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브라질 축구와 한국 쌀

김승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11 17:55

수정 2014.10.25 07:42

[여의도에서] 브라질 축구와 한국 쌀

지난 9일 졸린 눈을 비비고 새벽에 브라질과 독일의 월드컵 4강전을 지켜본 축구팬들은 한순간에 잠이 달아나는 경험을 해야 했다. 전반전 10분이 살짝 넘은 시간부터 터지기 시작한 독일의 골 폭풍은 전반 45분에만 다섯 골을 몰아치며 개최국 브라질을 침몰시켰다.

여기서 끝나는 듯했던 골은 독일이 후반전에만 두 골을 더 넣으며 7대 0이라는 믿기지 않는 점수를 기록했고, 브라질이 간신히 한 골을 만회하면서 결국 7대 1로 끝을 맺었다.

중계방송 중간중간 비친 브라질 팬들의 얼굴은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축구에서만큼은 세계 최고의 실력과 자존심을 갖고 있는 브라질이기에, 게다가 개최국인 터라 우승까지 넘보던 상황에서 브라질 국민들은 4강전에서의 7대 1이라는 대패를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소나기 골을 먹으면서 보인 브라질 선수들의 태도였다.
공격은 중구난방이었고 수비는 허점 투성이였다. 무엇보다 골을 넣으려는, 그리고 골을 막으려는 근성이 부족했다. 무너진 정신상태도 회복되지 못했음은 당연하다.

자국을 응원하던 브라질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고, 일부는 오히려 독일의 파이팅을 외쳤다. 이 때문에 경기가 끝나기 한참 전부터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관중이 허다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들의 경기를 더 이상 지켜볼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요즘 관세화 유예 종료를 앞두고 화두가 되고 있는 한국 쌀로 화제를 돌려보자.

우리나라는 1994년 마무리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으로 인해 올해 안으로 쌀에 관세를 부과해 전면 개방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는 국민 주식인 쌀의 특수성을 감안해 관세화하지 않는 대신 해외에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을 늘려오는 것으로 적용 시기를 미뤄왔다. 이에 따라 올해 기준으로 쌀 의무수입물량(MMA)은 국내 소비량의 8% 수준인 40만9000t에 달했다.

하지만 올해 관세화를 통해 쌀 수입을 시장 자율에 맡기느냐, 아니면 또다시 협상을 통해 쌀 관세화 시기를 한시적으로 미루느냐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대신 시기를 다시 연장한다면 우리나라에 쌀을 팔고 싶은 나라들 입장에선 가만히 있을 턱이 없다.

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도 우리가 추가 유예를 선택할 경우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 보고 쌀 대신 다른 농산물을 더 많이 수입하든가, 아니면 쌀에 적용하는 의무수입물량을 기존보다 크게 늘리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정부는 이미 쌀 시장 개방을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인홍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쌀 관세화 공청회에서 "2015년부터 쌀 관세화로 이행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고 사실상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농민들이 주장하는 것은 왜 추가 협상도 해보질 않고 쌀 시장 개방을 기정사실화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연장에 성공한 필리핀을 예로 들고 있다. 물론 필리핀의 경우 재연장 조건으로 기존보다 MMA를 2.3배 늘려야 하는 부담을 감수하긴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결론부터 내놓고 농민들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
마치 브라질 선수들처럼 최선도 다해보지 않고 정신줄을 놓고 있는 꼴이다. 그리고 결론을 내는 과정에서 이해당사국들과 비공식 협상을 통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려는 노력 역시 부족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면 쌀 시장 개방을 비난할 국민들도, 축구를 보기 싫다고 관중석을 떠나는 국민들도 없을 것이다.

bada@fnnews.com 김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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