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칼럼] 접대 풍속의 역사/김성호 주필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6.15 17:12

수정 2010.06.15 17:12

접대(接待)는 손님을 맞아 시중을 드는 일을 말한다.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하는 일은 예절의 으뜸이다. 그래서 누구나 정성이 깃든 접대로 손님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접대에는 금품접대 물품접대 술접대가 있고 드물게 성접대도 있다. 금품접대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란 말 그대로 만사형통의 수단이다. 돈 봉투로 접대할 때는 원화 봉투도 좋고 달러 봉투는 더 좋다.
맞대면해 주기가 뭣하면 슬그머니 의자에 놓고 나올 수도 있다. 비행기 특히 전용기를 이용하면 100만달러 정도는 쉽게 나를 수 있다.

금품접대가 정치바람을 타면 봉투 정도의 규모론 안 된다. 그럴 때는 007가방, 쇼핑백, 사과박스에 담는다. 돈 짐을 모아 트럭에 실어 전달하는 것을 차떼기라고 부른다. 차떼기는 주로 재벌이 주고 정당이 받으며 용처는 선거자금이다. 돈을 접대할 때는 부피가 작을수록 편하다. 수표가 최고지만 나중에 번호가 추적되는 게 단점이다. 그래서 고액권을 선호한다. 정부의 고액권 발행이 5만원권에서 스톱하고 10만원권 발행은 기약을 못하는 게 바로 이 돈 접대를 막기 위해서다.

물품접대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한국에선 고급 브랜드의 골프채가 유행이다. 한 두 개로 성이 안찰 때는 한 세트를 꾸려 보낼 수도 있다. 그 언젠가 유행한 화문석이나 금송아지 금거북은 좀 격이 떨어지고 최근 어느 군수님이 받았다는 아파트 한 채는 너무 우직스럽다.

정말 멋진 물품접대는 옷이다. 옷은 날개다. 사람을 춤추게 하는 것은 칭찬만이 아니고 멋진 날개도 춤추게 한다. 여자 옷이면 더욱 좋다. 원피스 투피스 블라우스 호피코트 등등. 유명 디자이너의 솜씨로 만든 서울 강남의 부티크 옷이라면 최상급 접대에 들어간다. 199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옷 접대는 로비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옷 로비라 부른다. 이 사건에는 청와대 비서실까지 연루된 적이 있었다.

한국의 술접대와 성접대는 주로 룸살롱이라는 술집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는 고급 양주와 미희가 등장한다. 술로는 ‘루이 13세’가 인기를 끈 적이 있고 미희로는 TV 탤런트도 있었다. 한때 접대 강요에 지친 미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룸살롱에서 이루어지는 성접대는 ‘2차 나간다’라는 은어로 통한다. 2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호색하는것만큼 호덕(好德)도 했다면 성현의 꾸지람은 면했을지도 모른다.

권력기관에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서슬이 시퍼런 젊은 검사 같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은밀한 접대를 베푸는 사람을 스폰서(sponsor)라고 부른다. 원래 스폰서라는 말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다. 보증인 후원자 광고주가 되고 종교 용어론 대부(代父)가 된다. 결국 ‘접대자=스폰서’는 의미 격하의 냄새가 난다.

접대가 예의를 갖추기 위한 대접에 머물 때는 별 문제가 없다. 존경 친근 애정의 뜻을 담은 선사(膳賜)일 때도 그렇다. 그러나 회뢰(賄賂-뇌물을 주고 받음)의 성격과 비슷해질 때는 문제가 커진다. 공직사회에서 특히 그렇다.

손님도 아니면서 뇌물성 접대를 주고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혼쭐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가성이 입증돼야만 회뢰죄가 성립하는 사법적 관행이 있고 대가성 입증은 지난한 작업이니 자연히 혼쭐나는 일은 드물다. 옷 로비 사건 때도 진상은 제대로 밝혀진게 없고 ‘실패한 로비’로 낙착됐을 뿐이다. 이번 ‘스폰서 검사’ 사건도 접대자의 주장 가운데 상당 부분이 부정됐다. 그래도 뒤탈은 크다. 신성불가침으로 알려진 검찰의 기소독점권이 일부 제약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가운데서도 뇌물성 접대 의혹이 철저하게 은폐되지 않고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접대를 주고받은 사람들끼리는 “당신과 나만 알자”고 밀약하지만 어느덧 하늘이 알고 땅도 알게 되기 때문이란다.
아주 수준 높은 설명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겐 스폰서들이 후일을 위해 꼼꼼하게 기록했기 때문이라는 게 더 적절한 설명일 것 같다.
그러니 이 땅의 크고 작은 스폰서들이여,오늘도 접대 내역을 꼼꼼하게 기록하기 바란다. 그렇게 되면 접대문화가 본래자리를 찾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이 나라의 풍속사를 연구하는 후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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