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잊혀질 권리’ 유럽의 반동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11 18:01

수정 2014.10.25 07:41

[세계 석학에 듣는다] ‘잊혀질 권리’ 유럽의 반동

많은 유럽 정치인들이 인터넷을 찬양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의 고견은 종종 알맹이 없는 수사로 그치곤 한다. 강력하게 디지털을 부르짖다가도 자국에서는 보호주의적인 이익을 지지하고, 강력한 새 규정을 동원해 인터넷의 '혼란'에 재갈을 물리자는 주장을 하곤 한다.

이 같은 한 입으로 두 말 하기는 혼란을 부른다. 유럽이 21세기에 번영하려면 새 지도자들은 인터넷 지향의 긍정적이고 탄탄한 어젠다를 마련해야 한다. 다시 말해 디지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28개로 쪼개진 시장을 단일 유럽 디지털 시장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낡고 오래된 저작권과 면허 법률들은 정비돼야 한다. 새 사생활 보호 규정을 통해 시민을 보호하고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

실천만 된다면 디지털 어젠다는 금융위기 이후 유럽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할 수도 있다. 바로 경제성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미국 총생산의 13%는 인터넷이 차지하고 있다. 모든 기업들이 지금은 디지털 경제에 의지하고 있다. 영세업체가 키보드 몇 번 두드려서 폴란드 골동품, 전통 바바리아 의상, 스페인의 신발을 자국 시장을 넘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팔 수도 있다.

인터넷 고삐를 풀면 재정적으로 어려운 유럽이 새로 빚을 내지 않고서도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의 이른바 '앱 경제' 종사 인력이 2013년 180만명에서 2018년에는 480만명으로 늘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20년이 되면 일자리의 90% 정도는 정보통신기술(ICT)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럽 시장의 기득권자들 저항을 제압하고, 신규 진입을 막기보다 장려해야 한다. EU 28개국에서 각각 인허가를 따야 하는 현 상황에서는 애플, 구글 같은 대기업들도 점포 하나 차리는데 수년이 걸린다. 택시 승차권부터 중고 디자이너 의류 교환, 대여, 공유 서비스가 이 같은 제한으로 출범에 애를 먹고 있다.

인터넷 회의론자들은 또 지난해 우렁차게 출범한 미국·유럽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변형도 무산시킬 수 있다. 교역에서 인터넷 신호로 이뤄지는 거래 규모는 점점 늘고 있다. 맥킨지의 새 연구 결과에 따르면 디지털 기반, 지식집약 재화는 전 세계 총 교역 규모의 50%를 차지한다. 또 다른 종류의 교역에 비해 최소 1.3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현 흐름이 이어지면 이런 종류의 교역 규모는 2025년까지 지금의 3배가 된다.

그러나 많은 유럽인들은 어떤 새 자유무역협정이건 간에 타결 전제조건으로 가혹할 정도의 개인 사생활 보호, 또는 데이터 지역 보관 등의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정보에 대한 쪼개지지 않은, 국경 없는 접근이라는 인터넷의 기본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처럼 유럽도 전 세계 다른 곳으로부터 격리될 것이다. 유럽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이 불가능해지면 새로운 서비스가 차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재판소가 최근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고 이에 따라 구글이 합법적으로 갖고 있는 검색정보라 하더라도 당사자가 요구하면 관련 정보를 삭제하도록 한 것은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대학도서관을 포함해 모든 검색서비스가 합법적인 정보를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대규모 민간 검열의 문을 열어젖히는 위험을 자초하게 됐다.

이 같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EU 경쟁정책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유럽 정책담당자들은 앱스토어, 사회관계망, 검색엔진, 전자상거래 사이트 등 인터넷 플랫폼들도 경제, 사회, 또는 정치적 목표 도달을 위한 특정 공적 기준을 지키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러한 규정들이 유럽 인터넷 플랫폼 부상을 유도하고 사용자들의 '공개 접근'을 보장할 것이란 주장도 곁들여진다.

그러나 이는 실상 새로운 진입장벽이 되고, 시장 선도기업들의 기반을 확고히 다져주며,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유럽 당국은 디지털 발전에 족쇄를 채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제임스 워터워스 미국 워싱턴 컴퓨터·통신산업협회 부회장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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