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칼럼] ‘냄비 속 개구리’ 현대차

김신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8.27 04:39

수정 2014.11.03 18:02

[이재훈 칼럼] ‘냄비 속 개구리’ 현대차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과연 선수는 선수다. 거침이 없다. 회사 측과의 임금·단체 협상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부분 파업에 주말 특근 거부까지 진행했다. 이 때문에 올 들어 현대차의 파업·특근 거부로 인한 생산차질액이 사상 최대인 2조원을 벌써 넘어섰다. 노조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면파업을 향해 일사천리로 달려가고 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익히 봐왔던 풍경이다.


노조는 회사 측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180여개의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귀족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라고 비판한다. 현대차의 해외 생산 비중이 61.5%나 되는데 국내 노조가 순이익의 30%를 달라고 한다. 신규 채용 인원의 사전 협의, 해외공장 신설 시 노사공동위원회 심의·의결 같은 것은 노조가 아예 경영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대학 못 들어간 자녀에게 1000만원 지원, 정년 61세 연장, 1년 이상 근속한 조합원의 전 자녀학자금 지원, 30년 이상 근속자에 차량 35% 인하 등 온갖 요구들이 줄을 잇는다.

우리나라 제조업 최고 수준인 평균 연봉 9400만원의 현대차가 너무 '억지' 부리는 것 아닌가. 하지만 노조는 그런 억지를 관철해내는 힘이 있다. 파업과 장기 대치로 끝까지 버티면 결국 속이 탄 회사 측이 원하는 것 들어주고 타협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땜질식 봉합에 급급해온 회사 측의 행태 때문에 노조는 '갑(甲)' 회사는 '을(乙)'이 된 지 오래다.

4년 만에 파업을 했던 지난해의 경우 노조는 1인당 2260만원을 더 받아냈다. 현대차가 무파업 타결을 이뤘다고 자랑했던 2009~2011년은 어땠는가. 회사 측은 경영실적 증진 격려금, 무파업 격려금 같은 웃돈과 무상 주식 지급 등 예년보다 더 많은 인센티브를 줬고 노조는 이를 두고 "역대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며 의기양양했다.

노조가 180개의 무더기 요구사항을 내건 건 당연했다. 마치 상인이 흥정을 예상해 고객에게 바가지 값을 불러놓고 보는 것과 같다. 타협하는 과정에서 버릴 것 버리고 반대급부로 진짜 필요한 것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그러면 현대차의 이런 퇴행적 노사문화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지금 세계 자동차산업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올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주요 7개 자동차업체 중 현대·기아차만이 판매감소를 겪었다. 주말특근 거부로 생산차질을 빚은 것이 치명타였다. 국내에서도 수입차의 공세가 드세다. 상반기 수입차 점유율은 11.9%로 2009년 4.9%의 2.4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현대·기아차보다 싼 가격의 수입차가 쏟아지고 있다.

자동차산업은 생산성의 싸움이다. 그런데 차 한 대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현대차 국내 공장은 30.7시간으로 GM(21.9시간), 도요타(27.6시간), 닛산(18.7시간)에 못 미치고 심지어 현대차 중국공장(18.8시간), 미국공장(15.4시간)과도 비교가 안 된다. 그런 와중에 현대차의 해외생산 비중이 2010년 50%를 넘어섰고 상반기에는 61.5%에 달했다.

얼마 전 글로벌컨설팅업체 매킨지는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속의 개구리'에 비유하며 위기불감증을 경고했다. 끓는 물이 담긴 냄비에 던져진 개구리는 놀라 뛰어나가지만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는 고통을 못 느끼고 죽어간다는 얘기다. 지금 현대차가 꼭 그런 꼴이다. 위기가 닥쳐왔는데 이런 노사문화를 유지할 수는 없다.

회사 측도 "배수진을 쳤다"며 "협상이 잘 안 되면 결국 해외생산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파업을 해도, 노사가 적당히 타협해도 문제 해결은 안 된다.
경쟁력 약화로 공장이 해외로 나간다면 결국 국내 일자리가 날아가고 협력업체들이 고통받는다. 피해는 국민의 몫이다.
그래서 회사 측에 당부한다. 부디 이번만은 출혈이 있더라도 타협 없이 원칙대로 끝까지 가라. 우리 경제의 기둥인 자동차산업이 노사 문제로 시름시름 죽어가는 상황을 언제까지 내버려둘 건가.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