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아침] 구제역 매몰지 정보 덮지 말라/송동근 사회부 차장

송동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3.04 19:03

수정 2014.11.07 01:35

경칩이 바로 코앞이지만 아직도 소맷귀 바람은 차갑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제 곧 봄은 올 것이고 겨우내 얼어 붙었던 땅에는 새싹이, 나무에는 새순들이 돋아나 봄기운이 완연할 것이다.

하지만 올 봄은 예년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을 듯하다. 해빙기가 되면서 구제역으로 인한 가축 매몰지 오염문제가 더욱 불거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구제역 발생으로 도내에서는 소 6만7833두, 돼지 166만2299두 등 총 173만3005두가 살처분됐다. 이렇게 땅을 파고 묻은 곳이 자그마치 2245곳에 달한다.


이에 경기도는 지난 2일 도내 전체 구제역 매몰지의 위치와 매몰·점검 현황, 관리 단계별 사진, 관리책임자 등 매몰지 관련 정보를 이달 말 모두 공개하겠다고 했다. 어느 곳에 누가, 언제, 얼마나 묻었고, 관리자는 누구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모두 다 알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정보를 공개하겠다던 도가 지난 3일 갑작스러운 농정국장 주관 간담회를 열고 매몰지의 지번(地番)은 밝히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 같은 배경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농림수산식품부가 도에 읍·면 단위까지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지자체는 매몰지 관련 정보를 사생활 보호와 재산권 침해,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을 들어 지번 공개를 꺼리고 있다.

이 같은 관의 태도는 매몰지 관련 오염문제를 적당히 덮고 가겠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국민 모두가 식수원 오염 등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경과 민감한 공익사항을 개인 사생활 보호와 재산권 침해 때문에 밝히지 않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구제역으로 문제가 된 가축 매몰지 관련 정보를 정확하고 정직하게 국민에게 알려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문제를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성급하게 처리한 우리의 행정이 더 큰 문제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도 지난해 4월 규슈 남쪽 미야자키현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소, 돼지 등 약 29만마리를 살처분했다. 하지만 그 대응 방법과 결과는 우리와 많이 달랐다. 아무리 급해도 지역 주민의 동의 없이는 좀처럼 땅에 묻지 않고 매뉴얼대로 신중하게 처리했다는 점이다. 일본도 살처분 가축 매몰 용지 때문에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급하다고 해서 아무 데나 가리지 않고 가축을 파묻지는 않았다. 지역주민이 마시는 식수의 수원(水源)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용지가 있어도 지역 주민이 수질 오염이나 악취 등의 환경 문제를 우려해 동의하지 않으면 억지로 가축을 파묻지 않았다. 지방 정부가 시간이 걸려서라도 주민의 동의를 얻어가며 매몰 작업을 진행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한 덕에 살처분으로 인한 지하수 오염 등의 사후 피해가 아직 한 건도 보고되지 않고 있다.

구제역으로 인한 가축 매몰은 무엇보다 먹는 물 오염이 가장 큰 문제다. 매몰지 반경 300m 이내의 지하수를 사용하는 전국의 학교급식소, 어린이집, 일반음식점은 총 436곳이나 된다. 이중 경기지역이 학교급식소 13곳, 일반음식점 335곳 등 348곳으로 8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천시의 경우는 학교 12곳 및 일반음식점 178곳 등 총 190곳이 가축 매몰지 반경 300m 이내의 지하수를 마시고 있다. 양주시도 일반음식점이 68곳이나 되고 포천시는 어린이집 1곳을 비롯해 40곳의 일반음식점에서 지하수를 마시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맞물려 개학, 봄나들이철이 다가옴에 따라 매몰지 반경 300m 이내의 지하수를 사용하는 학교급식소와 일반음식점에 대한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지난 2일 김문수 경기지사가 가축 매몰지 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공무원 책임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이달 말에 매몰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기 바란다.
적어도 국가나 도의 행정은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멀리 내다보고 신중해야 한다. 과오를 범했을 때는 정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허물을 덮기 위한 자기 합리화나 변명은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어서 국민은 더욱 용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dkso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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