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여객선 침몰] 세월호 참사를 보며..천안함 교훈 깡그리 잊었나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0 17:27

수정 2014.04.20 17:27

판박이다. 4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2010년 3월 26일 천암함이 침몰했다. 정부는 민·군 합동조사단을 꾸리고 외국 전문가들도 참여시켰다. 5월 20일 최종 결과가 발표됐다. 북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폭발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논란은 소멸되지 않았다. 믿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 불신은 정부의 부실한 초동대응에서 싹텄다.

정부가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총 309쪽)를 들춰보자. "사건 발생시각을 수차례 변경하여 발표함으로써 혼란과 불신을 야기했다.…군의 위기관리 시스템의 초기 대응도 미흡했다."(242쪽). 한마디로 정부가 우왕좌왕했다는 얘기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정부는 우왕좌왕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생존자 수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구조자·실종자·탑승자 통계는 그때그때 다르다. 항로 이탈을 놓고 관련기관 자료가 따로 논다. 천안함 백서가 관련기관끼리 손발이 맞지 않았다고 지적한 그대로다.

백서는 구조·인양작전에서 드러난 몇 가지 반성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선제적인 공보조치'를 통해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안 브리핑은 공보전문가의 협조를 구하라고 권고했다.

4년 후. 정부의 소통능력은 얼마나 향상됐을까. 선제적 홍보는커녕 뒷수습도 빵점이다. 소통을 잘했다면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를 항의방문하겠다고 나섰을까. 위기 땐 컨트롤타워와 '입'이 중요하다. 신뢰는 일관된 입에서 나온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때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며칠씩 잠을 못자 푸석해진 얼굴로 브리핑을 했다. 그런 에다노를 향해 일본인들은 "잠 좀 자라"고 응원을 보냈다. 세월호 침몰 현장엔 '한국판 에다노'가 보이지 않는다.

백서엔 정부와 가족 모두 유의해야 할 대목도 있다. 백서는 "민간이 참여한 구조작전의 부작용도 있었다"고 말한다. 민간 지원이 여론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실질적으론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간업체 관계자가 언론과 직접 접촉해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다는 게 백서의 평가다.

4년 후. 세월호 구조 현장에선 민간잠수부 사칭 논란이 뜨겁다. 이 가짜 '민간잠수부'는 TV 인터뷰에서 정부 관계자(해경)가 잠수하지 못하게 막아섰다고 말해 가족들을 자극했다. 목숨 걸고 바다로 뛰어든 민간잠수부들의 살신성인 용기를 폄하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천안함의 교훈도 차분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백서는 "여론에 떠밀려 무리하게 구조작전을 강행함으로써 추가적인 희생자와 잠수병 환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한주호 준위는 천안함 침몰 닷새째 사망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발생 아흐레째 구조작전 중단을 요청했다.

4년 후. 대통령과 가족, 여론의 압박 속에 해경·해군·민간잠수부들은 물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사고 현장에 투입된 해군 대조영함 소속 병사 한 명은 화물승강기 작업 중 머리를 다쳐 숨졌다. 안산 단원고 교감은 자책감에 스스로 목을 맸다.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어른들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최후의 1인까지 포기해선 안 된다. 정부는 천안함의 교훈을 깡그리 잊었다. 공자는 무신불립(無信不立), 곧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고 했다. 지금 한국 사회가 꼭 그렇다. 믿음은 식량보다, 군사보다 더 중요한 국가자산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정부부터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천안함은 온 국민이 공유해야 할 무형의 인프라 자산을 남겼다.
이 소중한 자산을 낭비할 셈인가. 실패에서 배우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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