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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병 속에 담긴 편지’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11.15 16:56

수정 2012.11.15 16:56

해외 토픽 가운데는 경탄을 자아내는 사연이 많다. 15일 보도된 '76년간 바다를 떠돈 병 속 쪽지' 얘기도 그렇다. 긴 사연을 줄여 보면 이렇다. 뉴질랜드 북섬 해변에서 바다낚시를 즐기던 제프 플러드라는 사람이 지난 10일 바다를 떠도는 병을 발견했다. 조심스레 코르크 마개를 따자 종이 쪽지가 나왔다.

쪽지에는 세계적인 유람선 회사 'P&O'의 직인과 함께 배 그림이 있었고 그 밑에는 손으로 쓴 1936년 3월 17일이라는 날짜가 보였다.
그리고 "바다에서 이 병을 발견하는 분은 발견한 장소와 날짜를 아래 주소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실로 이 병은 발견될 때까지 76년간 바다를 떠돈 셈이다.

병 속에 써넣은 쪽지의 내용에 따라 감동의 무게는 달라진다. 이번 것은 지극히 사무적이다. 병 속에 담긴 애틋한 사연을 읽고 낭만적인 상상력을 펼치려면 루이스 만도키 감독의 1999년 미국영화 '병 속에 담긴 편지'를 봐야 한다.

영화를 잠깐 소개하자면, 시카고 트리뷴 여기자 테레사(로빈 라이트 펜)는 휴가지 해변에서 백사장에 밀려온 병을 발견한다. 병에서 나온 편지에는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쪽지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궁금히 여긴 여기자는 추적 끝에 마침내 해변의 은둔자 개럿 블레이크(케빈 코스트너)를 찾아낸다. 과거의 추억에 얽매여 살던 두 사람이 새로운 사랑을 찾긴 하지만….

한국의 올가을 단풍은 유난히 곱지만 낭만은 없다. 왜? 정치판이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뽑는 민주정치의 요식행위가 축제가 아니라 냉소 속에 진행되고 있다. 유력 세 후보는 모두 먹고사는 걸 편하게 해주겠다는 말만 한다. 사람은 빵 만으로 사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가슴을 흔드는 얘기가 없다. 특히 야권 두 후보의 '단일화 쇼'는 밀고 당기기가 너무 심하다. 현기증이 난다. 시 한 편을 넣어 바다에 띄우겠다. 대서양도 아니고 태평양도 아니고 '민심의 바다' 위에 띄운다.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꽃길을 지나갑니다/바큇살에 걸린 꽃향기들이 길 위에 떨어져 반짝입니다.
// 나 그들을 가만히 불러 세웠습니다/내가 아는 하늘의 길 하나/그들에게 일러주고 싶었습니다.//여보시오 여보시오/불러놓고 그들의 눈빛조차/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을/그들이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불러서 세워놓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곽재구의 시 '두 사람')

ksh910@fnnews.com 김성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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