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신정아씨의 시끄럽고 가벼운 처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3.24 16:48

수정 2014.11.07 00:08

신정아씨의 자전 에세이 ‘4001’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고 한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실명 거론한 것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신씨는 학력 위조와 공금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이다. 정권 실세 유부남과의 밀애도 화제가 됐다. 수감 18개월 만인 지난 2009년 4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런 신씨가 독자들의 ‘엿보기 심리’를 자극하는 자서전에 자신을 ‘치근거린’ 유명 인사의 이름을 밝히고 그런 책이 인기를 끄는 것이 요즘 세태다.


신씨는 줄곧 여론의 뭇매를 탓하며 명예 실추의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4001’ 프롤로그에서도 그는 “한 번쯤은 신정아가 하는 이야기도 들어달라고 조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처럼 명예를 중시하는 신씨가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남성 편력을 공개하고 다른 이들의 명예를 더럽힌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진정 명예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면 일방적인 주장으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옳았다. 유부남과 밀애를 ‘사랑’으로 미화하는 신씨가 다른 이를 두고 “도덕관념 제로”라고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책을 낸 출판사와 신씨는 큰 돈을 벌게 됐다. ‘노이즈 마케팅’은 적중했다. 미국 등 해외에선 폭로성 자서전이 드문 일이 아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모니카 르윈스키는 1999년 ‘모니카 이야기(Monica’s Story)’라는 자서전을 냈다. ‘4001’ 출판을 계기로 국내에도 이런 종류의 선정적인 자서전이 줄을 이을 수도 있다.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은 신씨가 자숙은커녕 또 다른 논란을 자초한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벌써 작가 공지영은 자서전 대필 의혹을 제기했다. 자서전 대필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사전에 이를 밝히는 것이 예의다.
‘4001’에 이름이 오른 이들은 반박을 해도 우습고 가만 있어도 우스운 상황이 됐다. 이들의 명예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정작 신씨 본인도 명예를 되찾는 길이 멀어졌다.
이제 신정아라는 이름에서 과거의 일류 큐레이터를 연상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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