(老)작가의 살아있는 열정을 밑천삼아 '정글만리' 여정은 그렇게 숨막히게 이어졌던 것이다. 그는 휴대폰도 없고, 컴퓨터도 쓰지 않는다. 여전히 원고지에 한자 한자 눌러써 글을 완성한다. "글이 안나올수록 책상에 붙어 있는다. 될 때까지 한다. 그때 오는 충일감, 성취감, 희열은 열반과 같다"고도 했다.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개론' 등을 만든 심 대표는 한해 1억명 관객시대를 연 한국영화계 대표적인 제작자다. 시류를 쫓기보다 소신과 뚝심으로 시장을 정면 돌파해온 그는 다독(多讀)으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영화계, 문학계 조우로도 볼 수 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조정래 작가(70)와 심재명 대표(50)가 만났다.

조정래 작가(왼쪽)와 심재명 대표
조정래 작가(왼쪽)와 심재명 대표

▲심재명(이하 심)=1990년대 초부터 이 소설을 구상하셨는데요, 2013년 책을 낸 이유가 현재성과 시점을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취재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책이 나온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조정래(이하 조)=1990년 초반, 중국에 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러시아는 망했지만, 중국은 달랐습니다. 수천년 역사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백성을 굶주리게 하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 20세기 이데올로기 실험에서 적중한 겁니다. 인간의 삶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좀 다르지만, 그 기본적인 바탕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거든요. 2010년 중국이 G2가 되는 것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죠. 중국이 강대해지는 건 전지구적인 문제이자 한반도 운명과 직결된 겁니다. 그때(2010년)부터 본격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심=시대를 읽고 작가적 고민을 하는 것이 이 책의 베스트셀러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30대, 40대, 50대 남성들이 좋아하는 것은 중국의 경제적 상황을 이야기했던 게 주효했던 거 같습니다.

▲조= 우리나라는 중국과 가장 가깝게 있지만, 실은 중국을 전혀 모릅니다. 아는 건 딱 세 가지에요. 짝퉁천국, 게으르다, 더럽다. 이걸로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편견이고 착각입니다. 앞으로 의존도가 점점 커져가는 상황에서 중국을 몰라선 안됩니다. 일반인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 관심에 대한 응답이 '정글만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책을 보면 중국 사람들이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게 가장 큰 매력일 수도 있는데요. 우리 회사도 지금껏 영화 33편을 만들면서 3년 전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중국을 진출해봤습니다. 중국이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이라고 해서 중국과 공동제작 형식으로 개봉까지 했는데 그 과정 모두가 예측불허의 연속이었어요. 중국 영화시장이 가능성 있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제 뚫고 가기엔 너무 힘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때 상황이 떠올려지기도 했습니다.

▲조=기본적으로 문화수용능력이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는 최첨단 문화 속에서 미국과 대등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반면, 중국은 60·70년대 정서여서 그 시차가 엄청크다는 걸 감안해야 할 겁니다. 지금 중국은 그동안 그렇게 가르쳤는데도 5000만∼6000만명이 문맹입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무한대입니다. 한국 드라마 좋아하는 사람들 엄청난 수준이어서 영화가 그것을 뚫고 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심=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상사원 전대광 뿐아니라 조카 송재형 등 젊은 사람들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농민공(농촌 출신의 도시노동자)들의 사연은 가슴 아팠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나 기업 경제 활동, 젊은 세대, 그리고 하층민 이야기까지 아우르는 것이 소설을 힘있게 만들어간 요인이 아닐까 싶던데요.

▲조=처음 구상했던 내용의 3분의 1정도를 덜어내면서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농민공의 문제는 더 쓰고 싶었지만 이야기가 길어질까봐 많이 생략했습니다. 농민공 문제 굉장히 심각합니다. 농민공 문제가 곧 중국의 민주화, 인권화와 연결됩니다. 농민공이 천대받고 있는 문제만 보여줬고, 중국 사설 감옥까지 이야기했는데 그 이상 못 쓴 게 아쉬워요. 중국의 현실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의 문화와 깊이, 그들의 역사속 갈등, 폭군들이 오늘 공산당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암시하는 부분 등을 일부러 넣었습니다. 그래서 소설이 복잡한 구도도 보입니다. 단순히 읽어 끝나선 안될 문제가 들어있는 거죠.

▲심=송재형과 연인 리옌링의 사랑으로 끝을 맺으신 건 선생님의 바람 같은 게 들어간 거 아닌가요.

▲조=한국과 중국,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같은 겁니다. 하경만 중소기업 사장도 사실 중요한 인물이에요. 이분은 제가 알고 있는 분의 실제 모습을 80% 정도 따라 한 겁니다. '덕을 만번 베풀어라'는 뜻의 본명 '하덕만'에서 그분의 동의를 얻어 가운데 글자만 바꿨습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하경만처럼만 하면 100% 성공한다는 걸 보여준 겁니다. 경제인들이 그걸 잘 새겼으면 좋겠어요.

▲심= 책 낼즈음 이 정도의 반향, 이렇게 베스트셀러가 될 줄 예상하셨나요.

▲조=사실은 거의 예상했습니다(웃음). 우리 5000년 역사가 정말 피눈물나는 역사잖아요. 5000년 크고 작은 외침을 천번을 받았어요. 정확히는 931번입니다. 제일 큰 게 병자호란, 마지막 한일합방 아닙니까. 이런 땅에서 이 역사에 대해 말하지 않고, 소설로 기록하지 않고서야 이 땅에 소설이 무슨 의미있나 하는 생각으로 '태백산맥' '아리랑'을 썼습니다. 그러니 20년동안 머리속 다 빠질 정도였어요. 우리 사회의 문제, 비인간적인 모순과 갈등 이걸 말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해왔습니다. 영화, 텔레비전, 스마트폰, 인터넷 같이 소설의 적들이 정말 많은 시대, 그럴수록 소설은 더 무서운 열정을 가지고, 더 집착을 가지고 몰두하지 않으면 그 적들을 이겨낼 방법이 없어요. 책을 들 힘조차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 그들의 지친 영혼을 감동하게 하려면 영화보다, 드라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장면 이동을 하고 스토리텔링이 돼야 합니다.

▲심='정글만리'에 잠시 언급됐지만, 한국 교육열에 대한 선생님의 문제의식이 깊으신 듯합니다. 차기작으로 파탄난 교육 문제를 소재로 준비 중이시지요.

▲조=다음 소설은 10대가 주인공입니다. 해가 바뀌면 10대들을 취재할 겁니다. 우리 사회가 가진 수없이 많은 문제 중 가장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가 교육이에요. 지금대로 가면 절대 안됩니다. 나한테 왜 소설을 쓰냐고 물으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고, 가장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것이고, 한 번뿐인 일생에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 자율성과 개성이 말살된 게 한국사회입니다. 중1짜리 손자가 "할아버지 그거 꼭 쓰세요"라고 해요. 어머니, 학생이 함께 읽어야 할 책이 될 겁니다.

▲심=선생님을 보면서 끊임없이 활발한 소통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10년, 20년만에 엄청난 천재적 작품을 내는 사람보다 성실하고 꾸준히 고른 작품을 창작해내는 사람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장인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기한계에 빠지거나 하지는 않으신지요.

▲조=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재미가 있지요. 한계라기 보다 노력이 부족하다 생각할 때는 있습니다. 영감은 갑자기 오는 게 아니잖아요. 영감은 끝없이 수없이 축적된 사고의 순간적 발화입니다. 지속적 사고를 하지 않은 자는 영감이 안올 수도 있지요. 신경을 곤두세워서 치열하게 세상만사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소설의 재료가 됩니다. 그걸 어떻게 엮어서 내느냐, 그건 구성의 능력이지요. 집사람(김초혜 시인)은 날 보면 살아갈수록 모를 남자다 그래요. 함께 문학하면서 둘 다 네줄 타고 가는데 자기는 떨어지기도 하는데 나는 한번도 안떨어지고 간다고요. 전 그런 사람입니다. 모든걸 문학에 포커스 맞춰서 치열하게 살아가면, 다 보입니다.

▲심='살아갈수록 모를 사람'이라는 표현은 참 근사해 보입니다.

▲조=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 해가면서 달려가는 노정이 인생입니다. 아니면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놓아가면서 만들어가는 징검다리 같은 거에요. 얼마나 외롭고 힘들어요. 그 시간을 함부로 술로 탕진하고 그러면 안됩니다. 내가 술을 안먹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 '태백산맥' 쓸 때부터 깨끗이 끊었어요. 문학적 고민 때문에 술 마신다고 하는데 술 마셔서 해결될 거면 그건 고민도 아니죠. 문학적 고민은 술을 마셔도 그대로 남습니다.

▲심=영화를 볼 시간은 없으시죠.

▲조=지난해 집사람이 '건축학개론'을 보고 와서 몇 번씩 이야기했어요. 정말 깨끗하고 수채화같은 영화였다고 여러번 말을 했어요. '공동경비구역 JSA'도 봤습니다. 송강호 그 배우 얼굴 표정 하나도 안 바꾸고 정말 실감났어요. '정글만리' 전대광에도 송강호씨가 어울릴 거 같은데요.

▲심=규모가 크긴 하겠지만 관심을 가질 제작사가 있을 거 같은데요. 요즘 영화들 치고는 40대 한창인 밥벌이하는 남자들 이야기니까 누가 흥미를 갖지 않을까요. 그런데 영화로 하면 엄청난 대작이고, 만드는 게 만만친 않을 거 같긴 합니다.

▲조=중국에서 전부 찍어야 하니 중국 당국서 허락할지 그것도 변수가 되긴 할 겁니다.

▲심=소설을 위해 방대한 취재와 공부를 하셨지요. 전문책들을 토대로 입체화하고 가공해내고 핵심을 체크하고, 이야기 구조로 만들어내고 이 모든 과정이 굉장히 어려울 거 같은데요.

▲조=안어려워요. 헤드라이트 키고 있으면 됩니다. 눈을 부릅뜨고 있으면 그 영혼 속에 걸려들지 않는게 없습니다. 읽어가면서 머릿속에서 얼개가 짜져요. 생략, 강조. 세번, 네번, 다섯번 하는데 부릅뜬 눈에 다섯번 복습하면 다 완성됩니다. 술 한 잔도 안먹고 하는 일인데요.

▲심=그런 치열한 정신이 존경스럽습니다. 대신 삶에 있어서 즐거움이 창작을 통한 열반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사사로운 즐거움 어디서 찾으셨나요.

▲조=그런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바둑 한판 두면 2시간 그냥 갑니다. 시간이 아까워요. 인생은요, 시간의 배를 타고 세월의 강을 따라 노를 젓는 단 한 번의 여행이에요. 두 번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대신 집사람과 여행하는 건 좋아합니다. 제주도도 많이 갔고, 파리는 7~8차례 갔다왔어요.

▲심=책이 중국어로도 번역될 텐데요. 어떤 반응이 예상되시나요.

▲조=중국사람들 이 책을 보면 자기들도 모르고 있던 걸 발견할 겁니다. 중국 작가들은 지금 현실의 막대한 문제를 못 건드리고 있어요. 모옌, 위화의 책을 봐도 작가의 소임을 다 못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천민자본주의가 응축돼있는 땅이라 소재가 무궁무진한데 그걸 전면적으로 못쓰는 거죠.

▲심=영화계에선 저만해도 중견 이상의 위치에 와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차기작을 임권택 감독과 하는 이유가 영화세대는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다른 세대가 만나 뭔가 함께 만들어내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대의 어른으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조=괴테가 그랬어요. 작가는 나이 80에 소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요. 몸만 늙고 정신은 안늙어야한다는 뜻이지요. 임권택 감독 102번째 작품하는 건 그가 예술청년이라는 걸 말해줍니다. 세대가 다른 거 그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땅덩어리 작고, 강대국 사이에 낀 이 운명적인 상황은 안 변합니다. 그러한 지정학적 상황 속에서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를 그 어떤 나라보다 치열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 우리들이에요. 인류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20대들에겐 세계에 현혹되지 말고 철저히 우리의 중심을 잡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3가지는 불변입니다.
인종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이건 절대 안없어집니다. 그거 잊어버리면 우리 앞길 막막합니다.
그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사진=박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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